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요즘 뭐 봐?]‘오아시스’, 시대극인데 회귀물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

김은구 2023. 3. 27.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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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오아시스’(사진=KBS)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최근 젊은 세대가 가장 즐기는 장르 중 하나는 ‘회귀물’이다. 드라마 애시청자들이라면 ‘어게인 마이 라이프’나 ‘재벌집 막내아들’을 통해 익숙해진 장르다. 주인공이 어느 위기의 순간에 과거로 회귀해 다시 삶을 살게 되면서 이미 한 번 겪었던 과정들을 기회의 요소로 바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회귀물의 구조화된 서사다. 타임 리프 같은 판타지 설정의 이야기들은 이미 많이 나왔지만, 회귀물이 이것과 다른 점은 시간을 기회의 요소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강남의 부동산 개발을 미리 알고 있는 주인공이 그 지역에 땅을 사두는 것으로 큰 부를 축적하는 식이다. 

회귀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과거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이 장르는 시대극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그 시대에 벌어졌던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나 당대의 일상, 문화 같은 것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대를 회고하고 추억하게 되는 복고적인 묘미도 더해지는데, 최근 대중문화 전반에 불고 있는 뉴트로(New+Retro) 열풍은 시대극에 대한 인상도 바꿔놓았다. 한 때 시대극이라고 하면 다소 올드한 장르처럼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뉴트로를 통해 오래된 것들을 그저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가 더해진 것으로 보는 ‘빈티지’ 개념을 갖게 되면서 시대극의 느낌도 달라졌다. 예를 들어 ‘파친코’ 같은 대작이 그리고 있는 구한말 분위기나, ‘카지노’에서 차무식(최민식)의 과거사가 그려지는 대목 같은 것들은 낡았다기보다는 어딘가 고풍스런 분위기를 낸다. 

그래서일까. KBS가 오랜만에 내놓은 시대극 ‘오아시스’는 이러한 빈티지 개념으로 달라진 관점이 투영돼 옛 풍경도 구닥다리가 아닌 정겨운 느낌을 준다.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이르는 격동기를 다루는 이 시대극은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두학(장동윤)과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철웅(추영우) 그리고 그들이 동시에 사랑하게 된 오정신(설인아)이 격동의 시대에서 벌이는 엇갈린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학은 머슴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주인집 아들인 철웅에게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게 되고 결국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철웅 대신 감옥까지 가게 된다. 70년대 후반에 여전히 지주와 소작농 같은 주인과 머슴 같은 관계가 있었을까 싶지만 굳이 이런 설정을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의 청년세대들이 마주하고 있는 이른바 ‘수저계급’을 70~80년대 시대극 서사 속에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난 민주화 과정을 통해 신분 계급 사회는 사라졌지만, 고도화된 자본화는 태생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새로운 계급이 만들어진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머슴의 삶을 강요받는 두학은 마치 현재의 청년이 과거로 회귀해 같은 환경의 조건 하에서 다른 선택을 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나마 80년대가 지금보다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두학은 감옥까지 가게 되고 그래서 건달의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그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생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빚만 가득한 영화관을 물려받았지만 극장 사업에 뛰어들어 입지전적인 성공을 보여주는 정신의 이야기도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그 자체로 하나의 판타지가 된다. 노력으로 미래를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아시스’는 80~90년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미 시청자들은 그 시대에 벌어질 역사적 사건들이나 일상의 변화들을 알고 있다. 작가 역시 미리 알고 있는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와 사건들을 염두에 두고 주인공들의 성장 서사를 그려나간다.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어 그것을 하나의 기회로 삼는 서사를 그린다는 것. 이것은 다름 아닌 회귀물이 갖는 특징 그대로다.

물론 시대극 자체가 회귀물의 판타지를 어느 정도는 갖고 있는 장르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여기에 수저계급으로 나뉘는 현 청년들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온 인물들을 배치함으로써 마치 시간을 되돌려 태생의 한계와 대결해 나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회귀물 같은 판타지가 더 강렬해진 이유다. 

정덕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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