사람은 어디까지 먹을 수 있는가?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2023. 3. 2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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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의 몸을 읽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세상 모든 존재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으로 나뉜다. 다양한 이분법에 질린 사람이라도 이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인간은 항상 먹거리에 호기심을 느끼고, 식용 여부를 판별하는 능력 또한 생존에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정확히 어디까지일까. 무엇은 먹으면 되고, 무엇은 먹으면 안 되고, 무엇은 굳이 먹지 않아도 괜찮을까.

일단 물리적인 영역에서 인간이 먹지 못할 것은 없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어떤 물체이건 크기만 적당하다면 인간은 집어삼킬 수가 있다. 이 행위의 결과로 대상물은 위 안에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소화물은 항문으로 배출될 때까지 인체 내부와 분리된 한 줄기의 소화관을 지난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먹은 것은 인체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감각적으로 '먹'는다고 인지하는 행위는 실상 소화액과의 물리, 화학적 반응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물질이 위장관에서 화학 반응을 유발하고 열량을 발생시켜 생명체를 유지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유기물'이라고 정의해두었다.

유기물은 탄소가 골격인 물질로 대부분 산소와 수소가 포함되어 있고 생명 활동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생명 조직은 이론상 소화가 가능하고 열량을 발생시킨다. 식물, 동물, 벌레, 곤충과 그들이 만든 생명 활동의 부산물까지 모두 해당된다. 버섯과 같은 진균, 미생물, 세균 등도 유기물이다. 이들을 각종 방법으로 조리해서 얻은 것들 또한 당연히 유기물이다. 과학자들은 이들의 성분을 분석해 영양학적으로 분류했다. 여기서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등장한다. 이들은 단위 무게당 정해진 양의 열량을 내면서 생체에 영양을 공급한다. 이 영양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을수록 열량이 높다. 인체의 구성 성분 또한 수분을 제외하면 이 세 가지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영양분의 저장 형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소화관에 들어가면 흡수되어 생명체를 유지하는 열량이 된다. 거의 모든 동물은 이 세 가지 영양분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그 외 생체 유지에 필수적인 비타민 또한 유기물이지만 열량은 극소량이다.

당연히 모든 유기물이 식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단 개체의 보호를 위해 독성을 품고 있는 유기물은 피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복어의 독이나 독초, 독버섯 등이 있다. 또 식용버섯이나 발효균, 유산균 등은 식용이 가능하고 열량도 있으며 요리에도 사용되어 인간을 이롭게 한다. 하지만, 독성 있는 균류도 많다. 특히 병을 일으키는 균을 병원균이라고 하며, 병원균이 번식한 음식을 우리는 상했다고 한다. 소화관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유기물도 있다. 머리카락을 포함한 모든 털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소화기관과 반응하지 않는다. 손발톱과 피부 각질, 동물의 뿔 또한 케라틴이다.

그 외에 섬유질이 있다. 섬유질은 조직이 섬유 형태로 엮인 것으로 대체로 인체에서 소화되지 않는다. 나무껍질이나 누에실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섬유질이고 거의 열량이 없다. 씨앗의 껍질도 대부분이 섬유질이라 소화되지 않는다. 또 채소에도 섬유질이 많이 포함돼 있다. 이 또한 열량이 없지만 소화 작용을 돕고 포만감을 유발해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를 따로 '식이섬유'라고 부른다.

기타 생명체와 관계가 없는 자연계의 물질은 대부분 무기물이다. 무기물은 기본적으로 열량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바위, 모래, 흙, 자갈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제해서 만들어낸 철, 플라스틱, 알루미늄, 구리 등의 가공물은 전부 무기물로, 이들을 먹으면 별다른 반응 없이 배출되면서 인체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소량의 무기물은 생명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인체는 유기물만 합성할 수 있으므로 무기물은 외부에서 섭취해야만 한다. 대표적인 필수 무기물로는 나트륨, 칼륨, 염소, 마그네슘, 칼슘, 염소, 황, 인 등이 있다. 일반적인 식단에는 이들이 충분히 포함되어 있다. 인체는 음식물에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한다. 그 외 소량 무기물로는 철, 망간, 구리, 아연, 아이오딘 등이 있지만, 이 또한 인체가 알아서 미량을 흡수하므로 결핍증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일부러 찾아서 먹을 필요는 없다. 다만 이들이 화학적으로 인체에 흡수되는 형태라면 중독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자연계의 순환 법칙을 설명할 수 있다. 식물은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을 합성한다. 동물은 식물이나 동물의 유기물을 섭취해서 새로운 유기물을 합성한다. 미생물 등의 분해자는 동물의 사체나 배설물에 포함된 유기물을 다시 무기물로 환원한다. 이것이 생태계를 구성하는 물질 순환의 모식도이다. 하지만 이 '유기물'과 '무기물'의 분류는 인류가 유기물을 실험실에서 합성해내기 시작하면서 거의 무의미해졌고, 이해를 돕기 위한 개념으로만 남아 있다.

그 외에 세상에는 인류가 발명한 많은 화학 물질이 있다. 이들은 실생활, 공장, 실험실 등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지만, 식용을 위해 개발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먹어선 안 된다. 이들은 강한 산이나 염기성을 띠어서 소화관에 물리적인 손상을 가하거나, 대사 과정에서 독성 물질을 생성하거나, 조직 자체를 파괴해서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결론적으로 독성 없는 유기물과 대부분의 무기물을 먹었을 경우 인체는 별 탈이 없다. 사실상 주변의 거의 모든 사물이나 물질이 이에 해당한다. 무수한 인간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을 실험 삼아 먹어 왔지만, 아직 오래 살아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인체의 소화관은 일단 모든 것을 받아들인 뒤 필요한 영양분만을 선별해서 취할 수 있으면서 자가 치유까지 가능한 경이로운 존재다. 지구상의 유기물 중 인간이 식용 불가능한 것은 거의 없고, 한편으로 대부분의 무기물을 별문제 없이 배출해낸다. 현대 사회에 이르자 우리는 식생활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도 넉넉히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독성이 심한 물질 또한 인간이 창조한 화학 물질이다. 지금은 농약, 살충제, 화학약품, 방사능 물질 등이 거꾸로 인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동안 인간이 지구에 끼친 해를 생각하면, 이들이 인류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어찌 보면 순리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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