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마다의 속도에 맞춰 자라는 튤립, 우리 아이들 모습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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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원 기자]
▲ 각기 다른 모양의 튤립 |
ⓒ 한제원 |
아이 둘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원을 못 하고 집에 있었고, 보육은 다시 오로지 내 몫이 되었는데 그때 에버랜드를 제일 많이 다녔다. 3월에 보았던 튤립을 기억한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약간은 서늘한 바람을 맞아 흔들리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튤립은 모양이 달랐다. 봉우리의 크기·펴진 정도·키·색 등 모든 것이 달랐다. 다른 라인에 심어진 튤립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살, 세 살이었던 두 아이를 데리고, 식당도 무서워서 못 가던 코로나 시국에 먹을 것을 바리바리 챙겨 무거운 가방까지 짊어진 상태로 마주한 튤립은 마치 처음 본 것 같았다.
이후 지난해까지 3월마다 튤립을 보러 갔다. 갈 때마다 모양이 다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화한 정도가 다 달라졌는데, 튤립 축제가 시작되는 초반에 봉우리진 튤립이 더 많은 튤립 꽃밭이 가장 좋았다. 추운 겨울을 겨우 보내고 지겹게 입은 검은 룽패딩을 벗어 던지고 비로소 만나는 형형색색의 봄, 튤립은 바로 그 봄의 상징이 됐다.
제 속도에 맞춰 자라는 튤립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익준이가 이런 말은 한다. 나이 드니 핸드폰에 꽃 사진만 6000장이라고. 그때가 2020년, 내가 튤립에 반한 해다. 그 말이 머지않은 나의 미래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튤립 꽃밭을 보면 어떤 아이(튤립)는 줄기만 빼꼼한 구근, 어떤 튤립은 봉우리, 어떤 튤립은 이미 꽃이다. 저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른 것이다. 달라도 이질적이지 않고 잘 어우러져 오히려 풍성함을 더한다.
구근 상태의 튤립이 초라하지도, 홀로 피어 있는 튤립 한 송이가 얄밉지도 않다. 그저 한 군데 잘 어우러진 꽃밭일 뿐이다. 이런 튤립을 보면 마치 아이들을 보는 것 같다. 똑같이 키워도 아롱이, 다롱이, 똑같이 가르쳐도 이 녀석, 저 녀석 배우는 속도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마치 커다란 튤립 꽃밭에서 자라는 꽃들과 같아서 늦어도 빨라도 서로 샘내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크고 작음이 제각각의 모습이 꽃밭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아이들을 종종거리고 키우느라 지쳤을 때, 솔직히 내 아이와 남의 집 애들이 비교될 때, 이 꽃밭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심호흡을 내 쉬면 마음이 편해진다. "우리들은 유치원에 모여 살아요"의 가사가 있는 동요의 앞 구절이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인 건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봄 꽃을 유심히 관찰하면 늘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 신기하다. 내일은 또 오늘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기에 그렇게 사진을 찍게 된다. 가지만 있던 나무에서 하얗고 노란 봉오리가 맺히고 점점 커지고 팝콘처럼 터지다 만개하고,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는 그 하루하루가 너무 신기하고 감동적이다.
그뿐인가. 꽃이 지면 연둣빛 새 잎이 나오는데 그 연둣빛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그래서 또 그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어느 하나 버릴 모습이 없다. 마치 신생아를 키우던 아기 엄마일 때 내 아기의 모습을 수 천장, 수만장 남겨두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남들 보기엔 다 똑같다지만 내 눈에는 이것은 이대로 저것은 저대로 다 다르고 다른대로 이쁘고 귀해서 어느 하나 지울 사진이 없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봄꽃이 그러하다.
▲ 꽃밭은 아름답다 |
ⓒ 한제원 |
▲ 홀로 핀 한 송이 |
ⓒ 한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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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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