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해야 할 쪽은 한국" 심상찮은 일본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일본 도쿄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 UPI=연합뉴스 |
윤석열 정권은 굴욕적 한일 관계를 반대하는 국민을 상대로 경계 모드를 취하고 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정상화를 일본에 통보한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합니다"라고 비판했다. 강제징용(강제동원) 조치를 반대하는 국민을 상대로 '배타적 민족주의', '정치적 이득'을 운운한 것이다.
일본 현지에서 윤 정권을 대변하는 윤덕민 주일대사도 동일한 모드를 취하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입민당)이 22일 국회에서 개최한 일한우호의원연맹 발족식에 참석한 그의 입에서도 일본이 아닌 한국 국민을 겨냥한 발언이 나왔다.
22일 자 인터넷판 NHK 기사인 '입민, 일한우호의원연맹 당내에 발족···우호관계 구축을 목표로(立民 日韓友好議員連盟 党内に発足 友好関係構築目指す)에 따르면, 그는 "지난주 회담은 성공했지만, 한국 국민을 어떻게 설득해갈 것인가가 문제다"라고 발언했다.
윤 정권은 한국 국민을 경계하고 있지만, 실제로 경계해야 할 대상은 일본 파트너들이다. 지금 일본 측은 청구서를 이것저것 챙기고 있다. 앞으로 윤 대통령이 일본인들에게 들들 볶일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현상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되니까 뭐든지 좋아진다'
외무성은 1년에 1회 정도 각국에 있는 대사를 모아 회의를 연다. 요전에는 유럽과 중남미에 있는 대사들을 모았는데, 모리 외무사무차관이 '윤 대통령이 되니까 뭐든지 좋아진다'라고 말해 대사들이 모두 놀랐던 것으로 들었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유럽 및 중남미 공관장들이 소집된 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화제가 됐고, 모리 차관의 말에 모두 놀랐다는 것이다.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잘 들어주다 보니 이런 장면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상대방이 뭐든지 잘 들어주면 미안해서 더 이상 부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염치 없이 계속 청탁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일본은 후자에 가깝다.
<아베마 타임스> 기사 제목에 언급된 요청문은 한일정상회담 전날인 15일에 '일본의 국익과 존엄을 지키는 모임'이 기시다 내각에 제출한 서한이다. 기사에 따르면 서한의 핵심 내용은 '한국의 해결책을 과잉평가하지 말 것'이다. 윤 정부가 지금까지 양보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 요구할 것을 회담 전날 총리에게 건의했던 것이다.
20일 인터뷰 때 아오야마 의원은 "일본 기업은 미래에 영원히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확증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요청문에 있었다고 소개했다. 어감을 고려해 '영원히'라고 번역했지만, 아오야마가 사용한 단어는 '영겁'이다. 일본 기업이 영겁의 세월 동안 지불 요구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확증을 받아내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위 의원 모임이 한일관계에 관한 것만 요구했던 것은 아니다. 아오야마 의원은 "일·한에 지금 필요한 것은 2개다"라고 한 뒤 그중 하나로 대만 문제를 거론했다.
▲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도쿄 긴자의 한 스키야키·샤부샤부 전문점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2023.3.16 |
ⓒ 연합뉴스 |
일본인들이 이것저것 요구하려고 하는 것은 한국의 국정 기조가 일본에 유리하게 전환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윤 정권의 국시가 바뀌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은 전문가 필진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 MAG2 뉴스 >의 23일 자 기사 '어째서 윤 대통령은 일본에 접근해오는가(なぜ韓国ユン大統領は日本に接近してくるのか?)'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무성과 국제연합에서 근무했고 이 매체에서 '아즈리'라는 필명을 쓰는 필자의 글을 소개하는 이 기사는 서두의 '편집자 말'에서 "반일을 국시로 하는 듯했던 전 정권과 달리, 일한관계 재구축에 적극 자세를 보여주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문재인 정권을 가리켜 '반일을 국시로 하는 듯한 정권'이라고 조심스럽게 지칭했다. 그러면서 윤 정권은 문 정권과 다르다고 말했다. 윤 정권의 국시가 무엇인가를 조심스레 시사한 셈이다.
이 기사는 본문에서 "일본도 일한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해 왔지만, 징용공 문제 등이 있어서 스스로 다가가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라며 "윤 대통령의 한국이 일본을 향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금일의 구도다"라고 평했다. 윤 정권이 국시까지 바꿔가며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인식이 있으니, 한국을 상대로 이런저런 주문을 하기도 쉬워졌으리라고 볼 수 있다.
출판사 고단샤가 운영하는 <현대 비즈니스>에 실린 기사를 보면, 일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주문이 꽤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 매체가 20일 발행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방일로 일·한 해빙?(尹錫悦韓国大統領来日で日韓雪解け?)'이란 기사에서 그런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기사는 향후 한일관계가 악화돼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폐기되면 당시 일본이 제공한 경제협력자금 8억 달러의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고 한 뒤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의연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당시의 화폐가치를 고려해서 반환받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일본이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매체의 말이다.
▲ 17일 오전 일본 도쿄 한 호텔 식당에 한일 정상회담을 보도한 현지 조간 신문이 놓여 있다. |
ⓒ 연합뉴스 |
'우린 잘못한 게 없다'에서 '한국이 잘못했다'로
그동안 일본인들은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고 강변해왔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은 '한국이 잘못했다'라며 역공을 가하고 있다. 한층 공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월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의 강제징용 처리 방안 발표와 16일 윤 대통령의 정상회담 등이 분위기 전환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윤덕민 대사가 참석한 22일 행사는 입헌민주당이 한국을 겨냥해 의원 모임을 결성하는 자리였다. 위의 NHK 보도에 따르면 이 모임에는 입민당 의원 절반 이상인 50여 명이 참여한다. 한일관계에서 손쉽게 성과를 내고 있는 자민당에 뒤지지 않고자 제1야당도 팔을 걷어붙이고 청구서를 준비할 태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이 한일관계에서 고전하고 있다면, 입민당이 덩달아 뛰어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기세로 보면 일본은 징용뿐 아니라 위안부·독도·대만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등에서도 추가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여야 정당들까지 앞다퉈 요구하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윤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금 윤석열 대통령에게 무엇이 다급한지를 보여준다. 이번 일을 반대하는 국민 여론을 뒤집기 위해 모험을 걸 게 아니라, 일본의 파상적인 주문 공세 앞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 그에게는 훨씬 다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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