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과연 잊히고 싶은 게 맞나

2023. 3. 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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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왼쪽)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용진 페이스북


“이재명 대안 없어” “당 달라져야” 아전인수 논란 낳아


팬덤정치 폐해 “양념”이라 했던 그가 “문자폭탄 걱정”


더불어민주당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 관련 발언을 놓고 때아닌 해석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거취를 놓고 친명계와 비명계가 갈등하는 와중에 느닷없이 전직 대통령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발단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었다. 그는 지난 10일 문 전 대통령과 만났다며 라디오방송에서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총단합해서 잘해야 되는데 그렇게 나가면 안 된다. 이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무슨…’ 정도의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 퇴진론’에 반대한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더니 비명계인 박용진 의원은 엇그제 다른 언급을 전했다. 경남 양산을 찾았었다는 박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조금 달라지고, 뭔가 결단하고 그걸 중심으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총선에서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고 SNS에 썼다. 박 전 원장과 딴판으로 문 전 대통령이 당내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의 갑론을박에는 우선 문 전 대통령 자신의 책임이 크다. 그는 2020년 신년 회견에서 “대통령 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끝나면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었다. “정치권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으면서도 최근 혼란스러운 당 사정에 대해 여러 말을 하니 ‘전언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당장 민주당에서 “우리가 문 전 대통령 꼬붕이냐”(이상민 의원)는 반발이 나왔고, 국민의힘 측은 “퇴임 대통령이 거대 야당 섭정 노릇을 해서 되겠느냐. ‘양산 대원군’까지 하려느냐”(권성동 의원)고 공격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편을 갈라 전직 대통령 발언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도 꼴불견이다. 문 전 대통령과의 대화가 전체적으로 어떤 맥락이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일부 언급만 끄집어내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만 이용하는 얄팍한 태도다. 169석으로 국회 다수당인 정당이 대선 패배 이후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환골탈태해도 모자랄 판에 정권을 내준 전직 대통령의 언급에 불나방처럼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문 전 대통령이 당내 좌표 찍기, 문자 폭탄 등에 대해 걱정한다는 박 의원의 전언 역시 사실이라면 낯이 뜨거울 뿐이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의 행태에 문제가 많지만, 팬덤 정치의 폐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강성 지지층의 ‘18원 후원금’, 비방 댓글에 대해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했던 이는 바로 문 전 대통령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정치 원로로서 자중하고, 민주당 인사들도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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