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대항전 된 반도체 패권 경쟁 [임상균 칼럼]

임상균 매경이코노미 기자(sky221@mk.co.kr) 2023. 3. 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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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주간국장
탈세계화의 상징이 된 반도체 패권 경쟁을 다룬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의 ‘반도체 전쟁(Chip War)’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같은 제목의 ‘Chip War’라는 책이 1989년에도 출간됐다는 게 재밌다. 30년 이상 시차를 두고 같은 제목의 책이 나올 정도로 반도체는 국가의 생존과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둘 다 선전 포고는 미국이 했고, 상대는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1956년 미국의 천재 과학자 윌리엄 쇼클리가 최초의 트랜지스터를 개발했고, 그와 동업했던 8명이 새로 차린 페어차일드가 세계 최초로 집적회로를 상용화했다. 이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인텔, 마이크론 등으로 이어지며 미국은 반도체의 종조국이자 절대적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런 미국이 1980년대 들어 일본 반도체의 공습에 시달리게 됐다. 값싼 노동력과 초정밀 기술로 무장한 히타치, 미쓰비시전기, 도시바, NEC 등의 미국 시장 점령은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불렸다.

미국 정부가 나서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됐다. ▲일본에서 외산 반도체 점유율을 20%까지 높이고 ▲일본은 반도체 덤핑 수출을 중단하며 ▲미국의 대일본 반도체 투자 금지를 철폐하고 ▲보복 관세 등으로 일본 반도체 산업을 감시한다 등이 핵심이었다.

내수 시장점유율을 다른 나라가 정해주는 굴욕적이고 반시장적 협정이었지만 일본 정부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국 반도체 업체 기술력을 맹신했다고 한다. 자국 반도체가 미국산에 시장을 내줄 리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한국과 대만 반도체에 밀려 일본 반도체는 쇠락의 길을 걷고 만다. 출발점이 미국의 강압적 무역 협정이었다.

이번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으로 미국 반도체의 부활을 노린다. 이 법을 주도한 지나 레몬드 상무장관은 “최종 목표는 미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지닌 모든 기업의 연구개발과 대량 생산을 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세우면 보조금을 주겠다지만 대신 요구하는 조건이 엄청나다.

▲보조금 신청서에 적은 예상 수익보다 더 많이 벌면 보조금의 75%까지를 뱉어내라 ▲시설별 생산 제품과 주요 고객, 생산 규모 등 정보를 제출해라 등이며 세계 최대 수요처인 중국에 추가 투자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세우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2조~3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145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보유 현금의 2%에 불과하다. 이 돈을 받으면 생산과 기술 관련 핵심 정보를 미국에 내줘야 하며, 주력 시장인 중국에서 신제품 생산을 접어야 한다. 그게 싫으면 미국 공장을 포기해야 한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외면하는 대단한 모험이 된다.

중국 반도체 산업 성장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과 대만 반도체 산업이 궁지에 몰렸다. 30년 전 일본 반도체를 무너뜨렸던 미국의 의지와 행태를 보건데, 순순히 수용했다가는 일본이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 패권 경쟁은 이제 국가 대항전이다.

한일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익을 지키는 영업사원을 자처하고 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외교를 지향한다. 국익과 미래를 지키는 외교는 내달 한미 정상회담이 진검승부다. 한일 회담이 좋은 지렛대로 활용되기를 바라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1호 (2023.03.22~2023.03.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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