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통에 불 붙였다"…연금개혁 반대 시위, 시험대 선 마크롱

박소영 2023. 3. 1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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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가 근로자의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연금 개혁안을 의회 표결 없이 강행하면서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지난 17일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연금 개혁안 강행 반대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시위대가 일부 쓰레기통과 자동차에 불을 질렀다. AFP=연합뉴스


시위대, 마크롱 사진 불태워

18일(현지시간) 로이터·AP·AFP통신 등에 따르면 정부가 헌법 제49조3항을 사용해 하원에서 투표를 건너뛴 뒤 연금 개혁안을 강행하기로 밝힌 지난 16일부터 사흘째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수도 파리를 비롯해 마르세유, 낭트 등 주요 도시에서 지난 3일 동안 수만 명이 연금 개혁안을 반대하는 행렬에 합류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난했다.

시위자들은 ‘마크롱은 끝났다’, ‘마크롱 사퇴’, ‘국민에게 권력을’ 등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마크롱의 사진을 태웠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에게 병과 폭죽, 돌 등을 던졌고, 거리의 쓰레기통과 자동차에 불을 질렀다. 특히 쓰레기 수거업체 노조 파업으로 쓰레기가 1만t이나 쌓인 파리에선 쓰레기 더미에 불이 나기도 했다. 리옹에선 시위대가 시청 건물의 창문을 깼다. 시위대는 건물에 불을 지르려 했지만 경찰이 저지했다.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시위대에 대응했다.

지난 16일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 열린 연금 개혁안 강행 반대 시위에서 시위대가 불을 질러 소방대가 출동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사흘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수백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특히 파리에선 16일 258명, 17일 61명이 연행됐다. 경찰 당국은 18일 파리의 중심부인 콩코르드 광장과 샹젤리제 주변 지역의 주요 도로에서 집회를 금지했지만, 이날 밤에도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와 과격한 시위를 이어가 81명이 체포됐다.

보건소 직원인 한 50대 여성은 “은퇴를 더 기다릴 수 없어서 시위에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위자는 “이번 조치는 비민주적이고 혐오스러운 국가 지도자의 전형적인 조치”라면서 “마크롱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매일 거리에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란 조끼 시위 방불, 마크롱 “후회 없다”

현지 언론에선 이번 시위가 점점 격화되면서 지난 2018년 말 유류세 인상에 반대해 벌어진 ‘노란 조끼 시위’를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당시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면서 격렬한 시위가 몇 달간 이어졌고,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1년 반 만에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번에는 연금 개혁 논란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재선 1년 만에 2018년 이후 가장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집권 여당 르네상스당의 한 의원은 “우리는 화약통에 앉아있었는데,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며 상황 악화를 우려했다. 텔레그래프는 “이번 논란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자격은 누더기가 됐고, 레임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자유로운 의회 민주주의를 위해 대통령 체제를 개혁하라는 요구가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는 없다”고 일축했다. 하원에서 연금 개혁안이 통과하지 못하는 게 더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봤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설명하기 위해 대국민 TV 연설을 고려하고 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한 시위자가 지난 17일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열린 연금 개혁안 강행 반대 시위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모습의 피켓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총리 불신임안, 가결 땐 내각 총사퇴

BBC는 반대 시위가 연일 격화하고 있어서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가 사태 수습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프랑스 하원의 야당 의원들이 지난 17일 제출한 보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은 20일 표결될 예정이다. 불신임안이 통과되려면 하원 의원 과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하원 전체 의석은 577석이나, 현재 2석이 비어있어 287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여당 르네상스 등 집권당 의석이 250석으로 가장 많지만, 과반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야당 의원이 힘을 합친다면 통과시킬 수 있다.

불신임안이 부결되면 연금 개혁 법안은 법률로 발효된다. 반대로 가결되면 법안은 폐기되고 총리 등 내각은 총사퇴해야 한다. 이때 마크롱 대통령은 총리를 교체하거나, 재신임할 수 있다. 하원을 해산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부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프랑스의 연금 개혁안은 현재 62세인 정년을 올해 9월 1일부터 매년 3개월씩 연장해 2027년에는 63세, 2030년까지는 64세로 늘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은퇴자의 수명이 계속 늘어나 연금 재정을 압박하는데, 근로자 수는 늘지 않아 정년 연장안을 내놨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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