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사태' 유망주의 배신... 어설픈 용서는 더이상 없다
[이준목 기자]
▲ 서준원 |
ⓒ 연합뉴스 |
한때 고교 최고의 투수이자 프로무대에서도 손꼽히던 유망주가 야구 외적인 이유로 몰락하는 데는 하루아침이면 충분했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 서준원이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 혐의로 기소되면서 구단으로부터 퇴출당했다. 야심차게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던 롯데 자이언츠와 KBO리그도 날벼락을 맞게 됐다.
지난 3월 23일 부산 지검은 서준원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서준원은 지난해 8월쯤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미성년자인 피해자 A씨에게 "신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해 신체 특정 부위를 찍은 사진을 받아 보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날 롯데 구단도 사과문을 발표하며 사실을 인정했다. 롯데는 "서준원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법행위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현재 검찰로 이관되었음을 확인했다. 구단은 이를 확인하고 징계위원회를 개최했으며, 검찰의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최고 수위 징계인 퇴단을 결정했다"고 알렸다. 이어 "구단은 선수의 관리소홀을 인정하고 앞으로 엄격하게 성인지 교육을 시행하여 엄정한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준원 관련 기사가 언론에 최초로 보도되고 구단의 신속한 퇴출 발표까지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주목받던 유망주의 몰락
2000년생의 우완 사이드암 서준원은 경남고 시절부터 고교 최고의 투수로 불리우며 주목받은 초특급 유망주였다. 2018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150km/h 이상의 강속구를 여러 차례 선보이며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활약으로 온라인 상에서 일본 팬들에게도 화제가 될 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같은 해 '고교 최동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준원은 2019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의 1차지명을 받고 프로에 진출했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19년 4승 11패 자책점 5.47, 2020년 7승 6패 평균자책점 5.18, 2021년 1승 3패 3홀드 평균자책점 7.33, 2022년 3승 3패 2홀드 평균자책점 4.80을 기록했다. 프로 4시즌 동안 통산성적은 15승 23패 평균자책점 5.56으로 입단 당시의 기대감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롯데는 서준원의 재능을 믿고 꾸준한 기회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시즌 이후 서준원을 질롱코리아로 파견하여 경험을 쌓게했고, 다음 시즌 선발로테이션을 놓고 경쟁할 주요 자원으로 꼽혔다. 젊은 나이지만 2020년 12월에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고, 이듬해에는 아들까지 태어나며 어엿한 한 집안의 가장이 됐다. 말 그대로 이제 야구만 잘하면 더 이상 남부러울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준원은 구단과 야구팬들의 기대를 무참하게 배신했다.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 미성년자를 상대로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게 확인된다면, 어떠한 변명으로도 동정의 여지가 없다. 서준원은 상대가 미성년자였는지는 몰랐고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심지어 서준원은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실을 숨기고 최근까지 버젓이 시범경기에 출전하며 구단과 팬들을 두 번 기만했다.
롯데의 퇴출은 당연한 결정이었고, 향후 KBO 사무국의 징계에 따르면 야구계 완전 퇴출도 가하다. KBO 야구 규약에 따르면, 성범죄는 승부 조작·병역 비리·음주운전·도핑 등과 함께 최대 중징계인 영구실격까지 가능한 사안이다.
한편 프로야구는 후폭풍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2023년 정규시즌 개막을 열흘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또다시 대형악재를 만나게 되어 이미지 하락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5년 연속 PS 탈락의 수모를 겪은 롯데는 지난 겨울 박세웅(비FA 다년계약), 유강남, 노진혁, 한현희 등을 영입하는 데 약 260억이 넘는 돈을 쏟아부으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의 극심한 부진에 이어 서준원 사태까지 터지며 선수관리에도 허점을 드러내 여론의 반응이 대단히 좋지 않다. 구단은 1차지명으로 영입한 유망주에게 수년간 수십억에 이른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도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셈이 됐다.
또한 한국야구는 WBC 등 국제대회에서의 연이은 부진 이후 가뜩이나 '거품론'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서준원 사태로 인하여 또다시 프로야구 선수들의 '인성 논란'이 터진 것에 난감할 수밖에 없다.
강정호-하주석의 음주운전 파문, 2021년 코로나 방역기간에 벌어진 술판 사태, 안우진과 김유성의 학교폭력 논란 등 최근 몇 년간에도 굵직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야구팬들은 높은 몸값과 인기를 누리는 프로 선수들의 '도덕불감증과 사회적 책임감 부족'에 더욱 민감해졌다. 지난해 허구연 KBO 총재는 부임한 후 '클린베이스볼'을 유독 강조했음에도 이를 무색하게 또다시 팬들을 실망시키는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프로 야구계에 필요한 것
한편으로 서준원 사태는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한국야구계에서 젊은 유망주들에게 '운동보다 인성 교육이 우선'이라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경고이기도 하다. 장성우(KT)는 2015년 사생활 폭로사건 관련 명예훼손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20년에는 삼성 2군 소속의 유망주 신동수가 SNS에서 지역비하-미성년자 성희롱으로 아예 프로야구에서 퇴출당했다.
또한 올해 스프링캠프에서는 한화의 유망주 김서현은 자신의 비공개 SNS 부계정을 통해 코치진에 대한 뒷담화와 불만을 쏟아낸 사실이 드러나며 자체 징계를 받기도 했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야구팬들은 한국야구의 미래로 불리우며 촉망받던 유망주들이 잇달아 보여준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행동에 큰 실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급기야는 서준원처럼 '미성년 성범죄 혐의'라는 초유의 사건에 연루되는 사태까지 나오고 말았다.
이는 프로야구 각 구단과 KBO리그만의 문제를 넘어 한국야구 전체가 경각심을 느껴야 할 순간이다. 예전에는 '운동만 잘하면 다 용서된다'는 인식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공정과 상식을 중시하는 지금의 사회는, 제아무리 운동을 잘하고 스타플레이어라고 해도 인성이 부족한 선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온라인 문화가 발전한 현대에는 더 이상 과거의 잘못이라고 해서 적당히 덮거나 은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장성우, 김원석, 신동수, 김서현, 서준원까지 그들이 SNS에 남긴 '어두운 흔적'들은 영원히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않는 박제가 되어 증거로 남았다.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과거의 사례들로 끊임없이 재소환되기도 일쑤다.
더이상 미성숙한 젊은 시절 한때의 치기로 넘길 문제는 아니다. 설사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라고 할지라도 성인이 되고 프로무대까지 올라왔다면 그에 걸맞는 사회적 의무와 책임감이 주어진다는 게 이런 사건들의 진정한 교훈이다. 유망주들은 이제 단 한 번의 실수로도 공들여 쌓아온 모든 탑이 한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 어설픈 용서는 더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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