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처벌만 해온 검찰, 그 집안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건들 [최현정의 웰컴 투 아메리카]

최현정 2023. 3. 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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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정의 웰컴 투 아메리카] 유명 변호사 앨릭스 머독의 살인 사건 그리고 의문사

[최현정 기자]

"스티븐의 사건이 비밀에 부쳐지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즉시 재조사를 시작할 것이고 진행 사항은 바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3월 17일(현지 시각) 목요일 스티븐 스미스의 엄마 샌디는 모금에 참여한 이들에게 감사했다. 아들 사건에 관심 갖고 7800여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모아준 이들이다. 사건 재조사를 위해 부검을 시작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살인이 아닌 사고로 덮어졌던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 찾기 싸움이 시작된 것, 그건 아주 뜻밖의 사건으로 촉발됐다.   

교통사고로 바뀐 총기 사망
 
 스티븐 스미스의 묘비석
ⓒ cbs news
 
2015년 7월 8일 새벽 4시경,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다. 도로 한복판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아직 앳된 얼굴의 남자는 이미 숨져 있었다. 죽은 이의 머리엔 깊은 구멍이 나 있었고 손엔 총알을 막기 위한 상처가 있었다. 

사망자는 간호학과 대학생 스티븐 스미스, 당시 19살이었다. 그의 차는 시신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곳에서 주유 뚜껑이 열린 채 발견됐다. 처음 현장을 본 이들 모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가족들도 스미스가 누군가에게 공격받았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7일 후 부검 결과가 나오자 살인 사건은 교통사고로 급변했다. 자동차 사고로 인한 둔기 외상이란 부검 소견 이후 그 지역 가장 권위 있는 의대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의대 병리학자의 의견이 추가됐다. 죽은 이는 뺑소니 트럭 거울에 머리를 맞은 것이라는 것. 시신에서 유탄이나 파편을 발견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초기 수사 보고서에는 뺑소니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적혀 있었다. 지역 언론은 부검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한 검시관의 문서를 찾아냈다. 그러나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8년 동안 사건은 그렇게 덮였다. 2023년 3월 3일 아침 전 미국인이 지켜본 선고 전까지 말이다. 

공중파의 아침 뉴스가 끝난 이날 오전 9시, 미국 방송 채널들은 속보를 내보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법정이 미 전역에 생중계됐다. 지난 두 달여간 매일 뉴스 첫 꼭지를 장식하던 중년 남성이 색 바랜 죄수복을 입고 변호사 옆에 앉아 있다. 값비싼 양복을 입었던 이전 재판에서와는 달리 초라한 모습이다. 

전날 배심원 선고에서는 두 건의 살인 사건에 대해 유죄를 받았다. 이날은 주임 판사의 선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에게 아내 매기 머독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 남은 생애 동안 종신형을 선고합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폴 머독을 살해한 죄로도 여생 동안 종신형을 선고합니다. 두 징역은 연속해서 적용됩니다."

판사 클리프턴 뉴먼은 피고 앨릭스 머독(Alex Murdaugh)에게 가석방 없는 두 건의 종신형을 선고한다. 아내 매기 머독과 아들 폴 머독 살인 혐의였다.  
 
 앨릭스 머독이 2023년 2월 2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월터보로에 있는 콜레턴 카운티 법원에서 열린 살인 재판에서 증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서 깊은 법률가 가문

머독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사건은 2021년 6월 7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변호사 앨릭스 머독은 911에 전화해 다급한 목소리로 아내와 아들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신고한다. 자기 가문 소유의 개 사육장에서였다. 근처 어머니 집을 방문했다 집에 돌아오니 시신이 있었다고 했다. 

용의자도 동기도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사건 발생 3개월 후 그는 자신의 증조부가 세우고 그가 대표 변호사로 재직 중이던 로펌에서 사직했다. 사직 다음 날엔 외진 시골길에서 누군가 쏜 총에 머리 총상을 입고 입원한다. 

곧 그가 자신의 로펌에서 오랫동안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고 혼자였다는 외진 시골길에 먼 친척이 함께 있었음이 알려진다. 그 친척은 앨릭스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달라고 부탁했다고 인정한다. 

파문이 일자 그는 가족과 친지에게 사과 성명을 낸다. 자신은 마약 중독자이고 재활원에 들어가 치료받겠다며 경찰에 자수한다. 남아있는 아들이 1천만 달러에 달하는 생명 보험금을 받게 하기 위한 보험 사기 그리고 고객 돈 횡령 등 100여 건의 혐의에 대한 자수였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의 죽음에 대해선 끝까지 부인한다. 

9명의 배심원과 판사는 죽은 아들의 핸드폰에서 나온 결정적 증거를 더 신뢰했다. 사건 당시 현장에 없었다고 한 그의 말과 달리 죽은 아들의 휴대전화 속에는 그와 그의 엄마가 살해되기 몇 분 전 찍은 개 사육장이 녹화돼 있었다. 그 속엔 아버지 앨릭스의 목소리도 함께 녹음되어 있었다. 살인 사건 시간에 그는 모친의 집이 아닌 현장에 있었던 것.

그는 마약성 진통제 중독으로 인한 편집증으로 여러 차례 거짓말한 건 맞지만 여전히 살인은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배심원과 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당신을 포함한 당신 가족들은 이곳 법정에서 사람들을 기소해 왔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당신보다 덜한 행동으로도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 클리프턴 뉴먼 판사

주 검찰은 재판 전 심리에서 머독이 자신이 저지른 100여 건의 금융 범죄에 대해 동정심을 얻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의 아내와 아들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미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집중 심리 끝에 두 개의 종신형을 선고받은 머독은 이 지역 유명 법조 가문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는 모두 100년 이상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검사로 재직했다. 

"당신은 한 세기가 넘도록 이 지역 사회의 사법을 관장해 온 존경받는 가문 출신의 변호사입니다. 법원 벽에 할아버지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있도록 그 초상화의 철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 클리프턴 뉴먼 판사 

머독 가문은 이 지역의 법 왕조라 불렸다. 1920년 증조부 랜돌프 머독은 이 지역 5개 카운티의 첫 검사장이 된다. 열차 사고로 사망하기까지 20년간 봉직한 그 자리는 아들이 이어받았다. 할아버지가 46년간 재직한 후 은퇴한 뒤엔 2006년까지 그의 아버지가 바통을 이어 지역 검사장을 한다. 자원 검사로 활동하던 앨릭스 머독은 종종 아버지의 사건 처리를 도우며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다. 

머독 가족을 둘러싼 세 개의 살인 사건

지역의 강력한 법률 세도가 머독 가족 주변엔 여러 의문사가 있었다. 

머독은 처음 살인 사건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게 그의 아들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9년 발생한 보트 음주 사고 사망자 멜로디 가족을 언급한 것. 그는 재판에서도 자신이 살인 혐의를 받는 이유를 보트 사고 가족들의 음모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친구가 운전하려고 하니 폴이 자기 보트라며 못하게 했어요. 폴에게 내리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안 된다고 했고요."
- 마일리 알트만(폴 머독 친구, 보트 사고 부상자)

사망한 아들 폴은 2019년 친구 중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트 사고로 기소됐다. 당시 19세의 폴은 사촌과 친구들을 태우고 보트를 과속 운전하다 다리에 부딪혀 그중 한 명을 숨지게 했다. 나머지 4명도 입원해야 할 정도의 큰 사고였다. 당시 폴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법적 한계치의 3배에 달했다. 병원 직원들은 아버지 앨릭스가 부상자들의 병실을 들락거리며 누군가에게 전화로 문제없다고 했던 내용을 기억했다.  

"여자애(머독의 여자친구였던 멜로디)는 죽었어. 걱정 안 해도 돼."

아들 폴은 음주 상태에서 보트를 운전한 혐의를 포함해 3건의 중죄로 기소됐다. 생존자들은 아버지에게 공범자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죽은 친구의 시신은 8km 떨어진 강 하류에서 일주일 만에 발견됐다. 음주 운전 사망 사건이었지만 폴에게 적용된 3건의 범죄는 모두 기소 중지됐다. 어떠한 재판도 없었다. 

보트 사고 한 해 전 그의 집에서 일하던 가사도우미가 사망한다. 20년 넘게 집안일을 돕던 글로리아는 가족이 키우던 개에 걸려 넘어져 계단에서 굴러떨어진다. 머리와 갈비뼈가 손상되는 큰 사고를 당한 후 며칠 만에 사망했다. 몇 년이 지나 글로리아 가족들은 사망 일주일 전 그녀가 자신의 보험 서류에 사인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불어 보험금 44억 모두 앨릭스가 착복했다는 것도.

이번 재판을 지켜보며 그 가족들은 글로리아의 죽음이 정말 사고인지 의심하고 있다. 
 
 머독 가족의 의문사를 다룬 다큐
ⓒ cbs news
 
부유하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던 가족 중 지금 유일하게 일상을 누리고 있는 큰아들 버스터 머독, 그도 곧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스티븐 스미스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연계돼 있다는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커밍아웃한 게이였던 스티븐 스미스와 그는 2014년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ABC4 뉴스에 따르면 당시 둘이 연인 사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스티븐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머독 소유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수사관들은 이 사건에 아들 버스터 머독이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그들 가족을 심문해야 한다는 의견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법무부는 이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를 재개한다고 발표한 상태다. 

"이날은 내가 기다리던 날입니다. 8년 만에 들은 최고의 소식입니다. 스티븐은 훌륭한 아이였고 그렇게 죽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스티븐 스미스의 엄마 신디가 담담히 자신의 심경을 말했다. 

몰락하는 "머독 왕조"
 
 단란했던 머독 가족
ⓒ cbs news
 
미국의 케이블 TV HBO는 이 가문의 몰락을 다큐로 방영하며 "머독 왕조"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 가문의 몰락 스토리를 이렇게 정의했다. 

"견제받지 않는 특권의 힘과 한 가문이 남긴 죽음과 파괴의 흔적에 대해 질문합니다."

앨런 윌슨 주 법무부 장관은 판결 후 기자 회견에서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판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형사 사법 제도가 오늘 밤 그 효과를 발휘했다"며 "2021년 6월 7일 밤 사랑하고 믿었던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그들은 살아서 여기에 설 순 없다"며 이렇게 말을 마쳤다. 

"우리는 그들을 다시 데려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의를 가져올 수는 있습니다."

판사의 명령으로 떼어진 증조부 머독의 초상화가 법정에 다시 걸릴 일은 없어 보인다. 법조 왕국 건설 후 110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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