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뉴타운 요즘 분위기는? 속도 느린 5구역은 ‘순항’…2·3구역 ‘난항’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서울 지하철 경의중앙선 서빙고역 1번 출구로 나와 서쪽으로 약 5분간 걷다 보면 복잡한 사거리가 등장한다. 반포대교와 서빙고로, 잠수교 북단 지하차도 등이 만나는 지점이다.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 조금만 올라가면 서빙고동 주민센터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한남5구역이다. 이곳에는 서빙고로를 따라 줄줄이 여러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늘어서 있다. 건물 벽에는 ‘재개발 문의’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보다 안쪽 언덕으로 들어가면 낮은 빌라나 단독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남뉴타운은 서울 용산구 한남·보광·이태원·동빙고동 일대 111만205㎡를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2003년 뉴타운으로 지정됐으며 5개 구역 중 구역 해제된 한남1구역을 제외한 한남2~5구역에서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워낙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지다 보니 20년 이상 개발이 지지부진했지만 2~3년 전부터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사업 속도가 가장 느렸던 5구역이 속도를 내고 있다. 한남5구역은 한남뉴타운 내에서도 한강 조망 면적이 가장 넓은 곳으로 반포대교 북단 남산 자락에 위치했다.
한남뉴타운이 사업 진행 과정에서 구역별로 엇갈리는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한남뉴타운은 한강 조망, 사통팔달 교통망, 풍부한 배후시설과 인프라 등 최고 수준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사업 속도가 가장 느렸던 5구역은 순차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속도가 빨랐던 3구역은 관리처분인가를 받는 과정에서 암초가 발생했다. 2구역 역시 고도 제한 완화와 관련된 설계 문제로 일부 조합원들의 불만이 감지된다.
부동산업계에서 ‘황제 뉴타운’이라고 불릴 만큼 서울 재개발 구역 중 가장 주목도가 높았던 한남뉴타운이 구역별로 원활하게 사업이 진행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건축 심의 신청하는 5구역
올해 안에 시공사 선정까지
정비업계에 따르면 ‘한남5 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최근 조합원에게 4월 말 건축 심의를 신청하겠다고 공지했다.
한남5구역 조합은 지난해 12월 교통영향평가 심의가 조건부로 통과된 만큼 이를 반영해 경미한 변경을 진행한 후, 교통영향필증을 교부받아 건축 심의를 제출하기로 했다.
한남5구역은 동빙고동 일대(18만6781㎡)에 용적률 219.4%를 적용해 지상 최고 23층, 2555가구(임대주택 384가구 포함) 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한남뉴타운에서 유일하게 대부분 가구가 ‘한강뷰’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조합 측은 건축 심의가 늦어도 8월쯤 통과할 것으로 기대한다. 심의를 통과하면 즉시 시공사 선정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가 오는 7월부터 ‘도시·주거환경정비조례’를 개정하면서 사업시행인가 전에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시공사 선정을 앞당기면 사업 기간이 줄고 금융비용 절감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조합 측은 “지금은 최고 23층이지만 고도 제한이 완화되거나 풀리면 이를 건축 심의에 반영할 수 있다”며 “예상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2026년 관리처분인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머지 구역은 지금?
상가 조합원 반대로 난항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차근차근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5구역과 달리 나머지 구역은 안갯속에 빠졌다.
우선 사업 속도가 가장 빨랐던 3구역은 당초 3월 중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이주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이 제기한 ‘관리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최소 6개월 이상 사업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남3구역은 용산구 한남·보광동 일대 38만6400㎡에 아파트 5816가구(임대 876가구 포함)를 짓는 재개발 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8조3000억원으로 역대 재개발 사업 중 최대 규모다. 시공사는 현대건설이 맡았다.
3구역 조합은 지난해 7월 15일 임시총회를 통해 수립한 관리처분계획(안)을 검토해 올 3~4월 중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할 예정이었다. 조합은 올해 상반기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으면 연내 이주를 추진 중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일부 상가 조합원이 관리처분계획상 명시된 조합원 대상 근린생활시설(상가) 추정 분양가 수준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조합원이 분양받는 근린생활시설 분양가는 1㎡당 약 2051만원으로 일반분양가(약 904만원)보다 2배 이상 높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 제7부는 조합원 분양 가격이 처음 안내보다 높게 책정됐고 이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결국 조합 측은 3월 11일 상가 분양 예정 조합원 266명을 대상으로 용산구 보광상가에서 설명회를 개최했다. 소송 쟁점인 상가 분양가와 향후 일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함이었다. 조합은 상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분양가가 차별이 없다”는 점을 해명하는 동시에 법적 대응을 통해 상반기 내 사업을 다시 진행하겠다는 목표다.
재개발 사업이 상가 조합원과 마찰로 지연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강남구 청담삼익도 상가 소유주들과 소송이 길어지면서 이주 절차가 예정보다 2년 이상 지연됐다. 조합이 합의를 통해 내용 조정 선에서 해결한다면 사업 지연은 2~4개월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합의에 닿지 못해 관리처분총회를 다시 열어야 한다면 최소 6개월 이상 사업이 지연될 전망이다.
3구역과 보광로를 마주하고 있는 4구역 역시 다른 구역 대비 상가 조합원이 많은 편이다. 올해 말 건축 심의를 앞두고 있는 이곳 역시 3구역 합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구역과 비교해 지대가 비교적 높은 편인 2구역은 ‘고도 제한 완화’가 발목을 잡았다.
한남뉴타운은 2016년 정해진 ‘한남재정비촉진지구 변경 지침’을 따른다. 남산 조망을 해치지 않고 기존 지형을 보존하라는 서울시 개발 가이드라인이다. 한남뉴타운 내 모든 구역이 고도 제한을 받고 있다.
대우건설은 현재 90m인 고도 제한을 118m까지 완화하겠다는 설계안을 제시해 한남2구역 수주권을 확보했다. 대우건설 계획대로 변경이 가능하면 최고 14층으로 제한된 아파트 층수는 21층으로 높아진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고도 제한 완화를 위한 설계 변경이 늦어지고 있다며 일부 조합원들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공사를 변경하면 사업이 더욱 늦어진다는 점에서 조합 측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당장 조합이나 시공사 요청을 받아들여 고도 제한을 완화하거나 해제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2구역은 다른 구역 대비 지대가 높아 조합이나 시공사에서 원하는 만큼 건축물 높이를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