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마다의 속도에 맞춰 자라는 튤립, 우리 아이들 모습 같아

한제원 2023. 3. 1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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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단상, 제각각의 모습이 꽃밭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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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원 기자]

 각기 다른 모양의 튤립
ⓒ 한제원
  3월 중순이 되면 여기저기서 튤립 축제 소식이 들린다. 튤립 축제가 3월 중순 이후부터 4월까지 이어진다는 걸 지난 2020년에야 알았다. 이 당시 코로나는 모든 것을 앗아간 듯했지만 개인적으로 봄을 보는 눈을 찾았다. 튤립 축제가 봄이라는 걸 알았던 것도 그때였다.

아이 둘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원을 못 하고 집에 있었고, 보육은 다시 오로지 내 몫이 되었는데 그때 에버랜드를 제일 많이 다녔다. 3월에 보았던 튤립을 기억한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약간은 서늘한 바람을 맞아 흔들리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튤립은 모양이 달랐다. 봉우리의 크기·펴진 정도·키·색 등 모든 것이 달랐다. 다른 라인에 심어진 튤립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살, 세 살이었던 두 아이를 데리고, 식당도 무서워서 못 가던 코로나 시국에 먹을 것을 바리바리 챙겨 무거운 가방까지 짊어진 상태로 마주한 튤립은 마치 처음 본 것 같았다.

이후 지난해까지 3월마다 튤립을 보러 갔다. 갈 때마다 모양이 다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화한 정도가 다 달라졌는데, 튤립 축제가 시작되는 초반에 봉우리진 튤립이 더 많은 튤립 꽃밭이 가장 좋았다. 추운 겨울을 겨우 보내고 지겹게 입은 검은 룽패딩을 벗어 던지고 비로소 만나는 형형색색의 봄, 튤립은 바로 그 봄의 상징이 됐다. 

제 속도에 맞춰 자라는 튤립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익준이가 이런 말은 한다. 나이 드니 핸드폰에 꽃 사진만 6000장이라고. 그때가 2020년, 내가 튤립에 반한 해다. 그 말이 머지않은 나의 미래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튤립 꽃밭을 보면 어떤 아이(튤립)는 줄기만 빼꼼한 구근, 어떤 튤립은 봉우리, 어떤 튤립은 이미 꽃이다. 저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른 것이다. 달라도 이질적이지 않고 잘 어우러져 오히려 풍성함을 더한다.

구근 상태의 튤립이 초라하지도, 홀로 피어 있는 튤립 한 송이가 얄밉지도 않다. 그저 한 군데 잘 어우러진 꽃밭일 뿐이다. 이런 튤립을 보면 마치 아이들을 보는 것 같다. 똑같이 키워도 아롱이, 다롱이, 똑같이 가르쳐도 이 녀석, 저 녀석 배우는 속도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마치 커다란 튤립 꽃밭에서 자라는 꽃들과 같아서 늦어도 빨라도 서로 샘내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크고 작음이 제각각의 모습이 꽃밭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아이들을 종종거리고 키우느라 지쳤을 때, 솔직히 내 아이와 남의 집 애들이 비교될 때, 이 꽃밭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심호흡을 내 쉬면 마음이 편해진다. "우리들은 유치원에 모여 살아요"의 가사가 있는 동요의 앞 구절이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인 건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봄 꽃을 유심히 관찰하면 늘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 신기하다. 내일은 또 오늘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기에 그렇게 사진을 찍게 된다. 가지만 있던 나무에서 하얗고 노란 봉오리가 맺히고 점점 커지고 팝콘처럼 터지다 만개하고,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는 그 하루하루가 너무 신기하고 감동적이다. 

그뿐인가. 꽃이 지면 연둣빛 새 잎이 나오는데 그 연둣빛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그래서 또 그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어느 하나 버릴 모습이 없다. 마치 신생아를 키우던 아기 엄마일 때 내 아기의 모습을 수 천장, 수만장 남겨두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남들 보기엔 다 똑같다지만 내 눈에는 이것은 이대로 저것은 저대로 다 다르고 다른대로 이쁘고 귀해서 어느 하나 지울 사진이 없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봄꽃이 그러하다. 

최근 벚꽃 일정을 알려주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하얀 벚나무 아래서 손을 잡고 거닐며 구경하는 꽃나무의 모습도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아롱이다롱이 각자 다른 속도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초봄의 꽃밭을 보는 감동도 상당하다. 묵묵히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는 모습, 먼저 피었다고 뽐내지 않는 모습이다. 
 
  꽃밭은 아름답다
ⓒ 한제원
 
 홀로 핀 한 송이
ⓒ 한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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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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