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등 스마트 기술 도입, 생산성 UP...로열티 부담 낮추고 AM 시장 키워야
일시적인 호황에 취해 문제 해결을 소홀히 하다가는 과거처럼 한순간에 ‘적자 산업’으로 바뀔 것이라는 지적이 적잖다. 전문가들은 경쟁 국가인 중국과 일본이 흔들리는 지금, 한국 조선업이 체질 개선을 할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1. 환경 규제 적극 대응
무주공산 친환경 선박 시장 선점
현재 주요 해운사를 비롯한 선사들의 고민은 하나다. 바로 전 세계가 요구하는 ‘환경 규제’ 요건이다. 높은 탄소중립 수준을 요구하는 각국 정부 목소리가 거세다. 배를 운행할 때 내뿜는 탄소를 최대한 줄이라는 것이다. 2024년부터 유럽연합은 ‘해운업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다. 이후 EU는 선박 연료 규제까지 본격화할 예정이다. 국제해사기구 역시 규제 정책을 도입한다.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환경 규제를 논의한 후 시행 방안을 확정할 전망이다.
선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이제 본격적으로 친환경 선박을 도입해야 될 시기가 됐다.
현재 친환경 연료 선박 시장은 혼란 그 자체다. 가장 많은 조선 업체들이 채택하고 있는 천연가스 연료의 경우 ‘메탄슬립’ 문제로 온실가스 저감률이 20~25% 수준에 그친다. 장기적 대안으로써 부족하다.
연료로서의 경제적 안정성도 떨어진다.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전쟁을 이유로 가스관을 걸어 잠그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다른 대안으로 떠오른 메탄올은 친환경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연료용 메탄올은 화석 연료가 연소할 때 나온 탄소를 포집해 만든다. 문제는 탄소포집이 탄소 저감 방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안연료로서의 가능성이 불확실하다. 친환경 연료로 인정받지 못하면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은 규제를 피해 가지 못한다. 가장 현실적 대안인 암모니아 연료는 2024년에야 엔진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친환경 연료 선박 시장은 그야말로 ‘무주공산’인 상태다. 뚜렷한 선두 주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적절한 대안을 내놓는 조선사가 해당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조선 업체들이 선사에 확신을 줄 수 있는 탄소중립 대안 선박을 조기에 개발 완료하고 판매해야 한다. 국내 조선사가 제시하는 대안이 글로벌 해상 탄소중립 방안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각종 해사기구 논의에 국내 조선업계가 참여해 능동적으로 대안을 관철시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2. 부족한 인력 대체 ‘스마트 기술’
조선업 고질적인 인력 문제 해결
“일부 중소 조선소에는 사람이 없다 보니, 주변에 거주하는 50~60대에 접어든 초로(初老)의 어르신에게 위험한 작업을 부탁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배를 건조하다 보면 위험한 작업이 많다. 일반 노동자는 물론 외국인 노동자도 조선소 일감을 기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 중소 조선소 관계자가 전한 현지 분위기다.
아무리 각종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해도 조선소의 화학물질, 고온 용접 등의 작업은 위험이 동반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기피 현상이 두드러진다. 고연봉을 제시해도 인력이 쉽사리 모이지 못한다. 결국 인건비에 돈을 더 쓰게 되고 이는 곧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현장에 스마트 기술을 적극 도입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예가 로봇이다. 이미 자동차 등 다른 제조업은 화학물질 도포 등 위험한 공정에 로봇을 적극 투입하고 있다. 위험한 작업에 생산 자동화, 로봇 등 기술을 적용하면 현장에 필요한 인력 수가 줄어든다.
“밀폐된 곳에서의 도장 업무 등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은 로봇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인간의 의사 결정이 필요한 고도의 작업에만 인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좋다. 스마트 기술을 이용해 인력 사용에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노동력만 집중 투입시키는 과거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겸임교수 의견이다.
고부가가치 집중해 수익성 증대
“껍데기만 만든다.”
한국 조선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한단어로 집약한 말이다. 국내 조선 업체들은 선박 조립 기술이 뛰어나다. 그러나 핵심 설비 제조, 설계, 수리 등 수익성이 높은 분야는 아직 부족한 게 현실이다. 때문에 내부 설비 제조 노하우가 필요한 크루즈선, 플랜트 설비가 핵심인 해양플랜트에서 한국 조선은 큰 실패를 맛봐야만 했다. 만들기만 하면 막대한 수익을 자랑하는 크루즈선은 과거 STX가 유럽 선사를 인수해 도전해봤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해양플랜트는 ‘알짜배기’ 내부 설비를 제작하지 못하다 보니 선박 조립·저가 수주에만 집중하는 구조가 됐다. 이는 곧 대형 부실로 이어져 한국 조선업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고급 선박의 경우 로열티 명목으로 수익 일부를 다른 나라가 가져가는 것이 다반사다. 한국 업체가 껍데기만 만들고 돈이 되는 핵심 산업은 다른 기술 선진국이 가져가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수익이 적다 보니, 수주를 해도 별 영양가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업체가 ‘저가 수주’를 내세우면 한국 조선 업체들이 수주 경쟁에 실패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심지어 출혈 수주도 횡행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2019년 매출원가율(매출액 대비 원가 비율)이 94.39%였지만 2021년 134.5%로 치솟았고 지난해 9월 말에도 129.8% 수준이었다. 배를 만들면 만들수록 오히려 적자가 쌓이는 구조라는 의미다. 매출원가율을 낮춰 수익성을 높이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새로운 고부가 산업으로 떠오르는 ‘AM(애프터마켓·생애주기 서비스) 서비스’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선박 환경 규제가 강해지면서 선박을 수리하고, 엔진을 청소·교체하는 AM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제조에선 뛰어난 경쟁력을 자랑하지만 AM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의 AM 서비스경쟁력지수는 79점으로 주요 경쟁국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81.9, 중국은 89.5라는 높은 경쟁력을 기록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연구위원은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해, 선박의 생애주기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수리·개조 전문 조선사를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1호 (2023.03.22~2023.03.28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