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공아(空我)'를 즐기는 '김해 예술계 영양사' 회현동 소극장 이정화대표 [주목 이사람]

박석곤 2023. 3. 2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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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에 살면서 김해 아마추어 예술인들을 위해 6년 동안 남몰래 '예술 자양분' 공급
김해 무명 예술인들을 '프로 예술인'으로 키우고자 1억원이 훌쩍 넘는 개인비용을 충당
넓은 공간에서 '연극 학교' 운영해 김해 아동 청년들에게 '연극 꿈' 펼칠 기회 주고 싶어 

"연극으로 오롯이 '삶의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김해 '회현동 소극장' 이정화 대표 

연극무대를 통해 예술과 인연이 적은 여느 '필부필남'들을 수준 높은 '문화 시민'으로 길러내는 김해 '회현동 소극장' 이정화 대표(50). 

이 대표는 평범한 한 가정의 전업주부다. 하지만 일명 '연극계의 디딤돌이자 사다리' 역할을 하는 '김해지역 예술계 대모(代母 )'이기도 하다. 

'문화계 비주류'인 그는 김해 예술계에서 무명의 예술인들에게 '예술 자양분'을 공급하는 이른바 '예술계 영양사'로 통한다. "정년이 없어 연극이 좋다"는 그가 제도권 예술계에 도전한 것은 연극에 대한 강한 열정과 그만의 강력한 '무기'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돈이 신으로 통하는 '자본 만능주의' 세상이지만 누구든 삶에 여유가 있다 해도 돈벌이가 안 되는 연극계에 관심을 두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이 대표는 분명히 평범한 가정주부란 '담벼락'을 뛰어넘은 셈이다.

그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연극 공연을 접할 기회가 적은 시민을 위해 연극 공연 티켓을 무료로 기부하고 있다. 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든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의 거주지는 경남 창원이다. 그런데 전혀 연고가 없는 김해에서 문화 예술의 '둥지(회현동 소극장)'를 틀었다. 이 '둥지'에서 수많은 김해 예술인과 연극인들을 길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명 '아마추어의 프로화'란 그만의 예술 '개인기'로 김해 문화 예술계에 '중흥의 바람'도 일으키고 있다. 


이 대표는 개인의 경제적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른바 '통 큰 여걸'로도 통한다. 그는 무명의 예술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연극에 전념할 수 없을 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김해 예술계 부흥을 위해 6년간 1억원이 넘는 '사비'를 내놨다. 이 비용은 남편이 매월 주는 생활비를 절약한 돈이다. 가정주부가 생활비를 쪼개 지역 예술계를 활성화하고자 사비를 충당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 대표의 이런 삶을 요약하면 오롯이 연극으로 '자아'를 추구하는 연극 '공아(空我)'를 즐기는 유형이다.
"예술을 무기로 정치적 꿈이 있거나 개인의 명예나 이윤을 추구할 마음은 추후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다면 그는 왜 사비를 충당하면서까지 김해 예술인들을 위해 헌신할까. 

그 배경과 사연이 궁금해 이 대표를 '쇼셜캠퍼스 온 김해(김해시 부원동 기업은행 7층)'에서 만나 그의 숨은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대표는 김해에서 '회현동 소극장(김해도서관 옆)'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김해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연습공간이자 무대로 활용하는 일명 김해 예술인들의 '아지트'인 셈이다.

이 대표는 연극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연극 무대에 올릴 '대본'을 직접 쓴다. '대본'을 소화할 배우까지 찾아 무대에 올린다. '아이러니(irony)'는 연극 비전공자로서 연극 공연과 기획에서 연출까지 맡는 이른바 '일당백'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연극과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어떤 연유로 연극에 발을 내디뎠나

-어릴 때는 교회에서 연극을 했고 중고교 시절에는 취미생활로 학교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20대 때에는 주변에 연극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스쳐가는 인연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평생교육원 CEO 인문학 최고과정에 다니면서 교수님의 추천으로 연극계와 인연을 맺은 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평소 평범한 삶보다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도 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연극의 장점은 뭔가

-일반인들은 진실이든 겉치레든 대부분 말을 많이 하지만 진심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런데 연극은 또 다른 방식의 잔잔한 외침이라 생각한다. 뭔가를 설명하고 말하고 싶을 때 연극은 내면에 감춰진 속내를 드러내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하고 싶었던 말을 아예 '멍석'을 깔아놓고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회상하면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사춘기 시절을 친척집에서 보내면서 어려움이 많았고 성장과정에서 억눌렸던 말 못할 사연들도 많았다. 마음속 짓눌린 여러 감정들을 연극무대를 통해 속시원하게 뱉어냄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연극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어떤 유형의 주제들을 공연무대에 올리나

-주로 여성에 관한 얘기들을 다룬다. 학대받는 여성이나 결혼이민자 등 국내에서 당당하게 자기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여성들의 사연을 무대에 올린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 이야기를 다룬 '꽃포장 길마차'나 '부원동 블루수'등은 대표적인 주제들이다. 작품 선정 때는 다양성을 추구하되 실용적인 부분도 함께 고려해 선정한다. 

김해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 왜 김해에서 연극 '둥지'를 틀었나

-창원시민이지만 평생교육원 최고 과정에 다닐 무렵 연극과 관련해 교수님의 소개로 김해지역에 소재한 한 연극공연기획팀을 알게 됐다. 당시에는 연극계의 '문외한'이었지만 이 공연기획팀의 도움으로 '연극 생태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 공연기획팀의 도움을 받아 기획작품을 연극무대에 올린 게 김해 예술인들과 인연을 맺게 된 요인이다.

김해지역 연극 관람 사각지대에 처한 시민을 위해 무료 공연티켓을 김해시에 기부했다.

가정주부로서 개인 생활비를 쪼개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충당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2018년부터 지금까지 6년째 사무실 임대료에서부터 운영비를 포함 매월 200만원씩 총 1억5000만원 정도 충당했다. 이 비용은 남편이 준 생활비를 쪼개 모은 돈이다.

김해 아마추어 예술인 대부분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연극에만 전념할 수 없는 처지도 한 요인이었다. 회현동 소극장 배우(15명)들에게 연극협회에 가입하고 제도권 연극제에 출전해 상을 받을 때까지는 경제적 뒷받침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지켜야 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연극을 통해 어떤 보람을 느끼나

-지금까지 아동극과 창작극을 포함 총 20여 편가량을 무대에 올렸다. 직접 창작한 작품도 9편가량 된다. 지난 2월에는 김해 예술 활성화를 위해 취약계층과 연극 소외계층을 위해 관람권 500장(장당 1만5000원)을 김해시에 기증해 이들에게 무료로 관람하도록 했다.

지난해 8월 가정폭력 피해여성들 이야기를 코믹물로 제작한 '부원동 블루수'를 한 달간 회현동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처음에는 관람객들이 하루에 약 40명 정도였는데 연극 막바지에 이르자 60명이 회현동 소극장(전체 60석)을 꽉 채워 큰 보람을 느꼈다. 한 곳에서 공연을 오래하게 되면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이 찾는다는 체험을 하고 연극 공연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

 김해문화의 전당에서 극단 배우들의 무대 공연 연습 과정을 지휘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회현동 소극장에 나오는 배우들은 대부분 아마추어다. 그러다 보니 아직 연극협회에 가입이 안 됐다. 전문 연극인이 되려면 협회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배우들이 제도권 연극제에 출전할 수가 없다. 연극제에 출전을 못하니 여전히 아마추어에 불과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극단 회원들이 협회에 가입해 제도권 전국 연극제에 출전해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누군가는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배우들이 어디서 연극을 하든 이들의 연극활동에는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자유롭게 기량을 마음껏 펼치게 하려면 김해지역 극단 간의 협업이 절실하다. 김해 예술계가 이런 문제점을 풀어준다면 김해 예술계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바람이 있다면 지금 운영 중인 회현동 소극장은 공간이 비좁아 애로점이 많다. 오롯이 공연만을 위한 연습공간과 부대시설을 갖춘 더 넓은 소극장을 갖는다면 '연극학교'를 운영하고 싶다. 이 '연극학교'를 통해 무대에 오르고 싶은 김해지역 아동 청소년들에게 마음껏 기량을 펼칠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이 대표는 "남의 후원을 받지 않아도 극단(회현동 소극장)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사회적기업협의체가 주는 표창을 받아 남다른 예술 열정이 빛을 바래지는 않았다.

표창 수상과 관련해서는 "지역 문화 예술계에서 누군가는 나의 숨겨진 깊은 심연의 고달픔을 알아줘 큰 위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 지점에서 이 대표는 '지역 예술계 영양사'로서 마음을 다잡는 그만의 예술 '신독'을 보였다.

박석곤 기자 p2352@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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