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총력 인터뷰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듣는 노동개혁 로드맵

2023. 3. 2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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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거대 노조 아니라 86%의 노동 약자 살필 것”

■노조 회계 공개·부당채용 등 법에 근거해 점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총력

■근로시간제도 개편은 ‘더 잘 쉬기’ 위한 취지… ‘노란봉투법’은 일자리 위협할 수 있어

■고용 정책은 고령자 계속고용, 청년의 조기취업, 기업의 혁신성장이 다 어우러져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무엇을 해야 할지’가 학습된 상태에서 노동개혁에 착수하고 있다. 법치, 약자 보호, 글로벌 스탠더드야말로 그가 설정한 기준이다.

정부의 노동 정책은 어느 여론조사를 봐도,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을 긍정 평가하는 이유 중 첫손가락에 꼽힌다. 윤 대통령 지지 이유로 흔히 원칙·추진력·소신 등의 키워드가 언급되는데, 강성 노조에 대한 대응은 이를 구체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정식(62) 고용노동부 장관은 윤 정부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 중 가장 부각되고 있는 노동개혁을 최전선에서 실행하고 있다. 이 장관 발탁은 전문가를 중시하는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반영한다. 윤 대통령과 뚜렷한 인연은 없지만, 이 장관은 한국노총에서 30년을 몸담은 노동 전문가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노사관계개혁위원회(1~2기)·노사정위원회(1~3기)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건설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이후 한국노총 사무처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시절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맡아 일했다. 자타공인 ‘한국 노동운동의 정책통’으로 꼽힌다.

3월 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고용노동청 본청에서 만난 이 장관은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해당 정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법적·역사적 근거를 들어가며 강의하듯 자세히 설명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장관은 ‘왜 지금 이 정책들을 추진하는가’라는 필연성과 진의를 전달하기 위해 주력하는 인상이었다.


“대통령은 노조의 지대 추구 용납 안 해”

Q : 다수 국민이 왜 정부의 노동정책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나?
A : “법을 준수하지 않고, 걸핏하면 실력행사를 하는 노조에 대해 국민의 문제의식이 있는 것이다. 상식이 통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노동운동도 시대 변화에 맞춰서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의 뜻이라고 본다.”

Q : 윤 대통령은 ‘법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 관점에서 거대 노조의 어떤 행태를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인가?
A : “노조의 힘은 도덕적 우위, 요구의 정당성, 조직 규모에서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법을 지키는 것이다. 이에 기초해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헌법에서 보장해줬다. 노조는 약자를 보호하고, 조합원의 이익·요구·주장을 충실히 대변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남한테 불필요한 피해를 주면 안 된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조가 그 힘을 이용해 부당한 지대(地代)를 추구하는 현실은 용납할 수 없다.”

Q : 구체적 사례를 든다면 무엇이 있을까?
A : “사측이 채용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기존 조합원들이 단체로 작업을 거부하고, 심한 경우 원청이 운영하는 다른 건설 현장의 작업까지 거부하며 압박한다. 또 이미 체결된 계약을 해지하고, 해당 현장에 자기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기도 한다. 조합원과 차량을 동원해 사업장 출입을 막거나 자재·설비 업체에 문자를 보내 해당 사업장에 납품을 못하도록 협박한 경우도 있었다. 노조가 법과 원칙의 테두리 밖에서 채용 강요, 노동3권 침해, 부당한 업무 방해 등을 행사한다면 반드시 바로잡겠다.”

Q : 누구보다 우리나라 노조의 한계를 직시했을 듯하다.
A : “노조 내에서도 ‘(집행부가 조합원 고충 처리에 함몰되는) 자판기 노조’에 대해 반성한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안 되면 파업하고, 3년 지나면 바뀌고… 민주적으로 조합원이 노조를 견제하고, 참여하지 못하니까 조합비 횡령·배임·부정 집행 등의 문제가 일각에서 생겼다. 노조 회계가 투명하지 않으면 노노(勞勞) 갈등이 되고, 이는 노사 갈등으로 번진다. 법에 나와 있는 대로 노조의 회계 관련 서류는 3년간 비치·보전해야 하고, 조합원이 열람하게 돼 있는데 제대로 안 됐다. 조합원이 이에 대해 문제 제기하면 노조 집행부는 징계한다. 이렇게 되면 노조가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헌법재판소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렇게 결정했다. 과태료 부과가 노조의 자주성 침해는 아니다.”

Q : 노조의 고용세습 등 부당채용 강요 행위에 대해서도 이 장관은 ‘엄정히 다루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A : “현재 채용절차법이 있지만, 실효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볼 때, 사회가 이렇게 불공정하면 얼마나 좌절하겠나. 그래서 채용 전반의 절차와 내용을 전부 규율하고, 형사적 제재까지 검토할 수 있는 ‘공정채용법’으로 강화할 방침이다. 전문가 의견도 수렴했고, 종합적으로 법안도 만들어 놨다. 관계부처와 막판(법리) 조율 중이다.”

Q : 야당이자 다수당인 민주당은 법보다 사회적 대타협으로 노동개혁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견고해 보인다.
A :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대타협은 구분돼야 한다. 사회적 대화로 최저임금위원회, 고용보험위원회, 고용정책심의위원회 등이 들어왔다. 반면 사회적 대타협을 성립할 수 있는 토양은 미비하지만, IMF 외환위기 때의 대타협 이후 오·남용되고 있다. (북유럽의 사회적 대타협은) 가톨릭과 기독교 전통, 의원내각제, 공동체주의의 전통 속에서 경제가 어려울 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런 역사적 경험이 취약하다. 대타협을 한 뒤 노·사·정이 서로 불신당한 경험만 있다. 이런 환경에서 (대타협에 의한) 합의는 굉장히 정치적인, 아무것도 없는 합의일 수 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MZ세대와 소통할 것”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을 ‘노조탄압’이라고 규정하며 저항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Q :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거대 노조의 주장이 전체 노동자의 그것과 일치하는지에 관한 국민적 의구심이 있다.
A : “문재인 정부 때 3%나 늘었어도 양대 노총 조직률은 14%다. 나머지 86%는 누가 대변해주나? 우리나라 노조가 7105개다. 다 물어볼 순 없지 않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화는 중요하다. 노사정위원회도 정비됐다. 정말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단위에서는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임한다.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의 질적 차이)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 체결이 그렇다. 협약을 뒷받침할 조선업 원·하청 패키지 지원책을 만들었고,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종합대책도 4월 중으로 내놓겠다.”

Q :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이 이슈로 떠올랐다. 반발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A : “현행 근로시간 제도는 ‘1주일 동안 최대 법정 40시간, 연장 12시간’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는 ‘근로시간 투입이 곧 성과’가 됐던 공장제 생산방식에 기초한 것이다. 1953년에 IT 센터나 AI가 있었겠나? 빛의 속도로 바뀌는 디지털, 그린 경제, ESG 시대에 일률적이고 경직된 양적 규제가 맞겠나? 이렇게 주 단위로 근로시간을 묶어두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노동시장의 변혁 시점에 노동자와 기업의 선택권을 제약할 수 있다. 포괄임금(시간외근로 등 수당을 급여에 포함)을 남용해 장시간 근로와 공짜 야근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저해한다.”

Q : 하지만 취지와 달리 상대적으로 영세한 회사에 다니는 사람일수록 장시간 노동에 노출만 되고, 이런저런 눈치가 보여서 정작 쉴 권리는 누리지 못할 수 있다.
A : “(쉬는 날과 기간의) 선택권·건강권·휴식권 그리고 휴가 갈 권리라는 4가지 원칙을 세웠다. OECD 국가보다 우리가 약 39일을 더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근로시간 단축과 온전한 휴식권 보장을 위해 일하는 날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연장근로를 선호하고,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충분히 쉬는’ 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정부 방안은 궁극적으로 노사의 선택권을 보장해 유연한 생산 활동을 지원하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겠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3월 14일 “법안 추진을 재검토하라”고 말했다.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화하는 큰 틀은 유지하되, 최장 주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게 된 내용이 쟁점이다. 특히 MZ 세대의 반발 기류가 예상보다 거세자 윤 대통령은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한 보완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고용노동부는 15일 “지금은 법안에 대한 입법예고 기간(3월 6일~4월 17일)인 만큼 청년 등 국민의 우려에 대해 충분히, 정확하게 설명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는 “1주일 평균 52시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늘어난) 특정 주(週)만 부각하는 것은 제도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상용직 노동자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0시간 수준이고, 월평균 초과근로가 52시간을 넘는 사업장은 1.4%, 5인 이상 사업장 중 연장근로가 매월 발생한 사업장은 0.73%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주 69시간 노동으로 일반화된다’는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는 반론이다.

Q : 소위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해 이 장관은 국회에 재고를 요청했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나?
A : “개정안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노동조합법 제1조의 ‘산업평화를 유지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임금체불, 해고자 복직 등 행정·사법적 판단으로 해결할 부분까지 합법적 쟁의의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또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보호하게 돼 노사 균형에 어긋난다. 게다가 개정안은 소수의 대기업·정규직 노조를 위한 특혜다. 86%에 이르는 미조직 근로자의 권리 보호와 관계없다. 이렇게 사법리스크가 확대되면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 등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임금체불하는 사용자는 구속시키겠다”


2023년 3월 15일 이정식(가운데) 고용노동부 장관은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놓고 MZ세대 노조와 만나 의견을 경청했다. / 사진:연합뉴스

Q : 86%에 달하는 근로자들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A : “미조직 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노동 약자를 보호하고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목적이다. 소규모 사업장에 ‘중대재해’가 집중되고 있다. 2022년 11월 수립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정착시켜 나갈 것이다. 또 소규모 하청 노동자가 일한 대가만큼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상생임금위원회에서 해법을 제시할 계획이다.”

Q : 반대 진영에서는 노동개혁이 아니라 노조를 ‘악마화’한다고 비판한다.
A :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의 의식·제도·관행 전반을 개선하는 것이다. 노사 법치, 약자 보호, 글로벌 스탠더드, 이 세 가지 방향에서 추진 중이다. 산업현장의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노조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불법·부당 행위에도 엄정 대응하고 있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노력,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 등도 그런 맥락에서 추진 중이다.”

Q : 사용자의 노동권 침해와 부당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 중인가?
A : “포괄임금 오·남용, 임금체불, 부당노동 행위, 직장 내 괴롭힘, 불공정 채용 등 5대 불법·부조리 근절을 위해 근로감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근로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임금체불은 중대범죄로 보고 구속영장 청구 등 강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Q : 윤 정부의 3대 개혁은 서로 연결돼 있다. 노동개혁이 성공해야 연금·교육 개혁도 탄력을 받는다. 가령 연금개혁은 정년연장과 관련이 깊다.
A : “생산연령 인구의 지속적 감소로 경제성장 잠재력이 우려된다. 고용노동부는 고령층을 복지의 대상이 아닌, 노동시장 내 핵심인력으로 규정하기 위해 2023년 1월 27일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에 기반을 두고 기업의 ‘계속고용’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 마련과 사회적 논의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일자리 만들어야 3대 개혁도 성공할 수 있어”

Q : 일자리는 결국 노동·연금·교육과 맞닿아 있다. 고용 측면에서 어떤 솔루션을 지니고 있나?
A : “우리 노동시장은 일단 노동력 공급 측면에서 출생률 저하와 고령화로 인해 생산연령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특히 청년들은 하향 취업보다 구직기간 연장을 선택하며 노동시장 진입을 늦추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으로 노동력 수요 측면에서 민간 일자리 창출력 둔화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청년에 대해 재학 단계부터 업무 경험을 활성화시켜 노동시장 조기진입을 촉진할 것이다. 일자리 수요 측면에서는 기업의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완화 등 경제·산업 정책을 통해 민간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지원하겠다.”

Q : 이 장관은 노동계에 오래 몸담았다. 그러다 보니 노동계로부터 ‘서운하다’는 말도 들을 법하다.
A : “노동계도 천차만별이다. ‘힘내라’, ‘이번에는 개혁이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제보도 많이 들어온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서운하다’고 한다. 노조의 자율·자치·자주성은 법치 위에서 성립한다. 지키도록 법을 만들고 안 지키면 잡아간다. 그러나 자기편을 잡아가니까 탄압이라고 한다면 ‘내로남불’이다. 국회에서 나에게 ‘소신이 바뀐 것 아닌가’라고 묻더라.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다. 다만 바뀌어야 되는데 바뀌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나는 국무위원 신분이다. 14%의 (조직화된) 노조가 아니라 86% 노동자까지 다 봐야 한다. 현재가 아닌 미래에 청년의 일자리도 있다. 나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는 분들도 시간이 가면서 오해를 풀 것이라고 믿는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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