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이 오키나와, 걸어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차노휘 기자]
▲ 소박한 버스 정거장 |
ⓒ 차노휘 |
먼저 오키나와섬(본도)을 말하며 다음으로는 오키나와섬 주변의 섬들(오키나와 제도)을 일컫는다. 넓은 의미로는 미야코 군도, 야에야마 군도를 포함한 오키나와 현 행정구역 전체를 말한다. 오키나와의 행정구역에는 40개의 유인도가 있고 그 안에 41개의 시정촌(市町村)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은 오키나와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이다.
점점 오키나와 공항에 가까울수록 에메랄드 빛 바다를 품고 있는 아열대 수목이 무성히 우거진 섬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북위24도에서 27도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에 걸쳐 발달한 산호초 군락. 그 우아한 색채의 조화가 기내 안에서도 투명하게 보여 태양빛에 반짝이는 산호초 정원을 유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도 남았다. 온화한 기후, 아름다운 해변, 여유로움.... 오키나와는 일본의 하와이로 불릴 만 했다.
▲ 21세기 비치. 죽은 산호초들이 많다. |
ⓒ 차노휘 |
이런 통계 자료에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나는 오키나와 여행을 소위 '개고생 여행'이라고 이름 붙였다. 쇼핑은커녕 유명하지 않은 관광지만을 버스나 걸어서 쫓아다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 또한 내 의도였으니 기꺼이 감수해야했다.
국내에서 오키나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차를 렌트할 계획이었다. 검색한 하루 차량 렌트비는 5~6만 원이었다. 막상 오키나와에서 차를 빌리려고 하니 12~15만 원을 달라고 했다. 그것도 겨우 두 대 정도 렌트카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 오키나와 일일 버스 패스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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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 시에서 나고 시로 향할 때가 1월 1일이었다. 웬만한 영업점은 문을 닫았다. 관광안내소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그곳에서 1일 버스 패스권을 샀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발이 묶일 내가 아니었다. 휴대폰에 'OTOP(Okinawa Transport One Pass)' 앱을 깔았다. 온통 일본어로 안내가 되어있지만 해석을 못할 이유 또한 없었다.
▲ 걷다보면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
ⓒ 차노휘 |
▲ 걷다보면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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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버스와 도보로 류큐열도를 다 돌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길쭉한 섬이기도 했지만 섬과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버스가 구석구석까지는 운행하지 않는다. 막차도 8시 정도면 끊겼다. 요령이 필요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검색 뒤, 환승해야 할 경우 버스와 버스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를 계산하며 최단 거리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환승할 거리가 6km를 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2만~3만 보 걷기는 기본이었다. '개고생' 여행이 맞았다. 되레 고생을 해서 재미가 쏠쏠했다. 잘해내고 있다는 만족감도 상대적으로 컸다. 버스 안에서 고개를 들면 볼 수 있었던 바다, 버스를 타면 탈수록 돈을 번다는 그 얄팍한 계산의 짜릿함과 버스 기사의 친절함 등이 내가 그곳에서 받은 선물이었다.
오키나와 버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느림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용카드 한 장이면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한국과 달랐다. 인터넷 어플을 이용하는 고객은 거의 소수에 불과했다. 인터넷 어플은 인터넷 연결이 기본으로 되어 있어야 했다. 운적석 옆 바코드를 찍은 다음에 화면에 뜨는 패스권을 보여주어야 한다.
장소에 따라서 잘 터지지 않은 곳이 있어서 난처했던 적도 있었다. 난처하다는 생각은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 한해서였다. 기사 아저씨는 느긋하게 기다려주었다. 승객들도 완전히 차가 정차한 뒤에 일어나는 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었다. 의외로 현금 계산이 많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승차할 때 종이를 받는데 그 종이에는 숫자가 적혀있다. 버스 앞면에 전광판이 있고 전광판에는 여러 숫자와 숫자 아래에 적힌 금액을 볼 수 있다.
구간이 더해질수록 금액은 올라간다. 내릴 때 종이에 적힌 숫자 아래에 적힌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의외로 현금 계산이 많아서 인기 있는 버스 노선에서는 정거장마다 지체되는 시간이 길었다. 아무도 불평하거나 짜증내지 않았다.
▲ 걷다보면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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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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