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마약과의 전쟁, 시스템부터 재정비하자

조영주 2023. 3. 2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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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류 상습 투약 혐의로 배우 유아인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그의 모발 등에서 대마·프로포폴·코카인·케타민 등 4종류의 마약류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정밀감정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유아인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베테랑’에서 마약을 투약하던 장면은 현실이 됐다.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의 마약 투약 의심과 관련해 경찰은 입건 전 조사(내사)를 하고 있다. 미국에 거주 중인 전씨는 지난 17일(한국시간) 유튜브를 통해 각종 마약을 언급했고, 마약 투약이 의심되는 모습도 보였다. 그의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은 고스란히 중계돼 충격을 줬다.

한때 ‘마약청정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마약에 빠졌다. 과거 일부 연예인과 외국인에게 국한됐던 마약 범죄는 최근에는 군인, 학생, 주부 등 일반 국민에게까지 확산했다. 지난해 국내 마약사범은 1만8395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고, 올해 들어 1월에만 1314명의 마약사범이 적발됐다. 이 가운데 20~30대가 가장 많았고, 15~19세 미성년자도 14명이나 포함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검찰에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마약 범죄) 수사에 임해달라"고 주문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달에는 검찰·관세청·식품의약품안전처·4개 지방자치단체 등 범정부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전국 4대 권역 검찰청에 출범시키기도 했다.

정부의 마약 근절 의지와는 달리, 마약 범죄를 단속하는 일선 현장에서는 답답해하는 목소리가 많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마약 수사를 총괄하던 대검찰청 강력부가 폐지되고 마약·조직범죄과가 마약 수사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부장검사급인 마약·조직범죄과장이 마약 수사에 관한 계획 전반을 수립하고 다른 기관과의 공조, 외국 수사기관과의 협력 등 마약 수사를 총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욱이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이 직접 마약 범죄를 수사하지 못하다 지난해에야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 중 하나인 ‘경제범죄’에 마약·조직범죄를 포함하는 내용의 ‘검수원복 시행령’이 시행돼 다시 직접 수사가 가능해졌다. 사실상 2년간 검찰의 마약 수사는 명맥이 끊겼다. 지금도 검찰의 마약 수사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보완 수사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과거 마약 전담 검사와 수사관은 형사부, 반부패부, 공공수사부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검찰의 수사 정보망과 정보원도 상실했다.

경찰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수서경찰서에는 마약 전담팀이 없다. 인근 강남지역에 유흥주점이 집중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아한 일이다. 마약 전담팀이 없는 경우에는 강력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2과가 담당한다. 살인, 도주 등 다른 범죄들도 맡는 형사2과가 마약 범죄까지 단속하기는 쉽지 않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마약 간이시약기에도 문제가 있다. 간이시약기로 잡아낼 수 있는 마약은 필로폰, 대마, 모르핀, 코카인, 엑스터시, 케타민 등 6종이다. 감마 하이드록시뷰티르산(GHB)과 같은 신종 마약이나 향정신성 성분인 THC 등은 걸러내지 못한다. 현장에서 주사기, 가루 등 증거물이 발견되지 않고, 간이시약기에서 음성이 나올 경우 추가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약 공급책을 검거하는 일이다. 마약 유통이 대부분 해외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마약 투약범을 잡더라도 공급책까지 검거하기는 쉽지 않다. 마약 투약범을 계속 단속하더라도 공급책을 잡지 못하면 마약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마약 범죄는 우리 사회의 실핏줄까지 타고 들어갔다. 단기간에 전투를 벌여 소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5년 내내 국정과제로 삼고, 관련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마약 관리는 대한민국의 명운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문제다.

조영주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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