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김병준 체제 한 달…경총과 통합설 '잠잠', 4대 그룹 재가입 '요원'
4대그룹 재가입, 차기 회장 인선 등 남은 5개월 임기 빠듯
23일로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 체제 한 달을 맞는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허창수 전 회장의 사임으로 혼란에 빠졌던 전경련을 짧은 시간 내에 안정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4대그룹 재가입과 중량감 있는 차기 회장 찾기 등 전경련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과제들을 해결하기에 남은 5개월의 임기는 빠듯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경련은 지난 17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과 공동으로 도쿄 경단련회관에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을 개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은 한국 경제인을 대표해 개회사를 했다.
일본 경단련의 오랜 카운터파트너이자, 대일 경제외교의 창구 역할을 해왔던 전경련의 존재감이 다시 부각되는 대목이었다.
전경련은 윤 대통령의 방일에 앞서 지난달 27일 MZ세대의 70% 이상이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내용의 설문결과를 배포하고, 이달 15일에는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해 일본인 관광객 회복에 따른 국내 경제효과를 부각시키는 내용의 조사자료를 내는 등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노력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 20일 경제 6단체가 윤 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환영하는 공동성명을 낼 때도 전경련이 대표 단체로 언론사들에 성명을 배포했다.
전경련은 윤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일본 경단련과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하고 앞으로 기금운영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맡기로 하면서 앞으로도 한일 경제협력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됐다.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당시 4대그룹 총수가 참석한 것도 전경련으로서는 고무적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회원사는 아니었지만 행사에 참석해 전경련에 힘을 실어줬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로 4대그룹이 모두 탈퇴하며 위상이 급격히 축소됐던 전경련으로서는 이들의 복귀로 과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볼 만한 계기가 되는 일이었다.
전경련은 내달 예정된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도 4대그룹 총수들이 모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서는 이같은 전경련의 위상 제고의 일등 공신으로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을 꼽는다. 그는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당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현 정부와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방미 행사를 전경련이 주관하게 된 데도 김 회장 직무대행의 존재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이 나온다.
전경련의 위상이 다시 높아지면서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통합설은 잠잠해지는 모습이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경총을 종합 경제단체로 확대 개편한 이후 전경련과의 역할 중복을 이유로 줄곧 두 단체의 통합을 주장해 왔다.
지난 1월 허창수 전 회장의 사의 표명 이후 차기 전경련 회장 후보군 중 하나로 손 회장이 물망에 오르면서 두 단체의 통합설은 다시 한 번 불거졌다.
하지만 김 회장이 직무대행 취임 이후 보여준 여러 행보로 인해 통합설은 잠잠해졌다. 그는 지난달 23일 취임 직후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각 단체의 고유한 설립 배경이나 취지에 따라 역할을 하는 것이 옳다”며 경총과의 통합 가능성을 일축했다.
뒤이어 전경련의 존재 의미를 부각시키는 일련의 노력들을 통해 자신의 발언이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장 재계에 무게감 있는 후임 회장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김 회장 직무대행을 선택한 것은 전경련에게 신의 한 수가 된 것 같다”면서 “혼란을 빠르게 수습하고 조기 안정화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김 회장 직무대행의 앞에는 큰 과제가 놓여 있다. 그의 역할은 말 그대로 ‘직무대행’이다. 임기도 6개월로 한정돼 있다. 남은 5개월간 차기 회장 인선과 4대그룹 재가입 등 전경련을 2016년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데 필요한 난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두 문제는 서로 얽혀 있다. 4대그룹이 전경련으로 돌아온다면 차기 회장 적임자를 찾는 것도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단체인 전경련에 최상위 대기업들이 빠져 있는 상황에서 무게감 있는 인사가 이 단체를 이끌겠다고 나서긴 힘들다.
현재로서는 4대그룹의 전경련 복귀는 요원한 상황이다. 4대그룹 모두 회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정치적 요인에 얽혀 크게 데인 적이 있는 대기업들이 특별한 이득이 있지 않는 한 다시 전경련 회원사의 이름을 달 이유는 없어 보인다.
4대그룹 중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도 전경련에게는 악재다. 재계 대표단체의 위상이 대한상의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최 회장 뿐 아니라 다른 총수들에게도 전경련에 힘을 실어주는 게 껄끄러운 일일 수 있다.
정·관계쪽 인맥은 두터울지언정 재계 쪽으로는 인연이 깊지 않은 김 회장 직무대행이 총수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는 일도 예상하기 힘든 시나리오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전경련이 해외에서 주최하는 경제인 행사의 경우 대통령의 해당국 방문 일정의 일환으로 참가할 수는 있지만, 전경련 재가입 의향과는 무관하다”면서 “현재로서는 전경련 재가입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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