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아파트 단지 떠돌던 누더기 스피츠 ‘럭키’ 구조기 [개st하우스]

이성훈,최민석,전병준 2023. 3. 25. 04: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첫 출동 후 무려 23일 만에 포획
“구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떠도는 스피츠 ‘럭키’가 지난달 언덕 위에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결국 구조된 럭키의 목덜미에는 내장형 동물인식칩이 발견됐다. 원래 이름이 ‘빛나’였던 럭키는 현재 입양자 효진씨의 집에서 적응하며 사회성을 기르고 있다. 전병준 기자

“2년째 아파트 단지를 떠도는 스피츠가 있는데 경계심이 강해 동물보호소와 소방서에서 여러 번 구조에 실패했어요. 주민들이 챙겨주는 사료나 고양이밥을 주워 먹으며 연명하고 있지만 언제 로드킬을 당할지 몰라요. 부디 구조해주시면 제가 평생 돌보고 싶습니다.”
-제보자 김효진씨-

위기에 처한 동물이 구조돼 제보자 품에서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됐다는 감동 사연이 종종 소개됩니다. 유기견을 발견한 이들은 이런 견생역전을 꿈꾸며 동물단체에 연락을 하죠. 하지만 구조 요청 대부분은 거절됩니다. 유기 동물을 구하려면 포획부터 치료, 사회화까지 수개월간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돼야 합니다. 그래서 제보자가 모든 걸 감당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한 구조는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서울 광진구의 800세대 아파트 단지를 떠돌던 5㎏의 스피츠 ‘럭키’는 구조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럭키는 2년 전부터 동네에 출몰했다고 합니다. 경계심이 강해 소방서와 동물보호소가 몇 차례나 구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포획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제보자 효진씨는 거듭된 실패에도 럭키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효진씨가 마지막으로 두드린 곳이 국민일보 개st하우스였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개st하우스 팀도 망설였습니다. 개st하우스는 유기동물 입양을 홍보하고 동물권 제고를 위해 뛰는 기자와 PD들일 뿐 동물구조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반려견이었을 가엾은 럭키를 구조하고 여생을 책임지고 싶다”는 효진씨 호소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동물 전문가들이 돕겠다고 나서줬습니다. SBS ‘동물농장’, EBS ‘세상에나쁜개는없다’ 등에서 고난도 구조를 담당해온 동물구조단체 리버스가 럭키의 포획을, 서울 노원N동물병원의 한재웅 수의사가 치료를 돕기로 했습니다. 마침 개st하우스 유튜브 채널에는 구독자들이 보낸 132만원의 슈퍼챗 기금이 남아있었습니다. 드디어 지난달 6일 취재진은 리버스와 함께 럭키를 구조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포획틀에 삼겹살 굽고 13시간 잠복

럭키가 있는 아파트는 떠돌이 개가 숨어살기 좋은 환경을 갖췄습니다. 주변 도로들이 2차선으로 폭이 좁은데다 어린이 보호구역 속도제한을 받아 덜 위험했습니다. 아파트 건너편에는 낡은 주택가와 공터 등 숨을 곳이 많고, 곳곳에 길고양이 사료가 놓여 있어 굶주린 럭키가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을 이끌고 럭키의 동선을 따라 걷던 효진씨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20m 앞 언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언덕 위에 럭키가 있다”고 알렸습니다. 누렇게 변한 털과 마른 잔디를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스피츠 특유의 뾰족한 귀를 세우고 풀밭에 웅크린 모습을 보니 럭키가 분명했습니다. 달려가 뜰채를 휘두르면 금세 잡을 것 같지만 성공 확률이 낮습니다. 1년 전 소방대원 5명이 출동해 뜰채와 그물을 휘둘렀지만 럭키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날 럭키는 가파른 언덕과 울타리 등 복잡한 지형지물을 이용해 건장한 소방관들의 추격을 피했다고 합니다. 엽사를 고용해 마취총을 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럭키가 독한 마취약에 쇼크사할 수도 있어서 포기했습니다.

리버스 김용환 대표는 대형 포획틀을 활용하기로 합니다. 럭키가 출몰하는 공터에 10m 너비의 철제 포획틀을 설치한 뒤 안에 미끼로 구운 삼겹살을 담아뒀습니다. 포획틀 안에 럭키가 들어오면 사거리 100m의 원격 리모컨을 눌러 포획틀 문을 닫을 겁니다. 안전하고 실패 확률이 적은 포획 방식이지요. 단 동물이 스스로 포획망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고, 그 기간 동안 제보자가 매일 포획망 안에 사료를 넣어주며 동물의 경계심을 달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포획틀을 설치한 첫날. 리버스와 취재진은 포획틀에서 100m 거리에 주차한 통제차량에서 원격리모컨을 손에 쥔 채 럭키를 기다렸습니다. 정오부터 새벽 1시까지 무려 13시간. 몇몇 주민들이 “떠돌이개를 꼭 구조해달라”며 음료와 도시락을 건네준 덕분에 차 안에서 끼니는 해결할 수 있었죠. 하지만 좁은 차안에서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채 13시간을 잠복하는 일. 생각보다 많이 힘들더군요. 이런 일을 밥 먹듯 반복하는 리버스도, 범인 잡으려고 몇 시간씩 잠복하는 형사들도 모두 존경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리버스팀은 열흘 뒤 재출동할 것을 약속하며 제보자 효진씨에게 두 가지 과제를 줬습니다. 김 대표는 “럭키에게 이곳(포획틀)이 밥자리라고 믿게 해야 한다”며 “매일 포획틀 안에 사료를 챙겨주고 감지카메라에 럭키가 잡혔는지 확인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포기한 순간 마침내 포획

첫 출동이 실패하고 9일 뒤인 지난달 15일. 리버스와 취재팀은 2차 출동했지만 이날도 럭키를 구조하지는 못했습니다. 10시간을 기다려도 사료를 탐낸 길고양이 서너 마리만 드나들 뿐 럭키는 포획틀에 들어오지 않았죠. 제보자 효진씨는 “시킨 대로 했는데 고양이밥만 준 게 됐다. 얘(럭키)는 100% 여기에 들어오지 않을 텐데 내가 뭐하는 건가 싶다”며 실망했어요.

다시 2주가 흐른 지난 1일, 3차 출동을 앞두고 리버스팀과 취재진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집니다. 포획틀에 들어와 사료를 먹는 럭키의 모습이 설치해둔 야생동물 카메라에 포착된 겁니다. 김 대표는 “럭키가 포획틀을 드나들기 시작했으니 오늘 성공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습니다.

숨죽이고 모니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지 9시간 만인 오후 8시. 포획틀을 들여다보던 김 대표가 소리쳤습니다. “어어, 왔다 왔어!” 저녁이 되자 굶주린 럭키가 포획틀에 둔 사료를 향해 다가온 겁니다. “눌러, 눌러!” 김 대표가 리모컨의 버튼을 세 차례 강하게 누르자 ‘철커덕’ 포획틀 문이 닫히고, 럭키는 놀라서 빙빙 포획틀 안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30시간의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럭키의 포획에 성공한 겁니다.

구조 작업은 조심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자칫 포획될 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버스팀은 소형견용 이동장을 챙겨들고 포획틀에 들어가 럭키와 1m쯤 떨어져 앉았습니다. 놀란 럭키는 처음 10분간 맹렬하게 짖었습니다. 그러다가 제보자가 익숙한 목소리로 “럭키야 진정해”라며 달래자 이윽고 바닥에 조용히 엎드렸고, 이동장 문을 열어주자 순순히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진짜 끝입니다. 둘러보니 구조 소식을 듣고 어느새 아파트 주민 10여명이 모여들었더군요. 모두 기뻐했지만 이 순간을 누구보다 기다린 사람은 바로 제보자 효진씨였습니다. 럭키의 몸에서는 오랜 떠돌이생활로 악취가 풍겼지만 효진씨는 “걱정했던 것보다 털이 깨끗하고 살집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감격했습니다.

구조 직후 예민해진 동물을 곧장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루 정도 이동장 안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그 다음날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이날 럭키는 이동장에 담긴 채 효진씨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목덜미에 인식칩… 전 견주가 들려준 사연

구조 다음날인 지난 2일, 럭키는 한재웅 수의사의 정밀검진을 받았습니다. 한 수의사는 일반 동물병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학대 동물이나 유기 동물을 치료하는 전문가입니다. 손길이 닿자 오줌을 지리며 경계하던 럭키는 고깔 모양의 목보호대를 채우고 수의사 품에 안기자 얌전해졌습니다. 한 수의사는 “이 친구는 전에 사람 손을 탔던 게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럭키는 혈액검사를 비롯해 까다로운 초음파, 엑스레이 촬영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양이 사료를 장기간 섭취한 탓에 신장이 좋지 않고, 치명적인 심장사상충 1기(초기)에 감염됐지만 다행히 치료에 어려움은 없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럭키의 기구한 견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럭키 목덜미에서 내장형 동물인식칩이 발견된 겁니다. 인식칩에 기록된 동물등록번호를 조회하자 ‘이름: 빛나, 주소: 서울 노원구 XXX, 견주: 황OO, 전화번호: 010-XXXX-XXXX’라고 적힌 전 견주의 정보가 드러났습니다. 럭키를 입양해 돌볼 생각이었던 효진씨는 “전 견주에게 버려진 것이라면 정말 너무 불쌍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취재진은 전화를 걸어 전 견주 황모(70대)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청력이 약해 일상소통이 어려운 노인이었습니다. 황씨는 직접 동물병원을 찾아와 럭키가 떠돌이생활을 하게 된 속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2년 전 럭키의 원래 이름은 ‘빛나’였습니다. 2021년 2월 경북 경산의 유기동물 보호소에 입소했는데 입양 문의가 없어 안락사를 앞둔 처지였습니다. 평소 유기견 입양에 관심이 많던 황씨가 그 소식을 접한 뒤 빛나를 입양하기로 했고, 경산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황씨 명의로 인식칩 등록 및 중성화 등 절차를 밟았습니다. 서울에서 경산까지 200㎞가 넘지만 이동봉사자 도움으로 빛나는 이동장에 담긴 채 서울 노원구의 황씨 자택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황씨에게 도착한 그때, 빛나가 이동장에서 탈출해 달아났습니다. 그렇게 빛나는 낯선 서울땅을 떠돌기 시작합니다. 황씨는 수개월간 전단지를 뿌리고 유기동물 보호소를 수차례 방문하는 등 노력했지만 빛나를 찾지 못했고, 그렇게 5개월 뒤 실종장소에서 9㎞ 떨어진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 단지를 떠돌다 2년 만에 구조돼 ‘럭키’가 된 겁니다.

황씨는 럭키를 돌볼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 안락사 위기에서 구조한 다른 열 두 마리의 개를 돌보느라 여력이 없었습니다. 사연을 들은 제보자는 럭키와 황씨의 기구한 과거를 가엾게 여겼고, 소유권을 넘겨주면 럭키를 잘 돌보겠다고 황씨를 설득했습니다. 이에 황씨는 “럭키를 잃어버리고 죄책감에 2년을 앓았는데 구조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럭키의 소유권 포기각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이후 럭키는 입양자 효진씨의 집에서 적응 중입니다. 잃어버린 사회성을 되찾기 위해 13년차 유기동물 행동전문가 미애쌤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미애쌤은 “구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어쩌면 럭키가 사회성을 기를 때까지 3개월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며 끈기 있는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떠돌이개 럭키의 사연은 위기에 처한 동물이 반려동물로 거듭나기까지 우여곡절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위기에서 구조, 교육까지 떠돌이개 럭키의 견생역전이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성훈 최민석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