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버버리의 체크무늬 패턴 상표권 주장에 대한 고찰

2023. 3. 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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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강 상상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엑셀러레이터

버버리는 지난 2019년부터 우리나라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일부 교복에 사용된 체크무늬 패턴이 자사의 독특한 체크무늬의 패턴(이하 ‘버버리 패턴’이라 한다)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국내 다수의 교복 제작업체를 상대로 상표권침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에 사단법인 한국학생복산업협회는 버버리와 다수의 협의 끝에 2022년까지 유예기간을 두어 기존에 이미 제작 및 판매되었던 버버리 패턴 교복에 대한 사용을 문제삼지 않는 것으로 하되, 2023년 국내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의 신입생 교복부터는 버버리 패턴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이에 교육청은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여 문제되는 교복의 디자인을 변경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버버리의 상표권 문제 제기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버버리는 1856년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설립한 영국의 명품 패션 브랜드이다.

버버리는 비가 자주 내리는 영국의 날씨에 맞게 가벼우면서도 방수가 되는 개버딘이라는 원단을 개발하여, 개버딘 원단으로 코트를 제작하였는데 이 코트가 유명해져서 현재의 버버리 코트가 된 것이다.

버버리는 코트를 만들면서 고유한 체크무늬를 사용하여 코트 안감을 처리하였는데, 이 버버리 패턴이 현재에 이르러 버버리를 상징하는 패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버버리는 버버리 패턴을 상표로 등록받아 관리하고 있다.

버버리의 상표권 문제 제기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식재산권 보호에 관한 우리나라 법률의 규정에 대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지식재산권은 인간의 창조적 활동 또는 경험 등을 통해 창출하거나 발견한 지식·정보·기술이나 표현, 표시 그 밖에 무형적인 것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지적창작물에 부여된 권리를 말한다(지식재산 기본법 제3조).

지식재산권에는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이 있는데, 상표권은 산업재산권에 포함되는 권리이다.

버버리가 권리를 주장하는 버버리 패턴은 버버리가 창출한 독특한 표현으로서 지식재산권의 일종으로 볼 수 있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지식재산권법 중 상표법, 디자인보호법, 저작권법 등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상표란 상품을 다른 사람의 상품과 식별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호·문자·도형 등으로서 그 구성이나 표현방식에 상관없이 상품의 출처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을 말한다(상표법 제2조 제1호 및 제2호).

특허청에 상표등록출원서를 제출하여 심사를 받고, 심사 결과 상표등록결정을 받아 상표등록을 한 경우에는 상표권이 발생하게 된다. 버버리는 직물, 의류 등을 지정상품으로 하여 버버리 패턴을 상표로 등록받았다.

상표 등록을 통해 상표권을 취득한 상표권자는 지정상품에 관하여 그 등록상표를 사용할 권리를 독점하기 때문에(상표법 제89조), 상표권자의 허락 없이 버버리 패턴을 직물, 의류 등에 사용하는 경우 버버리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어 상표권 침해죄(상표법 230조)에 따라 처벌받거나, 상표권 침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질 수 있다.

또한, 버버리 패턴은 버버리가 창작하여 다른 체크 패턴과는 구분되는 버버리만의 고유의 패턴이므로, 저작권법상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저작물에 대해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저작권법 제2조 제1호)이라고 정의하는 한편, 대법원은 ‘창작성’에 대하여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중략) 단지 저작물에 그 저작자 나름대로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되어 있고 다른 저작자의 기존의 작품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이면 충분하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5. 11. 14. 선고 94도2238 판결).

이러한 저작권법 규정과 대법원 판례에 따라서 볼 때, 버버리 패턴은 버버리가 독자적으로 작성하여 최소한의 창조적 개성을 갖춘 패턴으로서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다.

따라서, 버버리 패턴에 대해 버버리는 저작자로서 저작권을 가지며, 버버리의 허락 없이 직물이나 원단에 나염, 전사, 자수 등의 방법으로 버버리 패턴을 인쇄하는 경우 버버리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상표법, 저작권법 등 지식재산권법은 상표권자나 저작권자 등 특정인의 권리 보호만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 아니다.

경업질서를 유지하고 문화 및 산업의 발전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각 법률의 규정과 대법원은 특정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그 권리를 적절한 범위에서 제한하여 해석하고 행사하여야 하는 것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상표권침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상표의 본질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출처 표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디자인으로만 사용되는 등으로 상표의 사용으로 인식될 수 없는 경우에는 등록상표의 상표권을 침해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7. 2. 14. 선고 96도1424 판결, 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5후810 판결 등).

상표적 사용은 상표법이 정하는 요건을 모두 갖춘 상표의 사용행위를 의미하며, 상표적 사용인지 여부는 상품과의 관계, 당해 표장의 사용 태양(즉, 상품 등에 표시된 위치, 크기 등), 등록상표의 주지저명성 그리고 사용자의 의도와 사용경위 등을 종합하여 실제 거래계에서 그 표시된 표장이 상품의 식별표지로서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를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도3445 판결 등).

즉, 교복 등의 물건에 단순히 디자인으로만 표시되는 것이라면, 설령 등록상표와 유사한 것을 표시하더라도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저작권법은 제1조에서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법목적으로 규정하여(저작권법 제1조), 저작권자의 보호 외에도 일정한 경우 일반 수요자들이 저작물을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저작권 제한사유들을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학교의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 공표된 저작물의 일부를 수업자료로서 제작하여 배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거나(저작권법 제25조 제3항),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허용하는 규정(저작권법 제35조의5 제1항) 등이 그것이다.

즉, 버버리 패턴을 교복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곧바로 버버리의 상표권 또는 저작권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고, 상표법 및 저작권법 고유의 법목적을 기초로 각 법률의 규정 적용 여부를 면밀히 분석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침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부동산, 물건 등을 소유하는 자에게 ‘당연히 인정’되는 소유권 등과는 달리, 지식재산권은 무형물에 대하여 국가가 특정인에게 독점적 권리를 ‘새롭게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각 법이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방향에 따라 권리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개인에게 인정되는 사권으로서의 지식재산권의 보호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공공의 이익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은 올바른 법 해석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버버리의 국내 교복에 대한 상표권 행사는, 상표의 희석화 방지 및 버버리의 명성 유지를 위한 권리자의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짚어본 지식재산권의 본질적 목적 관점에서 비추어 볼 때, 버버리의 상표권 문제 제기에 따른 버버리와 국내 교복 디자인과의 관계에서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협의점이 과연 개인의 재산권과 공공의 이익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서 정당하고 타당한, ‘당연한’ 결론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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