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마천루 주거지 될까…‘반백 살’ 아파트 ‘서울 맨해튼’으로 변신 [재건축 임장노트] (10)
#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한강변으로 늘어선 아파트 숲. 준공한 지 50년을 채워가는 노후 아파트 단지들이다. 이곳 아파트 숲을 지나다 보면 정비사업 수주전을 준비 중인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성공적인 재건축을 기원합니다’라고 걸어놓은 현수막이 즐비하다. 최근 재건축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승인된 ‘대교’아파트다.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 이후 ‘반백 살’ 아파트가 많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재건축 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안전진단 신청부터 정비구역 지정 등 진행을 앞당기기 위해 속도를 내는 한편, 최고 층수를 50층 이상으로 설계해 재건축 방안을 적극 추진하는 모습이다.
여의도 재건축 단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대부분 단지가 아주 오래됐다는 점이다. ▲공작 ▲광장(1·2동, 3~11동) ▲대교 ▲목화 ▲미성 ▲삼부 ▲삼익 ▲서울 ▲수정 ▲시범 ▲은하 ▲장미 ▲진주 ▲초원 ▲한양 ▲화랑아파트가 대부분 1970년대에 지어져,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훌쩍 넘겼으며 준공 50년에 가까워진 곳도 있다. 아파트가 노후화해가는데도 지금까지 여의도 아파트들은 대지지분이 낮아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을 통해 각종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신통기획은 민간이 주도하는 재개발·재건축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가 함께 계획안을 짜 빠른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제도다. 대신 기부채납, 임대주택 등으로 공공성을 확보한다. 서울시는 올 1월 ‘최고 35층 룰’을 없애는 걸 골자로 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도 확정 공고했다. 이어 지난 2월 9일에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조건으로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 건립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여의도는 주거지역과 준주거지역, 상업지역이 섞여 있는 덕분에 다른 지역보다 용적률이 더 높다. 50층 넘는 초고층 아파트를 추진하면 ‘수지타산’이 맞아들어간다. 특히 신통기획을 통해 용적률 등 인센티브를 받으면 재건축 사업성이 한층 개선된다. 특히 여의도 일대에서는 최고 층수를 50층 이상으로 설계한 주민 제안안을 서울시에 제출하려는 움직임이 단지별로 활발하다.
시범·진주·대교·한양·삼부
최고 54~65층 초고층 재건축 추진
1972년 준공해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시범아파트(1584가구)는 지난해 말 ‘신통기획 1호 재건축’ 단지로 지정돼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시범아파트에 대한 신통기획안을 확정했다. 최고 65층 재건축을 허용했다. 지난해 4월 서울시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초안에서는 60층 규모로 재건축하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이보다 5층 더 높아졌다. 시범아파트가 65층으로 지어지면 지금까지 알려진 여의도 내 재건축 단지 중 가장 높은 아파트가 된다.
시범아파트 용도지역은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상향됐다. 용적률은 기존 300%에서 400%로 올렸다. 전체 가구 수는 2472가구로 제시됐다. 주민 의견을 반영해 전용 200㎡ 9가구, 전용 135㎡ 385가구, 전용 101㎡ 750가구, 전용 84㎡ 988가구, 전용 59㎡ 340가구 등 중대형 위주로 구성됐다.
진주아파트(376가구)도 사업 속도가 빠른 편에 속한다. 단지를 ‘최고 58층’으로 재건축하는 정비계획안을 영등포구청에 제출한 상태다.
진주아파트는 인근 단지인 서울·수정·공작아파트 등과 함께 여의도 금융 중심 지구에 속해 있고, A·D동은 일반상업지역으로, B·C동은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 중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묶여 있는 2개동을 일반상업지역으로 종 상향하고, 용적률을 469.4%, 지하 4층~지상 58층으로 지어 올리겠다는 목표다. 재건축운영위 측은 종 상향에 따른 기부채납 비율을 토지 기준 35% 정도로 예상한다. 진주아파트 가구당 평균 대지지분은 37.95㎡(11.5평)다.
한양아파트(588가구)도 지난 1월 신통기획안을 통해 용도지역을 제3종 일반주거지역(용적률 최고 300%)에서 일반상업지역(최고 600%)으로 상향하고 공공 기여를 40% 내외로 정하면서 최고 54층 재건축이 가능해졌다. 용도지역을 한 번에 두 단계나 훌쩍 올린 사례다. 1000가구 규모 금융 복합 단지로 재탄생한다는 그림을 그린다.
삼부아파트(866가구)와 대교아파트(576가구)도 신통기획에 참여할 방침이다.
삼부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지난 1월 신통기획에 따른 정비계획안 신청서를 영등포구청에 냈다. 용적률 500%(최고 높이 250m)를 적용해 최고 55~56층짜리 아파트를 짓는다는 내용이다. 삼부아파트는 서울시가 올해 들어 새롭게 도입한 ‘신통기획 자문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재건축 속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자문 방식은 서울시가 직접 기획해 민간에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 방식’과는 다른 방법이다. 앞으로는 주민제안안이나 지구단위계획 등이 세워진 지역에서는 서울시의 기획설계 용역 발주 없이 자문만 거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교아파트는 최근 영등포구청으로부터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승인받았다. 추진위는 연내 조합을 세우고 시공사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조합설립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율 75% 확보를 위한 동의서를 받고 있다. 대교아파트 재건축 추진위가 준비 중인 주민 제안안에 따르면 대교아파트는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상향한다. 현재 250%인 용적률을 600% 안팎으로 올려 최대 59층에 4개동 1000가구 규모 대단지로 탈바꿈한다는 그림을 그린다.
한동안 멈췄던 여의도 재건축 시계가 다시 움직이면서 여의도 일대에서는 부쩍 기대감이 커졌다. 초고층 재건축 계획안이 나온 단지들을 중심으로 급매물이 사라지면서 거래가 끊긴 모습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여의도에서 매매 거래가 이뤄진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단 7건에 불과했다. 재건축 아파트 중에는 지난 2월 3일 시범아파트 전용 79㎡가 16억2700만원에 팔린 게 가장 최근 거래다. 그보다 전에는 한양아파트 전용 193㎡가 28억원에 주인을 찾았다.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나와 있는 매물도 문의가 들어오면 가격을 더 올려달라 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규제 완화 덕에 시장 주목을 받고 있지만 물론 변수는 남아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건설비용 상승 등이 사업성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또 지난 2월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됐어도 아직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만큼 거래 활성화까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진단이다. 반대로 오는 4월 말 서울시가 여의도를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하고 금리가 진정된다면 여의도 재건축 매수 심리가 개선될 여지도 있는 셈이다.
“여의도는 아파트 지구가 넓고 인근에 대체할 만한 우량 주거지가 없어 투자 관심이 많은 지역이다. 마침 서울시가 여의도를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로 키우기로 한 데다 각종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준 덕분에 여의도가 한강변 랜드마크 주거지로 거듭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다만 단지마다 상업, 주거지역이 뒤섞여 있고 사업 진행 방식이 천차만별이라 투자에 앞서 단지마다 비교는 필수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 총평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1호 (2023.03.22~2023.03.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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