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필요한 돌봄... 돌봄노동의 가치를 되짚다

임재우 입력 2023. 3. 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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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돌봄 - 서로의 노동에 기댄 풍경

[임재우]

(* 아래 언급되는 사례들은 필자가 재구성한 사례들입니다.)

방문 진료. 쉬운 말로 왕진갑니다. 병원으로 진료받으러 오기 어려운 분들을 직접 찾아갑니다. 간호사 선생님,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방문하니까 재택의료라고도 합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직접 오시기 어려운 분들을 찾아뵙다 보니, 90세 이상 고령인 노인분들, 암 환자분들, 중증장애인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여러가지 법적 근거를 가지고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의 가정에 방문하게 된다.
ⓒ 임재우
 
그분들이 저희를 만나게 되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본인이 직접 전화를 주시거나, 가족분들이 연락을 주시기도 합니다. 주민센터나 보건소처럼 공공영역에서 의뢰를 주시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렇게 저희에게 연결된 분들을 만나면, '아, 우리가 평소에 정말 많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는 티끌만큼도 신경 안 쓸 일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는 일로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누운 자리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여유로운 시간의 표현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당장 욕창부터 걱정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밤에 잠드는 일도, 대소변을 처리하는 일도 스스로 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걸 돌보는 일은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가족의 돌봄

그런 돌봄 행위를 제공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가족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참으로 헌신적으로 애정 어린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분들을 보면 숙연한 마음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가족은 환자를 부양함과 동시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었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주 보호자를 부양하기 위해 다른 가족분들이 노동을 통해 역할 분담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돌봄이란 너무 어렵고 버거운 일이기 때문에, 요양보호사나, 활동지원사 선생님 같은 다른 돌봄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저희와 같은 의료노동자나 복지노동자들의 전문적인 활동이 필요하기도 하고, 공무원 노동자들의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돌봄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또 해야 하는 것은, 서로의 노동이 촘촘하게 얽혀있는 노동의 네트워크, 노동의 그물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염취약시설의 대면 접촉 면회가 다시 가능해진 지난해 10월 4일 서울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에서 입소자와 가족이 면회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이렇게 이 집 저 집 다니다 보면, 안타까운 상황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90세 치매 환자분의 주 보호자가 뇌출혈로 한쪽 마비 상태인 95세 배우자라든지, 말기 간경화 환자의 주 보호자인 자녀가 혈액암을 앓고 있다든지, 중증장애인 자녀를 수십 년간 헌신적으로 돌봐온 칠순 넘은 어머님이 이제는 치매에 걸려서 자녀를 괴롭힌다든지….

열거하면 끝이 없습니다. 드라마로 만들면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고,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습니다. 이걸 대체 어찌해야 하나 싶어 소위 '웃프기도(웃기고 슬프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벽에 부딪힌 것 같은 상황을 마주하는 것으로도 숨이 턱턱 막힙니다.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안타까움은 환자의 상태 때문에, 질병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80대 뇌경색 편마비 독거노인 분이, 하루에 4시간 요양보호사 선생님 도움을 받으면서 두 끼 정도 챙겨 드시고, 혼자서 주춤주춤 화장실 왔다 갔다 하시는 걸 보면 그렇게 안타깝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알았지요. 진짜 안타까움은 돌봄이 안타까울 때, 그때 생긴다는 것을요.

노동의 연결 돌봄

제가 일하는 재택의료센터 업무의 중요한 부분은 끊어진 돌봄을, 끊어진 노동을 당사자를 중심으로 다시 연결하는 것입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치료하고, 사회복지사는 복지 자원들을 연계하고, 작업치료사는 함께 일상생활을 연습합니다. 공무원 노동자가 어떻게든 공공자원을 끌어모아 응급실로 입원시키기도 합니다. 요양보호사나 활동지원사가 댁에 방문하고, 노인 일자리 사업 도시락배달을 받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중증장애인의 자립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이제서야 장애를 주제로 사회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장애는 사람에게 있지 않다"라거나,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라는 이야기가 마음 깊숙이 와닿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손상 자체가 어려움이라기보다는 그 손상을 둘러싼 사회의 차별과 배제가 '장애'라는 경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만으로는 약간은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 경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감되었습니다. 이제라도 노동이 잘 연결되어 돌봄이 잘 이루어지면, 제가 느끼는 안타까움이 많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돌봄이나 노동의 연결이 쉽지 않은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 돌봄과 관련된 노동에 대한 가치나 돌봄 노동하시는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 등이 아직 긍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 같거든요. 당장 이렇게 힘겹게 사는 환자분들의 댁으로 방문하여 진료하려는 의사 선생님들도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요.

최근 읽은 <돌봄과 인권>(김영옥, 류은숙 저, 2022)이라는 책 뒤표지에 이런 질문이 적혀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돌봄의 다양한 측면에 놀라면서 읽은 책입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나 하고 있는데, 돌봄은 왜 두려운가. 무엇이 돌봄을 값싸고, 비루하고, 외로운 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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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쓰신 임재우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으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재택의료센터에서 근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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