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연 2만 시간의 ‘나눔’…프로보노로 ‘함께’ DNA 실현

김정연 2023. 3. 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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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동천 이희숙 변호사, 태평양 공익위 이동하 변호사, 강용현 동천 이사장, 우지원 변호사, 김경목 동천 NPO법센터장, 유욱 동천주거공익법센터장, 신주영 변호사, 유철형 책임변호사, 오혜인 변호사(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사진 태평양]

공익위, 공익재단 ‘동천’과 협업
연평균 488건의 공익 사건 처리
‘페이퍼리스’ 시행 … ESG에도 앞장

2만1601시간. 지난해 법무법인(유한) 태평양(대표변호사 서동우)과 재단법인 동천(이사장 강용현) 변호사들이 공익 활동에 쏟아 부은 시간이다. 이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133억 5335만원에 달한다.

1980년 문을 연 태평양은 국내변호사 500여명에 외국변호사·회계사 등을 합해 약 750명의 전문가가 M&A, 금융·공정거래, 형사, 지식재산, IP, 조세, 국제중재까지 모든 분야에서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로펌이다. 그러나 수준 높은 법률 서비스가 태평양 구성원들의 자부심의 한 축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프로보노(Pro Bono)’, 즉 무료로 이뤄지는 자발적인 공익법률지원 활동이다.


장애인·난민 등 사회적 약자 위해 무료변론


태평양의 공익법률지원은 여느 로펌보다 역사가 길다. 2001년 출범한 공익활동위원회가 그 시작이다. 태평양 내부 조직으로, 약 250명의 변호사가 위원회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장애인, 난민, 여성·청소년, 탈북민 등 7개 분과로 나뉘어, 법률서비스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무료변론을 맡는다.

2009년 만들어진 재단법인 동천이 공익활동위원회의 든든한 파트너다. 동천은 소송 외에도 다양한 법률지원, 혹은 일반 사회공헌활동까지도 포괄하는 공익활동 목적의 재단법인으로, 풀타임으로 공익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 6명이 따로 있다. 6명의 ‘선발대’격 변호사가 여러 공익 사건을 발굴해 오면, 250명의 ‘지원군’이 분야별로 결합해 소송을 함께 수행하는 식이다. 공익활동위원회가 처리한 연평균 488건의 사건은 이런 협업을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동천 이희숙(43·연수원 37기) 변호사는 “공익법 활동을 하고 싶어도 인력이 제한적이면 많은 사건을 가져오긴 어려울 수 있는데, 태평양에서 동천의 공익사건에 함께 참여하는 데에 긍정적이라 자신있게 사건을 맡아올 수 있는 점이 든든하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 덕에 태평양은 2021년 국내 로펌 최초로 공익활동 연 2만 시간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신기록을 세웠다. 태평양이 공익활동에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는 숫자다. 변호사 한 명당 평균 활동 시간(58.54시간)도 업계 평균보다 15시간이나 많다. 지난해 공익활동 190시간을 기록한 이경환(45·35기) 변호사는 애초에 ‘변호사 일을 하면서 법률 상담, 봉사활동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태평양을 택했을 정도다. 그는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최고 수준의 법률적 도움을 줄 수 있고, 내부 구성원들이 공익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격려하는 분위기인 점에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태평양 공익활동위원회와 재단법인 동천 소속 변호사들이 지난해 공익활동에 쓴 시간은 2만 시간이 넘는다.

“사건 해결 그 이후, 제도 개선까지가 보람”


태평양 공익활동위원회와 재단법인 동천이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한 사건 중에는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공익 사건이 많다. 2001년 공익활동위원회 설립을 주도한 유욱(60·19기) 변호사의 제안으로 초기부터 함께 활동해 온 유철형(57·23기) 변호사는 “공익 사건을 통해 특정 사건 해결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볍령 개정이나 제도 개선을 이끌어낼 때가 가장 보람차고 의미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일찍이 난민·장애인 등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 2012년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승강기를 설치하라’는 소송을 통해 지하철 승강기 설치의 물꼬를 튼 것도 태평양이다. 지난해 3월 “시외버스와 광역형 시내버스에 장애인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하지 않은 건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며 버스회사들에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난민, 장애인 분야를 맡고 있는 정성희(29·변시 10회) 변호사는 “어떤 사람이든 사회에서 최소한의 보호막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공익활동을 하고 있고, 이 승리 하나가 앞으로 사회에 좋은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한다”고 덧붙였다.

‘동천’은 ‘난민 법률지원 용어집’을 만들고,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법률지원 가이드북’도 만드는 등 법률 외곽에서 할 수 있는 도움도 담당한다. 최근엔 주거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동천 주거공익법센터’가 문을 열었고, 지난해엔 발달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미술품 경매 나눔행사도 진행했다. 동천과 태평양 사회공헌위원회의 활동을 총망라해 해마다 ‘공익법 총서’도 펴낸다. 태평양 서동우(60·16기) 대표변호사는 “‘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로펌’으로서 ESG 중 ‘S(Social)’ 의 맥락에서 ‘함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 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SG 솔선수범, ESG 자문도 맞춤형으로


태평양은 글로벌 비즈니스 트렌드인 ‘ESG’에도 빠르게 발맞췄다. 직접 ‘ESG 경영리딩 로펌’을 표방하며, 고객사에도 맞춤형 자문·경영 컨설팅이 가능하다.

지난 2020년 본사를 종로로 옮긴 뒤 종이 없는 회사, ‘페이퍼리스’ 제도를 시행했다. 업무 특성상 종이 사용량이 많은 로펌에서는 큰 변화다. 그 결과 2019년 4354박스였던 A4 용지 구매량을 지난해에는 1912박스로, 56% 줄였다. 법원과 사무실을 오가며 이동량이 많은 변호사들의 이동수단으로 15인승 셔틀버스를 운영한 것도 한 가지 변화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그밖에도 사무실에서 친환경 물품 사용을 장려하며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아시안 리걸 비즈니스(ALB)가 꼽은 ‘올해의 ESG 로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20년 10월 만들어진 ‘ESG 랩(Lab)’은 기업법무 및 M&A, 환경, 노동, 컴플라이언스 분야 등의 전문가를 아우르는 조직이다. ESG 규제 동향을 점검해 기업의 ESG 경영전략 수립·실천 과정에 맞춤형 자문을 제공한다. 설립 초기부터 ‘다양성과 포용(D&I)’을 앞세웠던 태평양은 다양한 인력 채용, 일·삶의 균형 등을 고려한 건강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추구한다. 국내 메이저 로펌 최초로 여성 전문가위원회를 결성한 것도 태평양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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