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푸틴 방송인과 접촉에 '벙어리 냉가슴'…머스크 손 못대는 바이든
머스크 정치적 영향력에 美 정부서 '공포감'
미국 정부가 반도체지원법 발표를 통해 전세계 IT업계에 중국 등 우려국가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강경정책을 발표한 가운데 정작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의 친중·친러 행보에는 손을 못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가 이끄는 5개 주요 기업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그의 경제적·정치적 입지가 커지면서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는 그의 기행이 이끌어 낼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한 공포감까지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현지시간) 카타르에서 진행된 아르헨티나 대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 일론 머스크가 러시아 국영방송에 주로 출연하는 방송인 나일야 아스케 자데와 '셀카' 찍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옹호해온 30대 여성 방송인과 밝은 미소로 대화를 나눈 머스크의 모습에 속이 타는 인물들이 있었다. 바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관계자들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일론 머스크의 글로벌 왕조가 미 정계로 하여금 그를 시급한 문제로 만들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머스크가 수장으로 있는 기업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가 전 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괴짜'스러운 행동과 일방적인 의사 결정이 바이든 행정부에게는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머스크는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 우주 탐사 업체 스페이스X,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 스타링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 터널 굴착회사 보어링컴퍼니 등의 최고경영자(CEO)다. 모든 회사가 각 산업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스타링크나 스페이스X는 미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정부 사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머스크와 아스케 자데의 만남이 부적절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미국 관료들의 시각에서는 (막강한 영향력과 맡은 업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머스크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수년간 신경전 벌이며 '앙숙'으로 불린 머스크-바이든머스크와 바이든 행정부는 수년간 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선 머스크와 바이든 대통령은 '앙숙'이라고 부를 정도로 공식석상에서 신경전을 벌여왔다.
지난해 3월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 연설에서 자국 자동차 기업인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 생산 노력을 강조하면서 시장 1위 테슬라를 언급하지 않자 머스크가 반발했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미국 경제 전망을 두고 머스크가 테슬라 임원들에게 "경제 상황에 대한 느낌이 아주 좋지 않다"고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고용 시장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력하다"면서 머스크를 겨냥해 "그의 달나라 여행에 많은 행운이 있길 바란다"고 비꼬았다.
지난해 11월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에 "공화당에 투표하라"고 글을 올렸다. 같은 달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머스크가 나가서 전 세계에 거짓말을 뿜어대는 수단을 사들인 것"이라면서 "미국에는 이제 편집자가 없다"고 날 선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기조인 '친노조' 성향이 노조를 배척하는 머스크와 크게 부딪히며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 전기차 충전소 개방에는 서로 미소 오갔는데…사실 머스크의 영향력이나 사업 특성을 보면 바이든 정부와 큰 맥락을 함께하는 만큼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할 여지가 있어보인다.
대표적으로 머스크의 핵심 사업체인 테슬라는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기후 변화 관련 정책의 핵심인 전기차 업계 1위 업체다. 지난 1월 백악관 관료들은 워싱턴DC에 있는 테슬라 사무실에서 머스크, 테슬라 임원들을 만나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할 방안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고 한다. 이후 지난달 머스크가 테슬라 전용 충전소를 다른 전기차에도 개방한다고 발표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대단한 일"이라고 트윗을 올렸고 머스크는 "감사하다"고 응답했다.
스타링크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핵심 통신 수단이 된 것도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당초 긍정적으로 해석됐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인터넷망이 흔들리자 머스크가 스타링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고, 우크라이나 군이 선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지난해 10월 "무상으로 지원할 수 없다"며 두 달 뒤 갑작스럽게 가격을 인상하면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를 당황스럽게 했지만 말이다.
또 스페이스X는 지난해에만 30억달러 규모의 연방 정부 사업을 수행할 정도로 바이든 행정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머스크와 스페이스X는 수년간 국회의원들을 지원하며 미 정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 바이든, 머스크 마냥 품기는 어려운 이유하지만 머스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 방식이나 사고를 친 뒤 정부와 갈등을 빚는 문제 해결 방식이 바이든 행정부와 충돌하게끔 하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포기해야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러시아에 편향된 중재안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뭇매를 맞았다. 스타링크의 서비스로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지원하고 있던 그가 이러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 정부도 당황스러워했다. 같은 달 머스크는 스타링크 서비스 제공과 관련한 비용을 부담해달라고 미 국방부에 청구서를 보내기도 했따.
이와 함께 머스크가 수장으로 있는 기업들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비롯해 미 법무부, 전미고속도로교통안전위원회(NHTSA) 등과 연이어 충돌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머스크가 보유한 회사에서 뭔가 잘못된 일을 벌이고 나면 규제기관이 대응에 나서는 일종의 '두더지 잡기' 방식의 관계가 구축돼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며 대표적인 SNS 플랫폼인 트위터를 머스크가 인수한 것이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가장 속 쓰리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머스크가 인수한 이후 트위터 직원들이 다수 해고되고 가짜 뉴스가 확산하며 공화당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등 바이든 행정부가 불편할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현 미국 행정부 내에서는 일부 고위 관료들이 머스크의 막대한 부와 사업, 정치적 영향력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테슬라가 중국 내 입지가 커진다거나 트위터 인수와 관련해 머스크가 중동 자금에 크게 의존한다거나 하는 식의 행보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미 정부 관료는 블룸버그에 테슬라를 '미국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 회사'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테슬라가 지난해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한 물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나왔다는 점을 의식한 표현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와 관련해 안보 차원에서 내사를 벌이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고 블룸버그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헀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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