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재고에 솔리다임 발목까지…SK하이닉스 정상화 먼길
반도체 혹한기로 상반기 실적 부진 불가피…하반기 서버·프리미엄 시장 회복 기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수요 둔화로 험로를 걷고 있다. 판매 감소로 재고가 쌓이고 있는데다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인수한 솔리다임(인텔 낸드 사업부)도 동반 부진을 겪으면서 실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수익 개선이 절실한 SK하이닉스는 차세대 서버용 CPU 출시에 따른 DDR5 교체 수요, 게이밍PC·고사양 노트북 등 프리미엄 제품 판매 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따른 IT기기 수요 회복이 본격화되면 올 하반기에는 재고 감축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실적부진 및 재무구조 악화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재고부담, 인수 회사 솔리다임의 저조한 영업실적 등이 주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44조6216억원이며 영업이익은 6조8094억원이다. 2021년과 견줘 매출은 3.8% 늘어난 반면 영업이익은 절반(45%) 가까이 급감했다.
하반기부터 메모리 수요가 본격적으로 감소했고, 제품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작년 4분기에만 1조7012억원의 영업적자를 봤다. 분기 단위 영업적자는 2021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업황 부진이 심화되면서 주요 고객사들이 일제히 재고 축소에 나서자 판매에 직격탄을 맞은 SK하이닉스의 재고는 눈에 띄게 불어났다. 2022년 말 기준 재고자산은 15조6647억원으로 1년 새 6조7146억원 늘었다. 재고자산 규모가 늘어나면서 영업활동현금흐름도 이 기간 5조원 넘게 줄었다.
여기에 낸드 사업부 관련 무형자산 손상차손 1조5500억원, 키옥시아 투자자산을 포함한 금융상품 평가손실 6200억 등이 반영되면서 작년 4분기에만 3조7000억원이 넘는 순손실을 봤다.
손상차손 1조5500억원은 SK하이닉스 본사와 자회사 솔리다임이 보유한 낸드 무형자산 가치가 떨어진 데 기인했다. 낸드 가격이 하락하면서 재고자산평가손실(영업외비용)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앞서 SK하이닉스는 2021년 12월 인텔의 낸드 사업 부문 1단계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고 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을 출범시켰다. 총 인수 규모는 88억4400만 달러(11조3000억원)이며 이중 약 66억 달러를 지급했다. 잔금 22억3500만 달러는 2년 뒤인 2025년 3월까지 지급할 예정이다.
11조원짜리 낸드 사업부 인수는 D램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전 대표는 2020년 인수 발표 당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등 고부가가치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급성장하고 있는 낸드 사업에서 D램 못지않은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다만 인수 이후 메모리 시황이 크게 고꾸라지면서 SK하이닉스의 낸드 사업은 난관에 봉착했다. 주요 고객사들의 수요 회복, 그에 따른 제품가 정상화가 시급하지만 아직까지 긍정적인 시그널은 없는 상태다.
더욱이 D램 보다 낸드 회복이 더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SK하이닉스·솔리다임 낸드 사업은 당분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한국신용평가는 '2023 KIS 인더스트리 아웃룩' 보고서를 통해 "낸드 재고수준을 고려하면 업황 반등 시점은 2024년으로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 글로벌 경기침체, IT업체들의 투자 축소 및 구조조정 등의 여파가 전체적인 반도체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은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서버 시장 회복, 중국 리오프닝은 반도체 기업들에게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반도체 한파'가 상당하지만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데이터센터업체(하이퍼스케일러)들의 투자가 점진적으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다.
최근 인텔이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를 내놓은 점은 호재다. 서버용 CPU 시장에서 인텔의 점유율이 90%에 육박하는 만큼 고부가가치 D램인 'DDR5' 교체 수요가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쟁사인 AMD도 지난해 11월 서버 CPU 제노아(Genoa)를 내놓아 DDR5 채용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중국의 봉쇄 조치 해제로 소비가 회복되면 휴대폰, IT기기 등 교체 수요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프리미엄 제품인 게이밍PC, 고사양 노트북 수요도 관건이다.
반도체 턴어라운드는 어디까지나 시장 상황이 받춰져야 가능한만큼 SK하이닉스는 앞서 발표한 감산 정책을 유지하면서 이번 '혹한기'를 버틸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들의 공급 조절 노력과 시장 수요 회복이 맞물리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반등 시점도 앞당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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