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킬 체인’ ‘참수 작전’ 꿈도 꾸지 말라는 핵 카드 엄포

입력 2023. 3. 23. 01:07 수정 2023. 3. 23. 06: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핵억제 전략 가다듬는 북한


이철재 외교안보부장
20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관영매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북한의 전술핵 운용 부대가 핵반격 가상 종합 전술훈련(핵반격 훈련)을 18~19일 이틀에 걸쳐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18일엔 가상 긴급상황 속에서 핵공격 명령을 전달하고, 이에 따라 핵공격을 준비하는 절차를 살펴봤다. 전술핵 공격을 모의한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은 19일 열렸다. 북한은 이날 목표 상공 800m에서 전술탄도미사일(KN-23·북한판 이스칸데르)의 탄두를 터뜨렸다고 주장했다. 핵탄두는 일정 고도에서 폭발해야만 위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

또 KN-23의 발사 방식이 예사롭지 않았다. 북한의 공개 사진에는 알파벳 ‘V’ 자 모양의 화염 사이로 미사일이 땅 아래에서 나오는 장면이 담겼다. 사일로(silo)라고 불리는 지하 미사일 발사대에서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이 미사일을 쏜 동창리 서해발사장의 민간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최근 두 달 사이 사일로를 만든 것으로 추정했다.

「 북한, 전술핵 반격 훈련 주장
연합훈련 두려워 않는 김정은
핵으로 한·미 반격을 억제
제재 해제 등 강압적 요구 전망

사전 징후 포착 힘든 사일로 발사

지난 19일 동창리 발사장에서 전술탄도미사일(KN-23)이 날아가고 있다. 이날 지상이 아닌 지하 발사 시설(사일로)에서 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합뉴스]

사일로에선 미사일을 바로 발사할 수 있기 때문에 한·미가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 기동 등과 같은 사전 징후를 잡아내기 힘들다. 단단한 곳에 건설한 사일로는 제거하기도 어렵다. 북한은 핵반격 훈련에서 마음만 먹으면 은밀하게 한국을 전술핵으로 타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폭발시키는 기폭장치까지 미사일에 장착해 테스트했다고 하는데 최근 북한의 행동을 보면 사실관계와 약간 다른 과장된 보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전술핵탄두 개발을 기정사실화하려 하지만, 이는 한·미의 평가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실제로 전술핵 공격을 할 수 있는지와 별개로 한·미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북한이 핵억제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는 것이다.

‘핵억제’란 단어는 김정은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핵반격 훈련에서 “우리나라(북한)가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라는 사실만을 가지고서는 전쟁을 실제적으로 억제할 수가 없다”면서 “핵 공격 태세를 완비할 때에라야 전쟁 억제의 중대한 전략적 사명을 다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을 시험발사한 지난 16일엔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핵전쟁 억제력 강화로써 적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전쟁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0~90기의 핵탄두 보유 추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동창리 발사장에서 둘째 딸 주애(왼쪽)와 함께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김정은은 정찰위성 등 한·미의 정보자산이 지켜본다는 사실을 잘 알고도 공개 장소인 평양의 순안 공항에서 둘째 딸 김주애를 데리고 화성-17형 발사를 지켜봤다. 한·미가 대규모 병력과 B-1B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동원한 연합 군사훈련인 ‘자유의 방패(FS)’를 벌이는 데도 전혀 겁먹지 않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린 셈이다.

억제(Deterrence)는 상대가 특정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전략이다. 억제가 통하려면 미리 준비해놓고, 기준을 넘을 경우 피해를 보거나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상대가 믿어야 한다. 북한은 핵억제는 누구에게 무엇을 하지 못 하게 하려는 것일까.

북한은 미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둔 화성-17형(최대 사거리 1만 5000㎞ 추정)으로 미국에 대한 전략적 핵억제 능력을 과시했다. 유사시 미국이 한국을 지키기 위해 핵을 사용한다면 북한도 핵으로 맞받아치겠다는 의미다. 또 사거리 800㎞의 KN-23 발사로 한국에게 전술적 핵억제를 예고했다. 공격 징후가 임박할 경우 먼저 북한을 제압한다는 킬체인(Kill Chain)이나 북한의 지도부를 노리는 참수 작전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한국에 경고한 것이다.

북한은 80~90기의 핵탄두(한국국방연구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6257기)의 보유량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된다. 북한은 미국과의 전면적인 핵전쟁에선 절대로 이길 순 없다. 하지만, 뉴욕이나 LA와 같은 대도시를 핵타격할 수는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 대한 핵 억제력을 갖는 것이다. 이를 최소억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억제는 한반도에서 ‘평화의 사도’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의 핵은 전쟁을 막지 않고 오히려 전쟁을 부르는 역설이다. 북한의 핵심 가치는 김정은과 김씨 일가의 독재 체제 유지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생존과 영향력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북한은 핵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핵사용 문턱 낮춘 핵무력 법령화

핵 능력에서 미국에게 한참 뒤처진 북한은 대신 핵사용 의지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핵사용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지난해 선제 핵공격까지 명시한 북한의 핵무력 법령화는 핵무기 사용조건에 해당한다면 위험을 감수하고도 쏘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전면전이 아닌 국지도발에서도 북한은 필요하다면 핵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다분하다. 김정은은 핵탄두 보유량 확대를 지시했다. 한국국방연구원의 박용한 선임연구원과 이상규 현역연구위원은 북한이 장기적으로 최대 300여 기의 핵탄두를 가질 것으로 분석했다. 300 여기는 중국의 핵 보유량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 수량이라면 북한은 한·미를 핵으로 위협해 전략적 이익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은 자신을 핵보유 국가로 인정하라고 미국에 요구할 것이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과 맞바꾸지 않고 당당히 경제 제재를 해제하라고 할 수도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의 해체도 북한이 노릴 것이다. 북한에게 핵은 억제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강제의 수단인 양수겸장(兩手兼將)과도 같다.

한국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북한을 압도할 정도로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국방부와 군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대량응징보복(KMPR)이 그 방법이다. 또 미국의 확장억제에 한국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핵우산’에서 ‘확장억제’까지…미국의 안보공약

「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의 핵심 전략은 확장억제다.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는 미국이 필요할 경우 핵 억제력을 동맹국이나 우방국에 제공한다는 방위공약이다.

확장억제는 예전에 핵우산(Nuclear Umbrella)이라고 불렸다. 1978년 제11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 ‘핵우산의 지속적 제공’이 처음 나타났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핵 개발 계획을 알아챈 미국이 자국의 핵우산을 한국에 씌워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2006년 제38차 SCM에선 ‘핵우산 제공을 통한 확장억제의 지속’이란 표현으로 바뀌었다. 확장억제의 개념은 2001년 미국의 핵전력은 미국을 지키는 자국 중심 억제(Central Deterrence)뿐만 아니라 이를 동맹국·우방국에로도 확장하는(extend) 확장억제도 수행한다고 규정되면서 만들어졌다.

확장억제에 담긴 미국의 목표는 핵의 비확산이다. 동맹국·우방국이 안보 불안감 때문에 너도나도 핵 군비경쟁에 나서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또 처음부터 핵 사용을 고려하는 핵우산을 부담스러워했다. 미국이 핵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동맹·협력국을 보호해야만 하는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속내는 확장억제의 수단이 점점 확장하는 추세에서 엿볼 수 있다. 2007년 제39차 SCM부터 확장억제의 수단에 기존의 ‘핵’에 ‘재래식 타격 능력’과 ‘미사일 방어능력’를 더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는 ‘진전된 비핵능력’까지 포함했다. 진전된 비핵능력은 우주·사이버·전자전 능력을 뜻한다.

한·미는 2013년 위협의 정도에 따라 억제 수단과 도구를 달리한다는 맞춤형(Tailored) 확장억제에 합의했다. 더 나아가 확장억제에 군은 물론 다른 정부 기관까지 참가해 외교·정보·경제적 대응을 포괄하는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도 논의하고 있다.

동맹국은 확장억제에 대한 담보를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핵 계획에 참여하는 핵 기획, 미국의 핵폭탄을 동맹국의 전투기로 떨구는 핵공유, 미국의 전술핵 배치 등으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이행을 보장받으려 하는 것이다. 한·미는 지난해 제54차 SCM에서 확장억제에 대한 ▶정보공유 ▶협의 절차 ▶공동기획 ▶공동실행 등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미국의 확장억제에 한국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다.

이철재 외교안보부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