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후진국' 오명… 비현실적 보험 기준까지 치료 방해

신은진 기자 2023. 3.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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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급여 기준으로 인해 다제내성 결핵과 광범위약제내성 결핵​ 환자가 최신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는 두 가지 '1위'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과 결핵 발생률 분야에서 모두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결핵의 경우, 2012년 이후 꾸준히 줄어들고 있음에도 여전히 OECD 가입국 중 결핵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이제는 난치 질환이라 불릴 만큼 치료가 까다로운 다제내성 결핵과 광범위약제내성 결핵 환자까지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치료제조차 사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매년 3월 24일은 법정 기념일로 지정된 ‘결핵 예방의 날’이자, 세계보건기구(WHO)가 결핵균 발견을 기념하고 결핵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지정한 ‘세계 결핵의 날’이다. 결핵 후진국 불명예 극복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다제내성 결핵과 광범위약제내성 결핵 치료에 대해 알아보자.

◇치료 까다롭고 완치율 낮은 다제내성 결핵·광범위약제내성 결핵
결핵은 치료약만 잘 먹으면 쉽게 완치되는 질환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환자의 90% 이상이 6~9개월의 치료를 거쳐 완치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치료제를 규칙적으로 복용하지 않거나, 치료를 조기 중단했을 때 발생하는 다제내성 결핵과 광범위약제내성 결핵은 얘기가 다르다. 두 질환은 치료가 까다롭고 완치율도 낮다. 내성이 있는 결핵균을 전파해 사회 전반에 문제를 일으킬 여지도 크다.

다제내성 결핵은 결핵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약제인 ‘이소니아지드’와 ‘리팜핀’에 모두 내성을 보이는 결핵이다. 다제내성 결핵은 치료성공률이 낮고, 치료 기간이 18~24개월로 장기간이며 약제 부작용 등으로 중간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다제내성 결핵의 치료 성공률은 2017년 기준 64.7%로, 선진국(70-80%)보다 낮은 수준이다.

광범위약제내성 결핵은 다제내성 결핵 환자 중 또다른 약제에도 내성을 보이는 결핵이다. 퀴놀계 약제와 우선 사용 권고 대상인 'A군'에 속하는 두 가지 약제(리네졸리드, 베다퀼린) 중 한 가지 이상에 추가로 내성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다제내성 결핵보다 약제 구성이 까다로워 치료가 어렵고, 효과를 보이는 항결핵 약제 수가 적다. 치료 성공률 또한 낮아 완치율은 30~50%로 추정된다.

다만, 신약이 발전하면서 다제내성 결핵 치료기간은 약 18~20개월로 단축되고, 주사제 사용 빈도가 감소했다. 치료성공률도 향상되는 추세이나 아직도 치료기간은 긴 편에 속한다.

◇ 신약있어도 사용 못 하는 현실
다행히 최근엔 결핵 중 치료가 가장 까다로운 광범위약제내성 결핵의 치료 기간을 단축하고 효과를 개선한 신약 ‘프레토마니드’가 등장했다. 이 약은 광범위약제내성 결핵 환자에게 베다퀼린, 리네졸리드와 함께 3제 병용요법(BPaL 요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3제 병용요법을 시행할 경우, 광범위약제내성 결핵 치료기간은 6개월로 단축할 수 있고, 완치율은 90%를 기대할 수 있으며, 복용 약제 수도 최소 5개에서 3개까지 줄일 수 있다. 이 같은 개선점이 인정돼 프레토마니드 3제 병용요법은 올해 1월부터 건강보험 급여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광범위약제내성 결핵환자가 프레토마니드 3제 병용 요법(BPaL 요법)으로 치료를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치료 효과가 떨어져 사용 환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결핵 주사제에 내성이 있음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제내성 결핵을 ‘이소니아지드와 리팜핀에 내성이 있고, 한 가지 이상의 퀴놀론계 약제 및 3가지 주사제(카프레오마이신, 카나마이신, 아마카신) 중 한 가지 이상의 약제에 내성을 보이는 결핵’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해당해야만 BPaL 요법을 보험급여로 사용할 수 있다. 카프레오마이신, 카나마이신, 아마카신 등 주사제 3종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퇴출 수순을 밟는 약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수년 전 다제내성 결핵을 정의할 때 주사제 3종의 내성 부분을 제외한 바 있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심태선 교수는 “우리나라의 광범위약제내성 결핵 급여 기준에 명시된 주사제들은 현재 임상 현장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며, "광범위 약제내성 결핵의 치료에 최신 치료인 'BPaL 요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심태선 교수는 "WHO에서 결핵치료와 관련한 새로운 지침을 발표한 만큼 급여기준의 개정과 관련하여 신속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다제내성 결핵은 '결핵 제로'로 가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관리되어야 할 부분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치료 트랜드도 환자를 빠르게 일상생활로 복귀시키기 위해 효과 높은 요법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등 치료환경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변화에 맞추어 결핵 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하고, 약제내성 결핵에 대한 개선된 치료환경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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