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히든캐스트(124)] ‘레드북’ 박지은, 스스로 찾아낸 길

박정선 2023. 3. 2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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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8일까지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주)아떼오드

앙상블 배우들에게 가장 힘든 점을 물으면, 열 중에 아홉은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답한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앙상블 페이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심지어 1년 내내 공연을 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수입은 더 들쑥날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앙상블 배우들이 투잡, 쓰리잡을 뛰기도 한다.


현재 ‘레드북’에 출연 중인 배우 박지은은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서 자유로워졌다. 뮤지컬 배우 유승엽과 함께 서촌에 조그마한 와인바를 차리면서다. 동료 배우와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배우로서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을 영리하게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뮤지컬 배우가 원래 꿈이었나요?


원래 꿈은 가수였어요. 중학생 때 여러 음악을 접하면서 모던락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밴드부가 있는 곳으로 결정했는데, 인생 통틀어 밴드부 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실용음악과 진학을 원했었는데, 입시에 실패하고 선생님의 권유로 뮤지컬과로 진학하게 되면서 뮤지컬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뮤지컬로 전공을 틀게 된 과정에서 고민은 없었나요?


사실 실용음악 입시 준비하며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어요. 경쟁률이 워낙 높다 보니까 점점 위축됐고 당시엔 성대결절도 심해서 목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요. 뮤지컬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차라리 후련했고 ‘노래는 계속할 수 있으니 오히려 춤도 추고 연기도 하면 어떨까’라는 설렘이 있었어요.


-데뷔작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데뷔는 2013년도에 뮤지컬 ‘천 번째 남자’라는 극이었어요. 당시엔 ‘썸머스노우’나 ‘궁’처럼 한국 창작뮤지컬을 일본에서 공연하는 게 유행이었어요. 운 좋게 오디션에 합격해서 일본에서 먼저 공연을 할 수 있게 됐죠. 그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오디션을 보는데 정말 너무 안 붙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탭댄스를 열심히 했었는데 그때 제가 가르쳤던 배우가 육현욱 오빠에요. 어느 날 오빠가 ‘지은아 너도 배우라며?’하면서 ‘인 더 하이츠’(2016)에 추천해주셨던 거죠.


‘인 더 하이츠’도 도쿄와 요코하마 공연을 먼저 하고서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한 거라 사실 첫 공연 땐 그다지 떨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하고 나서야 ‘아 내가 지금 드디어 한국에서, 그것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하는 배우가 됐구나’ 하면서 실감이 나더라고요. 공연 끝나고서 바로 친한 배우 언니들이랑 맥도날드에서 만나 같이 부둥켜 안고 울었어요(웃음).


-데뷔작을 끝내고 다음 작품까지 3년이 걸린 거네요.


맞아요. 그 당시 오디션을 보는 족족 다 떨어졌었는데 유일하게 붙었던 게 윤석화 연출님이 제작하시는 뮤지컬 ‘탑햇’이라는 작품이었어요. 그때 특별반이라고 매주 월요일마다 무료로 특강을 해주시고, 세 달 뒤에 평가를 통해 최종으로 합격 여부를 가리는 시스템이었는데 이런 기회조차 너무 감사해서 1시간씩 일찍 나가서 연습했어요. 어머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당시였는데, 병간호와 연습과 알바를 병행하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한 달 만에 작품이 엎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 병실의 간이침대에 누워 엄마 몰래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인 더 하이츠’ 이후로는 술술 풀렸나요?


사실 진짜 힘들었던, 제 슬럼프 시기는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가 끝난 후였던 것 같아요. 그때 ‘배우란 쓰임을 받는 직업인데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깊었어요. 내가 무대에 설 수 없고 노래 할 수 없으면 왜 살아야 하지? 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라 많이 힘들었죠. 그 당시 이산하 배우라고 가장 친한 언니인데, 그 언니에게 밤마다 연락을 했어요. 매번 힘들고 귀찮았을 텐데 정말 열심히 제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응원해 줬어요. 언니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아떼오드

-뮤지컬 ‘레드북’과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나요?


뮤지컬 ‘사랑의 불시착’을 공연하고 있을 때였는데 무대감독님께서 ’레드북‘ 오디션에 추천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속으로 ’완전 대박‘이라고 생각했죠. 하하. 레드북은 제 버킷리스트에 있는 작품 중 하나거든요. 오디션 때 후회 없이 하고 오자 다짐하고 제 모든 걸 다 보여드렸어요. 그래서 합격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연습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극장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주에 런쓰루를 총 11번을 돌아야 했어요. 2막 ‘낡은 침대를 타고’ 넘버 장면에서 저랑 이경윤 배우랑 뽀뽀씬이 있는데 제가 극에서 뽀뽀하는 게 처음이라 너무 긴장 되는 거예요(웃음). 첫 번째 런 시작하기 전부터 경윤 배우랑 ‘오늘부터 뽀뽀하냐, 내일부터 뽀뽀하냐, 언제 하냐’ 둘이 얘기하다가 연출님께 가서 ‘저희 언제부터 뽀뽀할까요?’ 여쭤보고 6번째 런부터 뽀뽀하기로 합의 보기도 했죠. 하하.


-‘레드북’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여러 배역으로 나오지만 제가 가장 오랜 시간 나오는 배역은 거지 소녀 ‘클로이’ 역이에요. 거지이지만 소녀죠. 저는 어린 소녀에 초점을 맞춰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막에선 안나에게 겁을 주지만 2막 땐 안나의 팬이 되어 안나를 응원하죠. 빨리빨리 바뀌는 감정 그리고 단순함을 중점으로 뒀어요.


-작품을 하면서 어려운 점, 힘든 점은 없었나요?


음악이요! 노래가 정말 정말 어려웠어요. 사실 지금도 매일 긴장하며 공연을 하고 있고요. 전엔 내본 적 없는 고음을 내야 해서 레슨도 꾸준히 받았고, 개인적으로 목 관리도 철저하게 하고 있어요. 덕분에 득음했습니다(웃음).


-이 공연에서 ‘앙상블’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앙상블’은 너무너무 중요한 존재이죠. 모든 걸 다 잘해야 하고 한 작품에서 여러 배역을 소화해야 하는 배역들입니다. 원 캐스트로 모든 회차를 무리 없이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에요. 더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레드북’에서 가장 애정하는 넘버, 혹은 장면이 있다면요?


가장 애정 하는 넘버는 ’나는 야한 여자야‘입니다. ’레드북‘을 보기 전, 영상으로 이 넘버를 처음 듣고 너무 충격이었어요. 멜로디가 너무 좋았고 끝부분에 ‘조롱을 끌어안고 비난에 입을 맞춰’라는 가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랄까? ‘글이 섹시하다’라는 말을 해도 될까요? 가사가 너무 아름다워어요. 무대에서 이 넘버를 매일 듣고 부를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레드북’을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이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자면?


극장에 왔을 때와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의 풍경이 사뭇 달라 보이실 거예요.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공연입니다.


ⓒ(주)아떼오드

-뮤지컬 외적인 활동도 인상 깊은데요. 지난 2021년엔 트로트 앨범 ‘사랑은 불가마’를 발매하기도 했죠.


그때 당시 트로트가 열풍이었어요. 부모님이 집에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만 보시고 주변에서도 다 그 이야기만 할 때였는데, 제가 음악을 시작한 이후로 부모님께 이렇다 할 결과물을 못 보여드린 것 같아서 선물로 드리자는 마음에 트로트 곡을 만들고 어버이날에 맞춰서 발매를 했죠. 아버지는 아직도 벨소리가 제 노래더라고요. 하하.


-원래 꿈이 가수였는데, 앞으로 가수로서의 활동도 이어 나갈지도 궁금해요.


언젠가는 제 밴드를 꾸려서 음악을 내고 싶어요.


-현재 서촌에 와인바도 운영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앙상블 배우 분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면에서는 조금 안정적일 것도 같아요.


경제적인 영향은 정말 큰 것 같아요.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배우 활동을 하면서는 감히 돈을 모은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거든요. 이젠 돈을 조금씩 모을 수 있게 되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경제적으론 안정됐지만 체력, 시간적으로 부담이 될 것도 같은데요.


다행히 유승엽 배우와 동업으로 창업한 가게라서 부담은 적은 편이에요. 두 사람 모두 배우이다 보니, 작품에 들어갈 땐 확실히 집중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해 주죠. 동업의 좋은 예가 저희 같달까요?


-평소 박지은 배우의 성격도 궁금해요. 도전에 있어서 머뭇거림이 없는 스타일일까요?


사실 예전엔 도전하는 걸 무서워하고 겁도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게 2~3년 전부터였어요. 그때부터는 생각을 바꿨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나답게 살자고요. 나로서 비난받고 나로서 사랑받아야 그게 진짜니까요. 그래서 배우 활동 할 때도 거짓 없이 하려고 합니다.


-박지은 배우가 꿈꾸는 배우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배우가 특별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누군가는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하고 누군가는 백스테이지에서 소품을 옮기거나 의상을 체크하는 거죠. 함께 일하는 스태프 분들이 행복한 공연을 해야 저도 행복해요. 우리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들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배우이고 싶어요.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는 배우.


-그간 참여했던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고르자면?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요. 음악이 너무 너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제 소극장 첫 작품이라 더 애정이 가요.


-향후 참여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다면?


뮤지컬 ‘이블데드’나 ‘난쟁이들’ 해보고 싶어요. 병맛 B급 매력을 가진 작품들을 좋아하거든요. 저도 한번 웃겨보고 싶어요. 제대로요.


-배우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박지은 배우의 최종 목표를 들려주세요.


제 최종 목표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살면서 가끔 만나는 정말 좋은 어른들이 있잖아요. 저도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 되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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