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출퇴근길 자율방역

김경택 2023. 3. 24. 04:0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지난 20일은 정말 해제된 건지 알기 어려운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만 해제되면 사실상 모든 곳에서 눈치 볼 것 없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는 당분간 접어야 할 듯하다.

2년5개월간 유지됐던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는데 끝내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장면을 자율방역의 모범 사례로 기록할 수 있을까.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지난 20일은 정말 해제된 건지 알기 어려운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출퇴근길 버스와 지하철에는 마스크 착용자가 미착용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하철 객차를 옮겨 둘러봤지만 마스크 벗은 사람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하늘이 부옇게 보일 정도로 미세먼지가 극심한 날이었으니 그랬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자발적 방역 수칙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만 해제되면 사실상 모든 곳에서 눈치 볼 것 없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는 당분간 접어야 할 듯하다. 어쩌면 출퇴근길 마스크 착용은 ‘뉴노멀’이 될지 모르겠다. 마스크 벗기를 두려워한다는 뜻의 ‘노마스크 포비아’는 마스크 제조업자들에게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지긋지긋했던 코로나19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누구나 한 번은 코로나에 걸려 고생해봤기 때문에 마스크 벗기를 주저할 수 있다.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는 이미 3000만명을 넘어선 상태다. 한국 인구가 5000만명 정도이니 5명 중 3명은 코로나에 걸린 셈이다. 숨은 감염자까지 합치면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감염됐을 것이다. 질병관리청의 항체양성률 조사 결과 등을 보면 3600만명가량이 자연감염에 따른 항체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모두 감염된 뒤에야 팬데믹이 끝날 판이었는데 무리한 방역 수칙을 왜 강요했냐는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확산 속도나 치명률 등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K방역의 성공 앞에서는 비판적 접근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한 한국의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는 세계 평균보다 낮으며 치명률 또한 낮게 관리된 수준이다.

물론 K방역을 말할 때 어느 나라보다 강력했던 방역 협조 분위기를 빠뜨릴 수 없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나 사회적 거리두기, 심지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운동이 벌어진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보건 사업가인 빌 게이츠는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이라는 책에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 미국의 역사는 마스크의 역사만큼이나 길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1918년 마스크 착용에 저항하던 한 미국인이 마스크를 쓰라고 종용하는 위생 검사관을 때렸고, 이 검사관이 그를 총으로 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책에서 한국은 베트남과 함께 ‘감염병 접촉자 추적’에 뛰어난 나라로 꼽힌다. 메르스 사태 이후 마련된 법에 따라 신용카드, 휴대전화, CCTV 데이터를 활용해 감염된 사람의 동선을 추적하고 이 정보를 공개하는 데 성공한 곳이라고 소개됐다.

다만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선 K방역의 점수를 다시 매기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식당의 동석 인원 제한이나 대중교통 이용시간 단축 등 개인의 자유를 일부 포기했던 것에 비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방역이 이뤄졌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잉 대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방역이라는 대의 앞에 한 번 흔들린 기본권은 나중에 더 쉽게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2년5개월간 유지됐던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는데 끝내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장면을 자율방역의 모범 사례로 기록할 수 있을까. 쉽게 되돌리지 못할 만큼 제한됐던 개인의 자유 침해 수준을 수치화해 방역 성과를 다시 따져보는 일은 영업시간 단축으로 발생한 자영업자들의 손해를 계산해 배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노마스크 포비아는 코로나 트라우마를 벗어난 뒤에야 사라질 수 있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