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5182명 접종, 9만 7000명 분 폐기
대중교통 마스크 의무가 해제된 지난 20일 ‘지하철 폭행남’이 떠올랐다. 왜 마스크를 안 쓰냐고 항의하는 동승 시민을 험하게 가격하던 성난 얼굴. 코로나19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괴이한 풍경을 빚었다. 방역 패스도 낯설었다. 예방 접종을 두려워한 사람은 식당 출입이 막혔다. 대형마트도 못 갔다.
백신은 꿈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희망 전도사였다. 대통령은 21대 총선 직전인 2020년 4월 9일, 코로나19 국산 치료제와 백신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청와대는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이 조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기 위한 범정부지원단을 구성해 이번 주부터 본격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에 2100억원을 투자하고,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국산 치료제와 백신이 곧 개발돼 세계 각국이 한국산 백신을 구매하겠다고 줄을 서고 다양한 인종의 확진자가 한국산 치료제 덕분에 목숨을 건지는 상상을 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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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 주권” 장담한 문재인 정부
“끝을 보라”며 수천억 쏟아 부어
국산 치료제 이어 백신도 물음표
」
비슷한 시점에 직업도 소득 수준도 묻지 않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겠다는 청와대 발표가 나왔다. 당시 야당이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역시 맞장구쳤다. 미친 짓이란 걸 모두가 알았지만, 선거의 광풍은 정치권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국산 백신의 춘몽에 도취한 탓일까. 다른 나라들이 아스트라제네카나 화이자·모더나 같은 외국 백신을 발 빠르게 확보하는 동안 우린 OECD 꼴찌 접종국이 됐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국산 치료제와 백신을 묘약처럼 꺼냈다. 대통령은 그해 10월 국회 연설에서 “치료제와 백신이 다른 나라에서 먼저 개발되어 수입할 수 있게 되더라도 개발 경험 축적과 백신 주권, 공급가격 인하를 위해 끝까지 자체개발을 성공시키겠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 진상은 드러난다. 셀트리온이 개발한 치료제 ‘렉키로나’는 존재감이 사라졌다. 국산 치료제가 큰 몫을 하리란 기대도 수그러든 지 오래다.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를 열심히 수입해서 먹고 있을 뿐이다.
문 전 대통령이 직접 경북 안동 공장을 방문하면서 기대를 부풀린 국산 백신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코비원’은 어떤 상황인지 정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1일까지 5182명이 접종했다고 답했다. 반면 폐기한 물량이 9만 7000회분이다. 유효기간 경과로 버린 국산 백신이 접종에 사용한 물량의 18배다. 정부가 ‘스카이코비원’을 선 구매 계약한 물량은 무려 1000만 회분이다. 여기에 드는 예산이 2200억원이다. 1만 명도 안 맞은 백신의 1000만회 분을 어떻게 소화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당초 6개월이던 유효기간을 두 차례에 걸쳐 12개월까지 연장했지만, 그 사이 990만명에게 접종하는 묘안을 찾아낼 수 있을까. SK바이오사이언스 측은 “스카이코비원을 바탕으로 다가 백신 등 연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백신 개발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황은 만만치 않다.
2020년 이후 예산 2575억원을 ‘코로나19 백신 임상 지원’에 투입해온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사업을 종료했다. 문재인 정부가 띄운 ‘글로벌 백신 허브’ 관련 사업은 쪼그라들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며 백신을 개발해온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3상에 들어가지도 못한 상태다. 국내 누적 감염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서고 대다수가 백신을 접종한 상황에선 임상시험 대상자를 구하기조차 어렵다. “대세가 된 mRNA 방식으로 1상을 마쳤으나 2상에 들어가지 못해 안타깝다”(큐라티스 최유화 전무)는 말이 현실을 보여준다.
복지부 측은 “내년에 신규로 백신 개발 임상 지원 관련 사업을 추진해 국산 백신 개발을 중단 없이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현장에선 혼란스러워한다. 얼마 전 검찰이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더 어수선하다. 문재인 정부가 “끝을 보라”고 장담하던 국산 치료제와 백신의 결말은 허무해지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 봐야 한다. 마스크 없이 지하철을 타게 됐다고 해서 막대한 예산을 지원한 국산 치료제와 백신이 계륵 신세가 된 과정을 살피지 않으면, 패닉에 빠진 국민 앞에 번드르르한 조감도를 걸고 나랏돈을 쏟아붓는 행태는 반복된다.
당장 1년 뒤 총선을 겨냥해 공수 교대한 여야가 ‘전 국민 재난 극복 축하금’ 뿌리기에 골몰할지 모른다. 코로나19는 팬데믹이 끝나도 정치권을 매개체 삼아 국민 세금을 빨아먹는 풍토 흡혈귀로 우리 곁을 배회할 가능성이 크다.
글=강주안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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