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젊은 채'로 죽고 싶다 [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이정희 2023. 3. 2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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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알바에서 잘리고 새로 얻은 일터

인생의 새로운 길에 섰습니다. 늘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이제 온전히 '내 자신'을 향한 길을 향해 가보려 합니다. <편집자말>

[이정희 기자]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린가 싶겠다. 인지심리학의 대가 칼 로저스는 78세에 쓴 <존재의 방식(A Way of Being)>에서 '젊은 채로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70여년을 살아오며 그는 산다는 건 위험을 무릎쓰고 확실성에 덜 의지하여 행동하며 삶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이라는 걸 '발견'했다고 한다. 즉 변화의 과정 자체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고정되어 있고 일정하고 정지된 삶은 '죽음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그에게 젊음이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삶의 혼란과 불확실함, 그리고 두려움과 감정의 동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이다. 그러기에 칼 로저스는 78세에도 여전한 저술 활동을 비롯, 심지어 신체적으로 무리가 되더라도 여러 시도를 해왔고, 계속 그럴 것이기에 '젊은 채'로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이듦의 시간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며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깊어진다.
ⓒ elements.envato
 
칼 로저스의 글에서 느끼는 바가 컸다. 특히 요즘 60대가 예전 50대 정도랄까?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의 노화 정도가 달라지고, 길어진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 심리적인 격동과 일신상의 변화를 겪으며 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안 해 볼래야 안 할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나이가 많다했지만 나이가 많은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매일 이른 시간에 걸어서 출근을 하다보면 그 시간에 오가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 이른 아침 굽은 등에, 절름거리는 다리를 하면서도 연세 드신 어른들이 출근 길에 나섰다. 예전 같으면 그저 사는 게 참 고달프시구나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분들이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란히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그분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듣다보면, 그분들에게서 '생활인'의 냄새가 맡아졌다. 등이 꼬부라졌든 무릎이 펴지지를 않든 그분들은 삶의 현장으로 출근하고 계셨다. 칼 로저스의 결의와 무에 그리 다를까.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춥건 덥건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며 도착할 때쯤이면 활기찬 하루에 대한 기대가 솟아올랐다. 그런데 이제 경제적인 위기를 겪으며 허겁지겁 호구지책의 전선에 뛰어들어 1년간 달려오다 하루 아침에 다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되는 처지에 놓이니 이리저리 생각이 많아졌다. 

빵집 알바에서 잘리기 전, 지인이 도서관에서 그림책 수업 강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강의를 해야 하는 시간이 마침 내가 일하는 시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내가 알바를 천년만년할 줄 알고 당돌하게도 시간을 변경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했다. 당연히 떨어졌다.

그래도 알바를 잘리자,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강사 자리를 알아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안그래도 또 다른 지인이 집 주변 까페 겸 문화센터를 겸한 곳에서 강의를 개설해 놓았다면서 첫 술에 배부를 생각하지 말고 한번 진행해 보라고 추천도 해주었다. 

그런데 선뜻 실행에 옮겨지지가 않았다. 빵집 알바 자리는 대번에 결정을 내렸는데...... 불투명한 수입때문일까? 누군가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계속 해보고는 싶었다. 그리고 그림책뿐만 아니라, 시나, 에세이 등을 함께 어울러 글쓰기까지 해보는 과정을 열어보고도 싶었다.

시니어를 위한 강의도 해보고 싶었고, 은퇴자들을 위한 시간도 가져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글을 코칭하는 일도 해보니 꽤 매력적이었다.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고, 그림책이라는 수단을 매개로 내가 확장해 갈 수 있는 영역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 마음 속의 무언가가 내 발목을 붙잡는다.

안정과 확실 대신 해보고 싶은 것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수학 문제집을 푸는 걸 도와주고 있다.
ⓒ elements.envato
 
'어떻게 나이 들어 가고 싶니?' 문득 내 안에서 물음들이 떠올랐다. 책을 함께 읽고, 글쓰기를 가르치고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니 그걸 계속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맞는데, 해왔기에 하는 거 말고, 나로 돌아와 이후의 시간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내고 싶은가라는 조금 더 본원적인 질문이 스스로에게 던져졌다.

'해보고 싶은 것은 없었니? 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가 될 만한 건 없을까? 혹은 나이가 들었기에 이제라도 해볼 수 있는 건 없겠니?'

이런 질문들이었다. '여전히 호구지책으로 돈을 벌어야 하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방향성을 잘 살펴가보는 건 어떻니?'라고 내 안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 했다. 칼 로저스의 말처럼 인생은 불안정하고 확실한 걸 보장해 주는 게 아닌데, 우리는 늘 그 '안정'과 '확실'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지난 일년을 살아보니, 정말 인생이라는 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거구나 했다. 닥치면 나가서 도너츠도 튀기고, 크림도 넣고, 어찌어찌 살아지는구나 싶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또 살아지는 인생, 그렇담 내 노년의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런 내 안의 물음들을 가지고 찾다보니 전에는 보여지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바*, 알바 **에서 시급 알바만 찾던 내 눈에 다른 것들이 눈에 띄었다. 물론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국가자격증 하나 따놓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그래도 내가 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 되든 안 되든, 때로는 자격이 좀 안 되더라도 밑져야 본전이다 싶은 마음으로 이력서를 쓰고, 자소서를 썼다. 그러기를 한 달여 전화가 왔다. 

3월부터 나는 일주일에 세 번 세 시간씩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봄 교사'로 일한다. 지금 하는 일들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수학 문제집을 푸는 걸 도와주는 일이다. 그 일을 하게 됐다고 하자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우선은 그래도 빨리 구했네부터, 발바닥에 주사까지 맞을 정도였는데 육체적으로는 무리가 덜해서 다행이라는 반응, 그 정도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겠는가라는 우려에서, 그래도 그간 해왔던 경험이 아깝지 않은가라는 아쉬움까지 다양했다.

아이들 독서 논술도 아니고 수학 문제집 푸는 걸 도와준다니 이 또한 다른 방식의 호구지책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첫 날 오랜만에 본 어린 아이들과 정신없이 세 시간을 보내고 나서는데 참 마음이 편했다.

그 편한 마음의 정체가 뭐였는지는 나에게도 여전히 숙제다. 그저 이 나이에 그 아이들을 돌봐줘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굳이 내가 아닐 필요가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은 들었다. 자원봉사도 하는데, 돈도 주는데, 내 노년의 시작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건 노년의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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