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의 과학 산책] 수학자의 생존법
고백건대 필자는 암기와 계산을 지독히 못 한다. 숫자 다루는 것도 싫어한다. 또 고집불통의 뇌 구조를 가진지라 이해가 되지 않는 지식을 억지로 구겨 넣는 것은 온몸이 저항한다. 공식은 절대 외우지 못하고 필요할 때마다 유도해서 쓴다. 수학자로서는 치명적 결함일 수도 있지만, 다행히 아직 수학 못 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아왔다. 이제 독자 여러분께 수학자로 살아남은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 외우기는 필자에게 큰 시련이었다. 다들 선생님 검사를 통과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마지막까지 통과하지 못하고 남았다. 선생님도 결국 포기하셨다. 집에 와서 마루 기둥을 붙잡고 슬퍼하며 구구단 표를 찬찬히 보다가 충격적인 발견을 했다. 바로 대각선을 중심으로 숫자들이 대칭적인 것이다. 야호! 반만 외우면 되구나.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희열에 넘쳤고, 이때 수학자의 길로 반쯤 접어든 것 같다.
계산에 약하니 이후에도 수학이 쉬울 수가 없었다. 중학생 때 하루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기하 문제를 몇 가지 다른 방법으로 풀어주셨다. 이때 여러 깨달음이 있었다. ‘계산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구나’, ‘그림으로 수학을 할 수 있구나’, ‘여러 방법으로 풀면 틀리기 어렵겠구나’ 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늘 모범답안과 다른 풀이와 새로운 관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계산과 암기는 엉망이지만 그림을 그리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능력은 나쁘지 않아서 한 문제를 여러 방법으로 푸는 것이 적성에 잘 맞았다. 한 가지 방법으로 계산이 틀리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오류를 금방 찾아내고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훨씬 유연하게 공략할 수 있게 되었고 수학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수학에 좌절하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암기와 계산을 통한 반복 학습보다 자유롭게 사고하도록, 스스로 규칙을 찾도록, 그래서 남과 다른 자신만의 길을 찾도록 유도해보시길 권해본다.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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