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200년 전 베토벤의 죽음, 독살 아니었다

김봉수 입력 2023. 3. 23. 09:55 수정 2023. 4. 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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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케임브리지 고고유전학 연구팀
머리카락 유전자 복원해 분석한 결과
"'간 질환'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돼"
음주-유전적요인-바이러스성 간염 복합 작용
그동안 알려진 '납 중독'은 아냐
청력 상실 원인은 확인 안 돼

독일의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년)은 찬란한 음악적 업적 외에 미스터리한 사인(死因)으로도 세간에 오르내렸다. 사망하기 26년 전 돌연 청력을 잃었고, 납 중독, 자살,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사 등 여러 가지 설이 나돌았다. 심지어 본인도 갑작스러운 청력 상실 후 중독을 의심했다. 친척들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죽으면 꼭 의사에게 사인을 확인해달라고 해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약 200년 만에 과학자들이 첨단 유전자 분석 기술을 통해 분석한 결과 복합적 요인으로 인한 간 질환이 사망 원인으로 확인됐다.

22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유전학 연구팀이 최근 생물학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이같은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고 전했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 유전 물질을 추출해 분석해 보니 복잡한 요인으로 인해 발병한 간 질환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납 중독설'은 신빙성을 잃게 됐다. 과거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 납 성분이 검출됐다며 사망 원인으로 추정하는 연구 결과가 종종 나왔었다. 특히 2005년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국립연구소 연구팀이 베토벤의 두개골 파편을 강력한 X선으로 촬영한 결과 납 농도가 높게 검출됐다고 밝히면서 '정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최근 시간이 많이 지나 다소 훼손된 샘플이라도 유전자 DNA 시계열 분석이 가능한 첨단 기술을 사용해 이같은 납 중독설을 뒤엎었다. 연구팀은 베토벤의 것이라고 알려진 총 8개의 머리카락 묶음을 분석했는데, 이 중 5개가 같은 사람의 것이라는 점을 확인해 이를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한 샘플로부터 유전 물질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고, 여기에서 베토벤의 유전자(genome)의 약 3분의 2를 복구해 시퀀싱 분석을 통해 질병 유발 유전자를 분석했다. 이 결과 베토벤은 유전적 요인과 알코올 남용, 바이러스성 간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간 질환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구체적으로 베토벤의 유전자 분석에서 간경변증(liver cirrhosis)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PLPLA3 유전자 특정 변이체 2개가 확인됐다. 간 손상을 일으키는 유전성 혈색소침착증(hereditary haemochromatosis)을 유발하는 HFE 유전자의 2가지 변이체도 발견됐다. 또 바이러스성 간염을 일으켜 간에 손상을 주는 헤파티티스(hepatitis) B 바이러스의 조각도 발견됐다.

연구를 주도했던 트리스탄 베그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런 유전자 변이들은 역사적 기록에서 베토벤이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로 기록됐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베토벤이 사망할 즈음에 (알코올 남용으로 인해) 간 손상의 위험이 더 크게 늘어났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베토벤이 언제 어떻게 (헤파티티스 B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알지 못한다"면서도 "그는 사망 수개월 전 바이러스성 간염이 재활성화돼 앓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은 유전자 분석 결과는 베토벤의 사망과 관련해 남겨진 역사적 기록과도 일치한다. 1826년 12월 베토벤의 건강은 빠르게 악화됐으며, 황달과 팔다리가 부어오르는 증세가 나타났다. 이는 모두 간 부전의 징후다. 베토벤은 이후 1827년 3월 사망할 때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연구팀은 그러나 베토벤이 왜 청력을 상실했는지에 대해선 알아내지 못했다. 연구팀은 베토벤의 유전자를 분석하면서 청력 손실과 연결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 즉 파제트병이나 루푸스(낭창ㆍ피부결핵) 등을 앓았는지 여부에 대해 검사했다. 이 결과 베토벤은 루푸스 발병 위험이 높은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긴 했다. 하지만 루프스 병에 걸렸다고 늘 청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연구팀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현재까지 많은 의학사 연구자들은 베토벤이 이경화증에 걸려 청각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등골(stapes)이라고 부르는 귀속의 작은 뼈가 다른 부분과 합쳐지는 증상을 말한다. 이경화증을 일으키는 유전적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것이 확인될 경우 추후 베토벤의 유전자 분석 결과를 재분석해 청각 장애의 원인인지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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