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규제 어떻게]④"한국식 공정거래법 개정, 특별법 제정 고민해야"
경쟁당국 입증부담 확 낮추는 방법"
유럽 '강력 규제' 미국 '의회통과 불발'
한국에 적합한 맞춤형 규제 고민해야
지금의 경쟁법(공정거래법)으로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독과점·불공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주요국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극소수 빅테크 플랫폼 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플랫폼 규제 재편이 필요하다는 합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다. 다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강력한 ‘사전규제’를 도입해 시장에 빠르게 개입하려는 유럽식 규제체계를 추종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자국 토종 빅테크를 육성하지 못한 유럽의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DMA는 '강력한 사전규제'...경쟁당국 증명 부담 완화 "빠른 시장 개입" 촉진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불공정 규제 문제의식을 가장 빨리 실행으로 옮긴 곳은 유럽이다. 유럽식 접근법의 핵심은 전면적인 ‘사전규제’로의 전환이다. 사후규제가 법에 규정된 위반사실에 대한 증명 부담을 당국이 지고 법원 판결을 구하는 방식이라면, 사전규제는 입증책임 부담이 상당부분 기업에 쏠리게끔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규정상 문제가 되는 금지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해놓기 때문에, 제재를 피하려면 기업이 당국의 규제 적용이 잘못됐다고 입증해야 한다.
오는 5월 시행되는 EU 디지털시장법(DMA)은 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들(게이트키퍼)을 사전에 정해두고 이들의 의무와 금지 규정을 도입했다. 경쟁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시장획정 등을 기업과 끊임없이 다투며 시간이 지연되는 상황을 최대한 제거하겠다는 취지다. 당연입법(특정 행위를 하면 무조건 위법)의 접근법이므로 규제 적용 속도를 확연히 높일 수 있다.
이는 속도감 있는 규제 집행을 통해 시장에 개입하기 위한 의도다. EU 경쟁당국은 2010년부터 일찍이 구글 등에 대해 반독점 제재를 시도했지만, 기업들이 이에 불복해 소송에 나서면서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상황을 마주했다. 미국 또한 엇비슷한 사전규제 방식을 담은 ‘반독점 패키지 법안’이 2021년 하원에서 발의되기도 했지만, 결국 하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구글, 애플 같은 자국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성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던 영향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전문가 다수 "유럽 DMA식 반대 ...토종 플랫폼 성장 억제 결과 초래"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은 유럽의 정치적 특수성을 고려해 제정된 DMA나 미국식 반독점 패키지같은 강력한 사전규제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우리나라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토종 플랫폼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DMA같은 ‘포괄적인 전 규제’를 도입해 이들을 사전에 일괄적인 규제 대상으로 정해두는 식의 입법을 하면 글로벌 기업과의 역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인석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유럽이 자국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취지로 DMA를 도입하는 맥락을 봐야 한다”며 “국내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시장 내 완전한 강자로 보기도 애매한데 국내 기업의 성장을 발목잡는 사전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특정 플랫폼에 의해 디지털 시장이 완전히 독과점된 상황으로도 보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다만 어떤식으로든 플랫폼 경제 변화에 맞춰, 새로운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 KDI 박사는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플랫폼 경제의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가야 하는 시점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공정위 온라인플랫폼정책과는 경제학, 법학 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된 ‘온라인 플랫폼 규율 개선 전문가 TF’를 출범하고 세차례 회의를 진행하면서, 현행 공정거래법 개정이나 특별법 도입 방안 등을 논의중이다.
공정위 '온라인 플랫폼 규율 개선 전문가 TF'서 논의중...공정거래법 개정 등 논의
TF에서는 지난 공정위가1월 발표한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 규정한 플랫폼 경제의 경쟁제한적 행위 유형(자기사업우대, 멀티호밍제한, 끼워팔기, 최혜국대우 등)이나,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판단 기준(교차 네트워크 효과, 규모의 경제, 게이트키퍼(문지기) 역할 여부 등)을 법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논의를 포함해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해당 내용을 심사지침 수준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법제화 수준으로 끌어올려, 디지털 플랫폼 사후 규제를 용이하게 하자는 것이다. 즉 공정위가 빅테크 기업의 사후규제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좀더 편리하게 시장지배력이나 경쟁제한성 등을 입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을 해야 할지, ‘온플법’ 같은 특별법 도입 형식을 택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중이다.
일각에서는 실효성 있는 규제를 위해선 사후규제 강화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입증책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플랫폼 기업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등을 입증하기 위해 시장획정부터 경쟁제한성 여부 등을 일일이 공정위가 입증하고 사업자가 논박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려 시장 독과점이 심화되고 있다”며 “DMA 만큼 지나치게 강력한 수준은 아니나, 특별한 규제가 필요한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정을 공정거래법에 신설하고 사업자에게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방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사지침의 법제화 정도로 법적 지위를 끌어올려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현행 공정거래법을 통해서도 빅테크의 기업을 충분히 제재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맞서고 있다. 주진열 교수는 “현행 공정거래법만으로도 한국 플랫폼 기업이 시장지배력을 남용하거나 불공정거래를 하면 충분히 제재할 수 있다”며 “시장지배력이 있는지, 경쟁제한성이 있는지 등에 대한 입증 정도는 규제당국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도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경쟁이 일어나는 시장”이라며 “예를 들어 이커머스 전자상거래 분야의 경우 여전히 특정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이지 않고 치열한 경쟁이 진행 중”이라며 “지배력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에서 규제가 강화되면 시장경쟁이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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