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1억까지 보호하면 대출금리가 오른다?

김경희 2023. 3. 2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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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로 예금보호한도 확대(현재 5000만원→1억원)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계기로, 일부 금융회사의 부실이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으로 인한 파산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방파제’를 튼실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예금보호한도가 늘어나면 금융소비자에게는 좋은 것 같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간단치 않다. 예금보호한도가 2001년 이후 23년째 5000만원에 묶여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장 큰 쟁점은 예금보험료율(예보율) 인상 여부다. 예금보험료란 은행,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가 예금보험기금 조성을 위해 예금보험공사에 내야 하는 돈이다. 예금보호한도를 올리면 예보율 인상 압박이 더 커진다. 예보율은 금융기관의 규모나 건전성에 따라 다른데 현재 저축은행의 예보율은 예금 잔액의 0.4%로 은행(0.08%)의 5배에 달한다.

문제는 금융회사가 대출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예금자의 98%가 5000만원 이하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2%의 ‘현금 부자’(5000만원 이상 예금자)를 위해 다수의 서민이 고통 분담을 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시장 안정의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금융혁신연구실장은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라 ‘약한 고리’라고 낙인 찍히면 자금이 바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안전성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 실장은 “부자가 돈을 빼서 은행이 망하면 부자가 아닌 사람도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부자를 위한 것이란 프레임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보호한도를 올리면 예금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으로 ‘자금 쏠림’이 심화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연구용역 결과, 예금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면 저축은행 예금이 최대 4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미국에서도 한도 상향 후 저축은행 자산은 3년간 56% 증가한 반면, 은행은 2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은행 입장에선 예금보험료만 늘고 저축은행 좋은 일 하는 셈이란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저축은행 입장에선 늘어난 고객들에게 예금 이자를 주기 위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위험 자산 투자를 늘릴 필요가 커진다. 이것이 부실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안으론 금융기관의 규모와 안전성에 따라 예금보호한도를 다르게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은행은 1억, 저축은행은 5000만원인 식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최근 발의한 예금자보호법에 이같은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가 아닌 예금 상품에 따라 다른 한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15년 2월부터 일부 퇴직연금 계좌는 별도로 5000만원까지 보호해주고 있는데, 이처럼 정부가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금융상품을 중심으로 보호 대상을 늘리는 건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과 긴밀히 협의해 온 금융업계 관계자는 “예금 상품에 따라 별도의 보호한도를 설정하는 게, 여러 반발이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전했다.

예금보호한도를 올려야 한다면 지금이 ‘적기’란 목소리가 크다. 그간의 경제성장률, 불어난 예금 규모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예금자 보호 차원에서 한도를 올려야 하는데, 시급한 사안은 아니다 보니 동력이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1년 추정치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금보호한도비율은 1.25배다. 미국은 25만 달러(약3억2700만원)으로 3.6배이고 일본·영국 등도 2배 이상이다.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오는 8월까지 예금보호한도를 포함한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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