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이민청 설립하고 개방적 플랫폼 국가 만들자”

주정완 2023. 3. 2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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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24·끝> 연재를 마치며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전시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그라미 속 글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헌사다. 변 전 실장은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를 마치며 “경제 정책은 이념이나 색깔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남루한 호남선 열차에 충격받은 대학생 시절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을 숙제로 남겨놓고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윤석열 대통령 경제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연재를 통해 자신의 삶과 경험을 진솔한 글로 풀어냈다.

변 전 실장은 이번 연재에서 1973년 박정희 정부부터 2007년 노무현 정부까지 30년 넘게 경제 정책의 현장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최초의 국가 장기 재정계획인 ‘비전 2030’의 좌절 ▶긴박했던 한미 FTA 협상 ▶용산공원의 과거와 현재 ▶무산된 행정수도 이전과 세종시 건설 등이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부에서 ‘제2의 토지개혁’을 시도했지만 무산된 사연도 처음 공개했다.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를 마무리하는 변 전 실장을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만났다. 센터 안 전시관과 도서관에선 변 전 실장이 남긴 헌사와 책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그는 도서관 계단에 앉아 잠시 예전 기억을 돌아보기도 했다. 다음은 변 전 실장과의 일문일답.

「 공직 최대 보람 한미 FTA 타결
경제 정책은 진영 논리 벗어나야
왕래 자유로운 열린 국가 세우고
포퓰리즘 대신 미래에 투자해야

의회와 소통하는 노력 부족했다

Q : 연재 타이틀이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였다. 이걸 선택한 이유는.
A : “내 인생의 20대부터 50대까지 줄곧 했던 일이 경제 정책 수립이었다. 경제 정책은 이념이나 색깔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특정 진영의 논리로 경제 정책을 수립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단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 전체의 이익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Q : 연재 내용을 보면 성공한 정책보다 그렇지 않은 게 더 많았다.
A : “나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권력이 행정부에 있었고 의회를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정책 결정과 입법의 최종 권한이 의회로 넘어갔다. 우리 정치 환경에선 제대로 된 토론이나 협상·타협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대화와 설득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했다. 하지만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관료주의적 타성이 남아 있었던 게 아닌가 반성한다.”

Q : 연재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반응은.
A : “지난달 글에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면담한 얘기를 다뤘다. 그때 흡수통일론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 통일에 반대하는 것이냐고 비판하는 반응이 많았다. 나는 준비 없는 통일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좌우를 막론하고 통일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엄청난 준비와 비용이 필요하다는 걸 꼭 알고 있어야 한다.”

Q : 공직 생활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A : “굳이 하나를 꼽는다면 한미 FTA 협상 타결이다. 노무현 지지자의 거의 모두가 반대하는 사안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게 옆에서 보좌하는 데 애를 썼다. 노 전 대통령도 속으로는 굉장히 걱정이 많았다. 오죽하면 협상 타결 뒤에 ‘이상하다. 지지율이 왜 오르지’라고 했을까.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그런 말을 했다.”

Q : 노 전 대통령과는 어떤 관계였나.
A : “내 의견이나 생각을 과분하게 존중해줬다. ‘내가 멀리 봤다면 그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란 말이 있다. 영국의 아이작 뉴턴이 남긴 명언이다. 나로선 노무현이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에 세상을 넓고 높게 볼 수 있었다.”
폐쇄적 이민 정책 완전히 바꿔야

Q : 최근 우리 경제 상황은 어떻게 보나.
A : “개방경제인 한국은 대외 여건 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리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미국을 추월한 건 2003년이 처음이었다. 예전에 노 전 대통령에게 ‘중국이 있기 때문에 물가와 성장은 별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20년이 지났다. 중국 경제 성장은 둔화하지만 인도·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이 떠오르고 있다. 현재 대외 여건이 어렵지만 잘 대응하면 길이 없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Q : 코로나19를 거치며 국가채무가 급증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A : “지난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많이 증가하고 재정 여력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 중요한 건 그 돈을 어디에 썼느냐다. 미래를 위한 투자냐, 당장 쓰고 없어지는 소비성 지출이냐 따져봐야 한다. 무조건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다. 아직도 수치를 보면 재정지출을 늘릴 여력이 있다. 예컨대 저출산 극복이나 과학기술 진흥 같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Q : 2017년 『경제철학의 전환』이란 책에서 노동·투자·토지·왕래의 자유를 제안했다. 여전히 유효한가.
A : “그렇다. 그중에서도 이민정책의 전면 개편을 포함한 ‘왕래의 자유’를 강조하고 싶다. 저성장·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인력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중요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방으로 이민이 자유로운 나라, 왕래가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일종의 ‘플랫폼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민 정책의 컨트롤 타워로 이민청 설립도 필요하다고 본다.”

Q : 건강 문제로 큰 수술을 여러 번 했다고 들었다.
A : “공직에서 물러난 뒤 전신마취 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았다. 췌장암 진단으로 수술을 받았다가 상태가 악화해 중환자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수술 후 조직검사를 했더니 췌장암은 아니었다. 전립선암과 맹장 수술도 받았다. 그렇게 60대는 수술로 세월을 보내고 70대 들어선 잘 지내고 있다.”

정리·대담=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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