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일 관계 개선 시동, 역주행 안 된다

2023. 3. 23.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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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전 주일본 대사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한·일관계 개선의 걸림돌이었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발표하고, 16~17일 일본을 방문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고 오랫동안 악화 상태로 방치된 양국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전언에 따르면 징용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일본 정부의 확실한 호응이 나오지 않은 단계에서 방일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조언에도 윤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였다고 한다.

예상대로 격렬한 비난과 반대의 목소리가 요란하다. 징용 문제의 일부 피해자들이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해법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야당은 굴종 외교라거나 삼전도의 굴욕이라 운운하며 비난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다수가 대일 관계 개선에는 찬성하지만, 일본에 양보하는 느낌을 주는 현안 해법에는 반대하고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없었고, 현안에 대해 일본이 거의 양보한 것이 없는데 우리가 미리 알아서 숙이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 정상회담으로 한·일 관계 돌파구
관계 개선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야당도 국민도 함께 힘을 모아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일본을 비난하고 밀어붙이면서 마냥 기다리면 언젠가는 일본이 우리가 속 시원해할 만한 사과를 할 가능성이 있는가. 우리가 교섭을 잘하면 소위 전범 기업들이 “우리가 잘못했다. 잘못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보상하겠다”고 할 가능성이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간 한·일 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방치해 온 걸 보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더구나 양국 사이 다양한 채널에서 존재해 온 ‘신뢰 자산’이 문 정부 5년간 완전히 바닥났다. 한국도 일본을 불신했지만, 일본의 한국에 대한 불신은 태산처럼 커졌다. 한국은 청구권 협정 등 국제적 합의를 하고도 쉽게 뒤집고, 골대를 옮긴다고 일본은 비판한다.

이번에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윤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꽉 막힌 양국 관계를 뚫어 나가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 회복이 급선무였는데, 윤 대통령은 이를 이해하고 다양한 계기를 이용해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 꾸준히 신호를 보냈다. 기시다 총리를 직접 만난 몇번의 기회는 물론이고, 8·15 광복절과 3·1절 기념사도 활용했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아소 다로 전 총리를 면담한 자리도 윤 대통령의 진정성을 일본 측에 확인시켜 준 중요한 계기였다고 한다. 양국 현안에 있어서 한국 측 요구가 충분히 수용되지 않은 단계에서 윤 대통령이 이번에 방일을 결심한 것도 일본 측에겐 매우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방일을 전후해 일본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과감한 행보를 하는 데 대해 기시다 총리와 일본 측도 화답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국 신뢰가 확고해지면 한국이 반을 채워서 내민 잔에 일본도 가득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갈 것이다.

양국 관계가 개선되면 지금 한국이 직면한 현안을 해결하는 선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안보·군사는 물론이고 경제·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협력이 활성화될 것이다. 이는 복잡다단해지는 국제정세에서 두 나라 서로에 엄청난 긍정적 활력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의 대일 관계 개선 노력과 대일 외교 교섭의 성과에 야당이 얼마든지 불만을 제기할 수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제 우리에게 되돌아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이 국내의 반대 여론 때문에 무산되고,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한다면 이는 우리에게 최악의 국면이다.

양자 관계 악화로 초래될 정치·안보·경제 부문의 폐해는 물론이고, 한·미·일 3국 협력이 훼손되면 한·미 관계도 매우 어려워진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신인도가 급전직하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다시는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이번에 어렵사리 시동이 걸린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이 성공할 수 있도록 일본은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우리 정부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야당도 국민도 한·일 관계가 역주행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준규 전 주일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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