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깨알 같은 섬나라가 덩치 1만3600배 중국에 맞짱 떴다 [지도를 보자]

박소영 2023. 3. 25. 0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607개 섬으로 구성된 이곳은 어디일까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추가 정보를 드리자면,

■ 힌트

「 ①만타가오리, 푸른바닥거북 등을 볼 수 있는 다이빙 천국

이 나라는 2차 세계대전 격전지로 당시 침몰된 배들이 바다에 많이 수장돼 있어 난파선 다이빙 관광으로 유명하다. 사진 미크로네시아연방 관광국 캡처

②92개 인공섬으로 이뤄진 고대 유적 ‘난 마돌’이 있는 곳
③일본 식민지 때 ‘남양군도’. 강제징용 조선인 수천 명이 착취당한 곳

주변 지도를 살펴볼까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너무 작아 잘 안 보이죠. 정답은 서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미크로네시아연방(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FSM)’입니다. 팔라우·마셜제도·나우루·키리바시 등과 함께 2000여개 이상 섬으로 구성된 미크로네시아 지역에 속하는 도서국입니다. 지도 상에선 그저 몇 개의 점에 불과하지만 실제는 607개 섬으로 이뤄진 나라입니다.

얍·축·폰페이·코스라에 등 크게 4개 제도로 나뉘고 그 주변으로 600여개의 섬이 퍼져 있습니다. 이 섬들을 모아 한데 뭉친 면적은 705㎢로 부산광역시(770㎢)보다 작죠. 인구는 11만3000명으로 경기도 여주시(약 11만5000명)와 비슷하니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알 수 있겠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생소한 나라지만 의외로 가까운 곳일 수 있습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괌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이면 가거든요. 아직도 일부 남자들이 허리 아래만 두르는 전통 의상을 입고 20㎝가 넘는 돌 화폐(라이)를 쓰는, 21세기에 몇 안 남은 ‘순수 국가’입니다.


대통령이 “中 사악한 전술 쓴다” 주장

이런 나라가 최근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는 중국과 ‘맞짱’을 뜨고 있습니다. 무려 자국보다 1만3600배(중국 면적 959만7000㎢)나 넓고, 인구가 1만2400배(중국 인구 약 14억명)나 많은데도 거침이 없습니다.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연방 대통령은 중국이 자기편이 되라며 뇌물을 주는 등 ‘사악한(nefarious) 전술’을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파누엘로 대통령은 이달 초 자국 정치인과 태평양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보낸 13페이지 분량의 서한에서 “중국은 대만과 전쟁을 벌일 경우 우리가 미국이 아닌 중국과 동맹을 맺거나 적어도 어느 편도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간첩 활동과 뇌물 제공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연방 대통령(왼쪽)이 지난 2019년 12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 미크로네시아 연방 홈페이지 캡처


중국이 자국 정치인 환심을 사기 위해 현금 봉투를 건네고 전용기 여행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요시워 조지 부통령이 상원의원이었을 때 중국 대사가 돈이 가득 든 봉투를 건넸지만 거절했다고 하네요.

또 중국 함정이 자국 해역에서 잠재적 자원과 잠수함의 이동 경로를 그리는 간첩 활동을 해왔다고 합니다. 지난해 7월에는 태평양도서포럼 참석차 피지에 갔는데 중국 남성 2명에게 미행당했답니다. 알고 보니 피지 주재 중국대사관 직원이었다고 해요.

영국 유력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파렴치한 방법을 쓰는 것은 비밀이 아니지만, 이번 폭로는 놀라울 정도로 상세해 중국은 매우 당혹스러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이런 비방과 비난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미크로네시아연방이 자국 상황에 따라 선택한 경로를 항상 존중해 왔다”고 발표했죠. 중국은 자국을 비판하면 서슴없이 대립각을 세우는 전랑외교(戰狼外交)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폭로라면 원색적인 언어로 맞받아칠 만도 한데, 비교적 온순한 반응이었습니다.


대만 침공 시 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지

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에 미크로네시아연방은 버릴 수 없는 나라입니다. 코코넛 기름과 어패류 수출로 먹고살고, 인광석을 제외하면 자원도 희소해 이득이 될 게 없어 보이는데 왜 관심을 보일까요.

지정학적 이유가 큽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점점 격화하면서 패권 경쟁으로 확대됐고, 그 격전장으로 태평양이 떠올랐습니다. 지난해부터 중국이 오는 2025년에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미군도 개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럴 경우 대만과 가까운 태평양 섬나라들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태평양 전쟁(1941~45년) 당시 일본은 미크로네시아 지역 섬들을 군사기지로 만들어 미국에 대항했죠. 특히 미크로네시아연방은 핵잠수함과 전략폭격기 등을 보유한 미 해군기지가 있는 괌에서 700~900㎞ 정도 떨어져 있어서 미국과 싸우는 나라라면 가장 먼저 포섭해야 할 곳으로 꼽힙니다.

중국은 2006년부터 태평양 도서국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가난한 태평양 섬나라에 인프라를 개발해주고 무역을 늘려주는 경제협력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한때 파누엘로 대통령도 이를 두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2019년 12월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주요 도로와 관공서, 직업 훈련기관 건설 등에 쓰일 두둑한 자금 보따리를 받았습니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미크로네시아연방에 투자한 7200만 달러(약 926억 원) 상당의 자금을 한 번에 쏘면서 인심을 얻었습니다.

파누엘로 대통령은 당시 “비록 중국보다 작지만 중국은 우리를 깊은 존경으로 대우해줬다”면서 “좋은 친구 중국과의 위대한 우정이 새로운 정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라며 기뻐했죠.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연방 대통령(왼쪽 2번째)과 에드윈 파누엘로 여사(왼쪽)가 지난 2019년 12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3번째)과 펑리위안 여사(오른쪽)와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미크로네시아 연방 홈페이지 캡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NBC 등은 “중국에 VIP 대접을 받은 미크로네시아연방이 미국엔 골칫거리가 됐다”고 표현합니다. 미국은 미크로네시아연방이 영원한 우방국인 줄 알았거든요. 미크로네시아연방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신탁통치를 거쳐 1986년에 독립했습니다.

다만 그해 미국과 자유연합협정(COFA)을 맺고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지원받기로 하죠. 미크로네시아연방은 영어를 공용어로, 화폐를 달러로 씁니다. 미국에서 거주하거나 일할 수도 있어 미국의 한 주(州)처럼 보였죠. 그런데 미국이 우호적인 관계를 당연하다고 여기고 국빈방문은 물론 회담도 잘 안 하면서 관계가 삐걱거립니다.

중국은 그 틈을 노려 안보 협력까지 넘보죠. 괌 주둔 미군에 대응하기 위해 이곳에 군사기지를 세우거나 최소한 선박 급유 허브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이 계획은 중국이 지난해 4월 미크로네시아연방 남쪽에 있는 솔로몬제도와 중국군을 주둔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안보협력 협정을 체결하면서 가시화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친중파 대통령 변심, 대만 수교 추진

그런데 친중파처럼 보였던 파누엘로 대통령이 강경하게 나옵니다. 지난해 태평양 섬나라 지도자에게 최소 두 차례 서한을 보내 중국의 안보협력 제안을 거절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결국 지난해 5월 중국과 태평양 섬나라 10개국의 안보 협정 추진은 무산됩니다.

그리고 미크로네시아연방은 지난달 미국과 COFA 협정을 갱신하고 안보 협력을 이어가기로 합니다. 이 협정이 시행되는 동안 미크로네시아연방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군사기지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네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파누엘로 대통령의 급격한 입장 변화 이유를 알려면 미크로네시아연방의 침략 역사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미크로네시아연방은 16세기에 스페인 탐험가에게 발견된 이후 오랫동안 지배당했고, 19세기 후반부터는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됩니다. 독일령(1899년)이 됐다가 일본령(1914년)이 되는 식입니다. 이후 일본보다 남쪽 바다에 있는 섬들이란 의미로 ‘남양군도’로 불리게 됩니다.

일본은 이곳에 군사기지를 세우고, 물자 생산을 위한 공장을 짓고 광산을 개발했죠. 미크로네시아연방뿐만 아니라 조선 등 피지배국에서 수백만 명을 동원해 착취합니다.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이곳은 참혹한 전선이 됐고, 끌려온 이들은 총알받이가 됐죠.

미크로네시아 연방 폰페이섬 돌로프우르푸르에 설치된 포의 모습.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폰페이섬과 인근 작은 섬에 포를 최소 10문 이상 설치했다. 사진 미크로네시아연방 관광국 홈페이지 캡처

미크로네시아연방 사람들에겐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파누엘로 대통령은 “중국의 협력 제안은 태평양 도서국을 중국에 종속시키고, 최악엔 세계대전, 잘해야 신냉전 시대로 접어들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요즘 중국과 관계를 끊고 대만과 수교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단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죠. 지난달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1외교부장을 만나 “외교 관계를 바꾸려면 우리의 미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약 5000만 달러(약 643억 원)를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과도 COFA 협정을 갱신하면서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기로 했죠.

지정학 전문가들은 이제 중국이 미크로네시아연방을 얻으려면 주머니를 더 열어야 한다고 합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메그 킨은 “최근 심화한 지정학적 경쟁을 이용해 작은 국가들이 초강대국으로부터 더 관대한 조건을 얻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태평양 섬나라들이 제2의 태평양 전쟁을 우려하고 있지만, 꼭 ‘불행한 희생자’는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미크로네시아연방이 심화되는 미·중 경쟁에서 과연 태평양 전쟁도 막고 경제 혜택도 얻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요.

「 용어사전 > 지도를 보자

글로벌 초연결의 시대, 국제뉴스가 21세기 한국인의 삶에 더욱 긴밀해지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국제부의 ‘지도를 보자’는 지구촌 곳곳 뜨거운 이슈를 지정학의 틀에서 흥미롭게 파헤쳐 드립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