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이단 괴물을 만든 건 박물관 교회다

이명희 입력 2023. 3. 2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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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게 기독교다. 대중의 집단 광기와 분노의 배설 창구가 된 듯하다. 목사의 딸이 마약중독자로 등장하는 ‘더 글로리’와 ‘수리남’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 ‘오징어 게임’ 등 요즘 넷플릭스에 등장하는 자극적인 드라마의 패턴은 과장하면 ‘기승전 기독교’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교주 정명석을 비롯해 이단들의 폐해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마저 정통 교회와 이단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공분을 일으키며 기독교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로마시대 네로 황제는 자신의 실정을 감추고 들끓는 민심을 돌리기 위해 기독교인을 희생양 삼아 박해했다. 일제강점기 기독교인들은 일왕 숭배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르거나 순교했다. 해방 후에는 많은 기독교인이 공산주의를 반대하다 희생됐다. 개화기를 거치면서 한국이 교육, 의료, 복지 등 각 분야에서 문명국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복음과 함께 이 땅에 뿌려진 기독교 덕분이다. 3·1운동 선봉에 기독교인들이 섰고, 한국전쟁 때 고아를 돌봤으며, 지진이나 해외 전쟁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생명을 구하고 슬픔에 잠긴 이들의 고통을 어루만진 것도 기독교다. 그런데 지금은 한류 열풍 속에서 드라마 등에 한국 기독교를 비하하는 내용이 부각되면서 ‘K선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난주 제주에서 열린 국민일보 자문위원회 회의에서 주요 교회 목회자들은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콘텐츠 제작사들이 반복적으로 목회자를 희화화하고 조롱하는데 항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과 함께 교회를 향한 비난에 대해 우선 미안하다고 사과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풍토 속에서 상처받는 성도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치유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쩌다 기독교가 이렇게 동네북이 됐을까. 이단·사이비 종교 집단의 범죄자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정치목사들은 극소수다. 우리 주변에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이중직을 하면서 사명감으로 사역하는 건강한 목회자들이 대다수다. 아파트 상가나 학교 식당, 집에서 3~4명이 시작해 성장한 교회들이 많다. 최근 화제가 됐던 미국 켄터키주의 애즈버리대 부흥만큼 한국에서도 뜨겁게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던 때가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독교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진 것은 광화문의 정치적인 목사들 때문이다. 교회마저 이념에 따라 분열되면서 대중의 지탄 대상이 돼 버렸다.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만 급급한 기성 교회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찬수 분당우리교회 목사는 지난 19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현상 유지적 교회, 박물관 교회들이 성도들을 이단에 끌려가게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존 파이퍼 목사의 ‘하나님께 굶주린 삶’ 저서를 인용해 “육신적인 욕망에 집중하다 보니 영혼의 배고픔을 잊게 만든다”며 “여기서 안 채워지니 신천지도 찾아가고 JMS도 찾아간 거다. 그렇게 만든 건 무기력한 저 같은 기성교회 목사들”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현상 유지적 교회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을 회복하고 그 목마름을 갖고 예배의 자리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자본과 결탁한 언론의 책임도 크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지정한 신천지 광고가 주요 일간지 양면에 실린다. 기쁜소식선교회, 은혜로교회 등 이단 광고도 일간지 지면을 도배하고 심지어 일부 신문은 홍보기사까지 써주고 있다. JMS 사례에서 보듯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간 이단들이 사회 지식층과 청년층에 독버섯처럼 파고들었다. 지금도 이단들은 언론을 상대로 소송이나 신변 위협으로 겁박하면서 한편으론 자본의 위력을 내세워 활개치고 있다.

고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는 생전에 새 신자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MBC 기자 출신의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가 최근 자신을 예수께로 이끈 하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힌 내용이다. 하 목사는 교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교회요…. 교회는 제도가 되기 직전까지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목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목사요…. 목사는… 괴물입니다.” 사탄의 유혹과 이단이 판치고 기독교가 ‘개독교’로 폄하되는 험난한 이 시대, 목회자들이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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