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조' 양곡관리법 국회 통과…"과잉 생산·쌀값 하락 우려"
정부가 매년 남는 쌀을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3일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농가 소득 보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여당은 매년 1조원 이상의 재정을 투입하고도 부작용이 훨씬 크다며 ‘대통령 거부권’ 요청을 시사했다. 전문가들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쌀의 과잉 생산을 유도해 오히려 쌀값 폭락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野 “정부 재량권 반영”…정부 “본질은 그대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쌀값 하락 폭이 평년 대비 5~8% 이상이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인 기준은 해당 범위 내에서 정부가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쌀값 안정 및 농가 소득 보장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당초 원안은 ‘3% 이상 초과 생산’, ‘5% 이상 가격 하락’ 등 단일 기준이 담겼지만, 민주당은 국회의장 중재안을 수용해 정부 재량권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또한 벼 재배면적이 증가한 해엔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추가 생산량을 매입하지 않아도 되고, 재배면적이 증가한 지자체에 대해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정부 매입 물량 감축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단서 조항도 추가했다.
의무매입시 매년 1조 투입…“미래 농업·농촌 발전 저해”
정부는 쌀 의무 매입이 쌀값 안정이나 농가 소득 보장에 전혀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개정안 원안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의무매입 시 필요한 예산은 올해 5737억원에서 2027년 1조1872억원, 2030년 1조4659억원으로 매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산지 쌀값은 2030년 17만2709원(80㎏ 기준)으로, 올해(18만626원)보다 오히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안 그래도 매년 쌀 소비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과잉 생산 현상이 굳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통계청의 ‘2022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7㎏으로 2021년(56.9㎏)보다 0.4% 줄었다. 하루 소비량은 155.5g(한 공기 반) 수준이다. 196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소다.
김종인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무매입 기준을 완화한) 수정안을 기준으로 다시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원안과) 큰 차이는 없다”며 “미세한 수치 조정만으로는 농가가 쌀 생산량을 줄일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전략작물직불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등을 통해 쌀 수급을 안정화하고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던 정부 정책도 위협받을 수 있다. 여기에 막대한 예산이 매년 의무매입에 투입되면서 청년 농업인 육성, 스마트팜 산업 활성화 등 미래 농업·농촌을 위한 투자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정부의 '2023년 쌀 적정 생산대책 추진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적정 벼 재배면적을 69만 헥타르(ha)로 보고, 지난해 벼 재배면적(72만7000ha) 대비 약 5%(3만7000ha) 줄이기로 했다. 과잉 생산으로 쌀값이 하락하고, 쌀값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쏟아 시장에서 격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쌀 생산을 줄이는 농가를 위해 주는 당근이 ‘전략작물 직불제’다. 기존 쌀 외에 가루쌀·밀·콩 등 대체 작물을 재배하면 직불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자연스럽게 쌀 생산량 감소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해준다면 농가 입장에선 굳이 쌀 대신 대체작물을 경작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당장 남는 쌀을 매입하면 단기적으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쌀값 하락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농민단체들 반발 “농민들도 동의 안한다”
대다수 쌀 농가에서는 ‘현행안보다 오히려 퇴행하는 법안’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농민단체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단지 수급조절로만 끝나지 않도록 농업생산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요청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며 전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개정안은) 구조적 수급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쌀 가격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명분마저 스스로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하나…“충분히 숙고”
정부에 이어 여당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예고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취임 후 첫 거부권 행사를 결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통령실은 “법률개정안이 정부에 이송되면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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