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영광 뒤에 가려진 ‘그림자’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3. 2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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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선종 편중…‘플랜트 악몽’ 재현 우려
수주 풍년·인력은 흉년…고령화도 문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 조선업에 볕이 뜨고 있다. LNG 운반선 등 수주 호황으로 수년 치 일감을 확보했고, 선박 수주량에서도 중국을 제치고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조선업은 호황과 불황이 길게 반복되는 업종이다. 시장에서는 2021년부터 한국 조선업이 본격적인 호황기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다만 특정 선종에 치중된 사업 구조, 조선업 기피 현상으로 인한 인력 부족 등은 한국 조선업의 호황을 가로막는 위험 요인이라는 분석이 적잖다.

특정 선종 편중 현상 심화

지난해 LNG선 의존도 65.4%

최근 한국 조선업 수주 호황은 LNG선 수요 덕분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췄는데, 이 과정에서 LNG선이 대체 물량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카타르의 LNG 친환경 프로젝트까지 겹치면서 LNG선 경쟁력이 높은 한국 조선업이 큰 수혜를 봤다.

한국 조선업이 LNG 수혜를 누렸다는 건 통계로도 드러난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한 신조선 물량 중 65.4%가 LNG선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나치게 LNG선에 편중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특정 선종 의존이 조선업계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사업 환경이 급변하면 과거 ‘플랜트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 조선업은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선박 발주량이 줄자 ‘해양플랜트 건조 시장’에 뛰어들었다. 고유가로 오일 메이저들이 해양 개발에 관심을 가졌고, 관련 수요가 일시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은 연일 수조원대 플랜트 수주 소식을 전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유가 시대가 찾아왔고, 플랜트도 수주 절벽을 맞이했다. 플랜트로의 사업 전환은 결국 부메랑이 됐다. 2014년과 2015년, 한국 조선사들은 수조원의 손실을 입었다. “당시와 현 상황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과거 사례를 교훈으로 삼고, 주의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 한목소리다.

특히 LNG선의 경우 지금의 호황이 ‘반짝 수요’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 평가다. LNG선이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 때문이다. 다만 LNG 역시 탈탄소 목표 달성을 위한 과도기적 연료일 뿐이다. 언젠가는 대체될 연료라는 의미다. 한국수출입은행은 “LNG 연료의 경우 완전 연소되지 않고 배출되는 메탄슬립 문제로 온실가스 저감률이 20~25% 수준에 그친다”며 “장기적 대안으로 부족하고, 변동성이 커서 경제적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최근 조선업계에서는 ‘메탄올’이 대안으로 부상 중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탄소포집이 저감 방안으로 인정받지 못해 대안 연료로서의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해양에 배출해도 물에 녹아 오염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메탄올이 확실한 친환경 연료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조선업계 ‘빅2’ 국가인 한국과 중국의 경쟁이 메탄올 추진선 시장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클락슨리서치는 2026년까지 한국과 중국 조선에서 건조될 메탄올 추진선 규모를 약 100척 정도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기술 부문에서는 한국이 다소 앞서 있으나, 가격 면에서는 탄탄한 국영은행 지원을 받는 중국이 유리하다고 바라본다. 실제 글로벌 3위 해운사 프랑스 CMA-CGM은 최근 중국 다롄조선에 1만5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메탄올 추진선 6척을 발주했다. 한국 조선사들도 경쟁을 펼쳤지만, 가격 면에서 중국에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수주 잭팟인데 일할 사람이 없다

고령화 심각…용접 부문 30%가 50대

LNG선 의존 심화가 우려되는 또 다른 이유는 노동력이다. LNG선은 다른 선종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기술력과 노동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한국 조선업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수주 물량은 역대급 호황이지만, 일손은 다른 의미로 역대급 불황이다. 현장에서는 공정 지연으로 납기 내 선박 인도가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이미 도크장 기준 계획보다 한두 달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 근무자들 설명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조선업 종사자 수는 약 9만명이다. 2014년 약 20만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몇 년 사이 절반 이상이 떠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장 부족한 조선업 인력이 1만4000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또 현재 수준의 조선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5년 동안 4만3000명의 연구·설계 등 전문 인력이 추가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남은 인력도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산업안전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용접 부문의 경우 정년을 앞둔 50대가 대부분이다. 전체 인력 중 38%가 40대, 30.2%가 50대로 나타났다. 20대와 30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도장 인력도 마찬가지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국내 선박 도장 인력 2786명 중 20대는 132명으로 전체의 4.7%, 30대는 428명으로 15.4%에 그쳤다. 반면 40대에서 60대 이상 근로자들은 2226명으로 전체의 80%에 달한다.

결국 조선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30 핵심 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조선업은 구직자들이 기피하는 대표 직종이 된 지 오래다. 실제 조선·해양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조선해양 산업 인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 인력이 채워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구직자의 기피 현상(31.5%)’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 때 생긴 조선업의 고위험·저임금 이미지가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조선사들이 대부분 서울에서 먼 지방 도시에 위치한 점도 젊은 인력을 유치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까지 나서 조선업 인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정부는 최근 인력난이 심각한 6개 업종의 인력난 해소 대책을 발표했는데, 조선업도 포함됐다. 신규 채용을 하는 조선업 하청 업체에 연 1200만원을 지원하고, 연 600만원 수준의 공제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외국인 근로자 채용 관련 장벽도 낮췄다. 외국인 용접공의 2년 경력 조건을 삭제하고, 기업별 외국 인력 허용 비율도 20%에서 30%로 높였다. 숙련 기능 인력(E-7-4)의 연간 쿼터도 2000명에서 5000명으로 확대했다.

다만 외국인 근로자 채용 관련 정책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외국에서 투입된 근로자 상당수가 기량 미달”이라면서 “숙련공 부문의 경우 시험 통과율이 30% 정도 수준이고, 재교육을 하고 싶어도 언어 장벽 때문에 쉽지 않다. 실전 배치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1호 (2023.03.22~2023.03.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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