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부치 딸 이야기도 나왔다…尹·기시다 그날 만찬 뒷얘기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의 만찬에서 오부치 유코(小渕優子) 자민당 중의원이 공동 화제에 올랐다고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오부치 의원은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표한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전 총리의 딸이다.
19일 한ㆍ일 정상회담 과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16일 양국 정상 부부와 극소수 인사들이 참석한 만찬에서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일본 정치권에서 술이 가장 센 것 아니냐”고 묻자, 기시다 총리가 “그렇지 않다. 오부치 의원이 술이 가장 세다”고 답했다.
양국정상은 16일 정상회담 직후 도쿄 중심가인 긴자의 스키야키 식당 ‘요시자와’(吉澤)에서 부부 동반 만찬에 이어, 인근 ‘렌가테이’(煉瓦亭) 경양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이례적인 독대를 이어갔다. 만찬엔 한국 측이 준비한 소주(참이슬)와 일본 측이 마련한 맥주(에비수)를 섞은 ‘폭탄주’와 일본의 고구마 소주 등이 곁들여졌다. 양국 관계의 발전을 의미하는 두 정상의 '러브샷'도 있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는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의 제안으로 마련된 폭탄주에 대해 “한ㆍ일 우호의 맛이 진짜 맛있다”고 화답하며 오부치 의원을 언급했는데, 이에 대해 외교가에선 이번 회담의 실질적 동력이 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무게감이 정상 간의 솔직한 만찬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한ㆍ일 관계 복원의 계기가 된 이번 정상회담의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회담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일본이 직접적 유감 표명 대신 “1998년 10월 일ㆍ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화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4월 지방선거를 앞둔 일본 내 극우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계승 의지를 밝혔고, 윤 대통령과의 내밀한 만찬 자리에선 한국의 결단에 “감탄했다”는 솔직함을 드러내며 “이 마지막 한잔은 내가 한국을 방문할 때 한 잔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의 의지를 확인한 윤 대통령은 16일 만찬에 이은 17일 게이오대 연설에서 “여러분도 저도 좋은 친구를 만들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금 더 용기를 내자”며 기시다 총리와의 만찬을 ‘좋은 친구를 만든 자리’로 평가했다. 직후엔 일ㆍ한의원연맹 및 일ㆍ한친선협회중앙회 인사들과의 접견을 통해 기시다 총리가 직접 언급했던 오부치 유코 일ㆍ한의원연맹 부회장을 면담했다.
윤 대통령은 면담에서 “정상 차원에서 한ㆍ일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한 만큼 향후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양국 국민 간 우호 협력 강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부치 의원은 “‘김대중-오부치 선언’ 발표 25주년인 올해 한ㆍ일 관계 개선에 중요한 발판이 마련된 것을 평가한다”며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한ㆍ일 간 제반 분야 교류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지속해 노력해가겠다”고 답했다.
또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일본 연립 여당인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방한 때 윤 대통령에게 선물 받은 ‘윤석열 시계’를 차고 나오며 한ㆍ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방일을 통해 마련된 한ㆍ일 정상 간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끌어내는 데는 양국 정상 배우자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시다 총리의 배우자인 유코(岸田裕子) 여사는 부부 동반 만찬에서 “한국 드라마인 ‘사랑의 불시착’의 열혈 팬”이라며 “요즘 골프 100타를 깨지 못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등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데 적극적으로 일조했다고 한다.
유코 여사는 부부 동반 만찬 외에도 김건희 여사와 함께 화과자를 만들고 말차를 마시며 영부인 간의 친교를 나눴고, 이에 김 여사는 유코 여사의 한국 방문을 직접 초청하기도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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