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류, 야 너도?” 장재영과 김건희의 ‘동상이몽’

고봉준 입력 2023. 3. 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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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시범경기에서 투수 겸 타자로 뛰고 있는 키움 장재영(왼쪽)과 김건희. 투수가 메인인 장재영은 글러브를 들었고, 아직은 타자가 익숙한 김건희는 배트를 챙겼다. 고봉준 기자

이도류(二刀流). 과거에는 양손으로 각기 다른 무기를 다루는 일본 무사를 칭했지만, 현대로 와서는 두 가지 일을 함께 처리할 수 있는 능력자를 가리키게 됐다.

최근에는 야구계에서도 이도류란 단어가 자주 쓰이곤 한다. 만화야구를 펼치는 오타니 쇼헤이(29·일본)가 등장하면서다.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야구팬들을 매료시켰다. 마운드에선 시속 150㎞ 후반대의 강속구를 던지고, 타석에선 장타를 펑펑 때려내면서 메이저리그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선수들의 워너비 스타가 된 오타니. 그렇다면 한국 야구에서도 이도류란 단어가 통용될 수 있을까. 당장은 어렵겠지만, 몇 년 뒤에는 이도류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선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바로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2년 터울의 선후배 장재영(21)과 김건희(19)가 주인공이다. 올해 시범경기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둘을 최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함께 만났다.

장재영과 김건희는 지난해 말부터 이름이 나란히 오르내렸다. 투타 겸업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였다. 먼저 장재영. 덕수고 시절 150㎞대의 빠른 공을 던져 시선을 끌었다. 시간이 갈수록 잠재력은 높게 평가받았고, 키움으로부터 1차지명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프로 마운드는 녹록하지 않았다. 제구 난조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지난해 11월 호주야구리그(ABL) 질롱 코리아(한국 선수들이 파견된 호주 도시 질롱 연고의 구단)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고교 시절 두각을 나타냈던 방망이를 통해 투수로서의 자신감도 되찾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는 키움 구단은 물론 홍원기 감독이 먼저 제안한 내용이기도 하다.

장재영은 “질롱 코리아에선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이런 마음가짐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것 같다. 또, 공격적으로 타자와 상대하면서 빠른 승부의 묘미를 조금씩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선 투구수를 계속 늘렸다. 5선발 진입을 목표로 많은 이닝을 던질 수 있는 체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장재영은 이번 시범경기에서도 투수 겸 야수(우익수)로 뛰고 있다. 그러나 타자 도전은 어디까지나 향후 가능성을 판단하는 정도다. 올 시즌은 일단 시범경기까지만 이도류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올해 시범경기에서 투수 겸 타자로 뛰고 있는 키움 장재영(왼쪽)과 김건희. 둘은 같은 듯 다른 이도류 도전을 통해 전우애를 쌓고 있다. 고봉준 기자

이와 달리 포수 출신 김건희는 이도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훗날 오타니와 같은 선수로 성장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있다. 이미 원주고 시절부터 김덕윤 감독의 배려를 통해 시도해봤던 투타 겸업이라 어려움도 크지 않다. 현재는 포수 마스크는 잠시 내려놓고, 투수와 1루수에만 집중하고 있다.

김건희는 “스프링캠프에선 하루하루 훈련이 달랐다. 어제 투수 연습을 하면 오늘 타격을 하는 방식이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선배님들께서 많이 챙겨주셔서 금방 훈련이 끝났다”고 웃고는 “코치님들도 정말 많이 가르쳐주시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만의 길이 생기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게 소중한 경험이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재영과 김건희는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투수조와 야수조 훈련을 함께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의 존재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곤 한다. 김건희는 “우리 모두 바쁘기는 하다. 그래도 (장)재영이 형이 틈날 때마다 나를 챙겨주신다. 문제점이 있으면 바로 집어주기도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장재영은 “(김)건희는 밝은 친구다. 속으로는 걱정이 많아도 겉으로는 티를 잘 내지 않는다”면서 “투수로서의 잠재력도 커 보인다. 직구 힘이 대단하더라. 또, 포수 출신이라서 투수의 마음을 잘 이해하리라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그렇다면 둘을 바라보는 사령탑의 속내는 어떨까. 홍원기 감독은 “장재영은 지난 2년의 시간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투수로서의 재능이 아까운 만큼 마운드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건희를 두고는 “던지는 감각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당장 1군에서 통하기란 쉽지 않다. 인내를 갖고 성장해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말미 장재영과 김건희에게 오타니의 존재를 물었다. 장재영은 “오타니는 신이다. 나는 일단 하나라도 잘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김건희는 “솔직히 말해서 오타니가 롤모델이기는 하다. 그냥 오타니처럼 되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만의 색깔로 칠한 김건희가 되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미묘한 대답 차이에서 닮은 듯 다른 둘의 미래가 살짝 엿보였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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