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 태양광 시설’ 두고 수년째 소송전…무너진 동해 지흥동 마을

박진호 2023. 3. 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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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동해시 지흥동 마을에 있는 창고 모습. 창고 회사가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박진호 기자


평온한 마을 '소송전'으로 얼룩져


19일 오후 강원 동해시 지흥동 한 마을에 들어서자 지붕이 미끄럼틀처럼 한쪽으로 비스듬히 설치된 대형 창고 건물 4개 동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당 창고는 이 마을 주택가보다 높은 곳에 있는 데다 4동이 모두 같은 모양이었다. 가파른 경사에 정남향 지붕은 햇볕을 받기 좋은 구조였다. 현재 태양광 설치를 위한 기초 작업 일부가 진행된 상태였다.

창고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몇 년 전 창고 여러 동이 들어서고 지붕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마을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며 “태양광 관련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얼핏 보기엔 평온해 보이던 마을은 소송전으로 얼룩져있었다. 주민들에게 창고 건물과 태양광 시설에 관해 묻자 예민하게 반응했다. 18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원 동해시 지흥동 마을에 있는 창고 모습. 창고 회사가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박진호 기자


창고 회사 2019년 1월 '전기사업허가신청'


이 마을에 본격적으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건 대형 창고 4동이 설치되고 건물 지붕 위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다. 창고 회사는 2019년 1월 창고 지붕 위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전기사업허가신청’을 했다.

이에 주민들이 ‘마을 미관과 환경 훼손’을 이유로 반발하며 민원을 제기하자 동해시는 그해 3월 민원조정위원회를 개최한다. 심의를 진행한 동해시는 ‘인근 주민 설치반대 진정민원이 발생해 발전소 적기 준공이 불투명하며, 인근 주민들과 갈등이 있는 상태에서 태양광 발전시설이 준공돼 운영되면 발전사업이 지속적ㆍ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사유로 불허가 처분을 했다.

이에 창고 회사는 강원도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같은 이유 등으로 기각됐다. 창고 회사 측은 춘천지법 강릉지원에 동해시를 상대로 ‘불허가 취소 소송’을 냈고 2020년 4월 1심 재판부가 창고 회사 손을 들어주면서 마을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강원 동해시 망상한옥마을에 설치된 태양광 모습. [사진 창고 회사]


대책위 주민들 재판에 '보조참가인'으로 참여


이번에는 동해시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직접 영향을 받는 지흥동 주민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도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재판에 참여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기존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된 장소와 비교해 이 사건 태양광 사업으로 인해 자연환경과 마을 미관이 더욱 심각하게 훼손될지 여부 또한 분명하지 않다’며 창고 회사 손을 들어줬다. 이어진 대법원 판결도 창고 회사가 승소하면서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대책위 주민들은 창고 회사가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등을 위해 법적 기준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부지는 건물 지붕이 아닌 땅에 설치할 경우 동해시 도시계획조례에 따라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가 불가능하다. 조례에 따르면 10호 이상 인구밀집 지역 500m 안에 발전시설이 입지해선 안 된다.

하지만 조례와 창고를 지을 당시 국토교통부 지침 등을 보면 “특정 기준을 충족하면 지붕에 부착한 태양광 패널은 ‘건축물 부속설비’로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주민 대책위는 창고 회사가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를 위한 복잡한 절차를 피해가기 위해 창고 부지(9000여㎡)와 야적장 부지(4000여㎡)를 나누어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하는 등 국토법 지침 등 교묘히 이용해왔다고 주장한다. 해당 지역의 경우 1만㎡ 이상이면 ‘소규모환경영향평가’와 ‘도시계획위원회심의’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게 대책위 설명이다.

강원 동해시청 주차장 태양광 모습. [사진 창고 회사]


창고 회사 "창고를 짓는 과정서 추가 구상한 것"


반면 창고 회사 측은 처음부터 태양광 발전시설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태양광 전기사업은 창고를 짓는 과정에서 추가로 구상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창고 회사 관계자는 “창고 짓는 과정에서 시청 지붕에 태양광을 올려놓은 것을 보고 넓은 지붕을 그냥 놔두는 것보다 태양광을 설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이게 문제가 되면 시청 옥상과 동해시가 운영하는 숙박시설, 집 위에 있는 태양광 시설도 모두 철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땅에다 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지붕 위에 하는 게 뭐가 문제 되느냐”며 “경관을 문제 삼으려면 창고를 짓는 것부터 이야기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동해시는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해 2월 창고 회사에 태양광 발전허가를 내줬다. 창고 회사 측은 4월 중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에 들어갈 예정이다.

강원 동해시 지흥동 마을에 있는 창고 모습. 창고 회사가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박진호 기자


재판부 지난 2월 지흥동 '현장 점검'


한편 대책위 주민들은 재판이 끝난 뒤 2018년 1월 국토교통부 지침이 강화된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이 지침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건축물 위에 설치하는 경우에도 국토계획법령상 개발행위허가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책위 주민들은 춘천지법 강릉지원에 동해시를 상대로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동해시 관계자는 “(창고 회사가)태양광을 설치하기 위해 창고를 지은 것으로 보고 법의 허점을 이용한다고 판단해 불허가했던 것으로 안다”며 “최근 재판부에서 현장 점검을 나와 반사광과 이격거리 등을 점검하고 간 만큼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동해=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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