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지원법...박수칠 수 없는 이유 [경제칼럼]

2023. 3. 2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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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최근 공개한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 기준 후폭풍이 거세다. 미국 내 생산 증대와 안보 강화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지원 대상을 선정해 시설 투자 390억달러를 포함, 반도체 산업에 527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표 내용에는 독소 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초과이익 환수와 생산·연구시설에 대한 국방부의 접근권을 요구한 내용이다. 초과이익 환수는 1억5000만달러 이상 반도체 지원금을 받는 기업이 예상을 초과하는 수익을 올릴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이익을 환수한다는 내용이다. 초과이익 심사 과정에서 영업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내 생산시설에서 제조된 최첨단 로직 반도체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한 것도 사실상 첨단 기술 사찰을 의미해 기술 보안을 담보하기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최대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 반도체 설비 투자나 공장 증설을 못하도록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적용받는다. 이미 50조원 넘게 중국에 투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예외를 인정받지 못하면 생산 설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막대한 투자비를 날리고 중국에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7월, 향후 20년간 1921억달러를 들여 11곳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미국 정부에 밝혔지만 이를 수정할 빌미를 미국이 제공했기 때문에 투자 계획 재검토가 필요하다. 보조금 수령이 독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반도체 지원법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 재선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가드레일’ 조항의 예외 적용을 포함한 기술, 기밀 유출 방지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1980년대 후반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일본 반도체가 몰락한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미국과의 반도체 갈등이 심화되면서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했고, 그 이후부터 일본 반도체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시 일본은 반도체 시장이 기업용 대형 컴퓨터에서 PC로 빠르게 바뀌는 패러다임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고성능 제품에 집착한 결과, 세계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졌다. 또한, 일본 기업과 정부는 반도체 생태계가 ‘설계’는 공장 없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제조’는 위탁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파운드리가 맡는 ‘수평 분업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되는 것을 간과하고, 설계와 제조의 수직 통합을 고집하는 판단 착오를 범했다. 반면 미국과 대만은 팹리스와 파운드리로 강하게 치고 나갔다.

지금의 위기를 반도체 가치사슬(밸류체인) 전환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면 한국도 일본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칩4 동맹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되, 민·관 외교력을 총동원해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얻어내야 한다. 오는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서 윈윈하는 한·미 경제 안보 동맹 성과를 기대해본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1호 (2023.03.22~2023.03.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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