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도중 대진 변경? 스스로 권위 깎는 WBC

김효경 2023. 3. 1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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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와 8강전에서 역전하자 환호하는 미국 대표팀의 무키 베츠(왼쪽)과 놀런 아레나도. EPA=연합뉴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가 대회 도중 대진을 변경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세계 최고 야구 대회를 표방하지만, 스스로 권위를 깎았다.

메이저리그(MLB) 최고 운영·전략 책임자인 크리스 마리낙은 1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일본과 이탈리아의 8강전을 앞두고 준결승 일정을 공지했다. 일본 언론과 기자회견장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당초 예상했던 대진표와 달랐기 때문이다.

WBC 조직위원회가 처음 짠 8강 대진은 A조 1위-B조 2위 대결(게임1) 승자가 B조 1위-A조 2위(게임3) 승자와 만나게 돼 있었다. C조 1위-D조 2위(게임2)와 D조 1위-C조 2위(게임4)는 다른 블럭에 배정됐다.

다만, '일본이 2라운드에 진출하면 순위와 관계없이 8강 두 번째 경기를 치른다. 일본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면 원래 순서대로 진행한다', '미국이 2라운드에 오르면 8강 두 번째 경기를 치른다'라는 단서조항이 달렸다.

티켓 판매 및 중계 편의를 위해서였다. 일본이 2라운드에 간다면 무조건 16일에 경기를 하게 돼있었고, 해당일 입장권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반면 15일 8강 경기(쿠바-호주)는 당일에도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마이애미 렌디포 스타디움에서 열린 8강 경기도 미국 현지 시각 토요일 오후 지상파 중계 일정이 잡혔고, 다른 경기는 금요일 저녁 케이블 채널로 중계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같은 다른 종목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과 일본의 야구 인기가 압도적이고 주최국이라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예정된 대진대로라면 미국과 일본은 무조건 4강에서 만나게 돼 있었다.

벤치에서 동료들을 응원하는 일본 대표팀의 오타니 쇼헤이. AP=연합뉴스

일본은 예상대로 B조 1위를 차지해 일정 변경 없이 16일에 2라운드 경기를 치렀다. 미국은 13일 열린 멕시코전에서 지면서 D조 2위(3승 1패)가 됐고, 19일에 베네수엘라와 8강전을 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라운드 일본-이탈리아전을 앞두고 단서조항이 대진표에서 사라졌다. 아울러 미국-베네수엘라전이 '게임4'가 아닌 '게임3'로 배정됐다. 18일 열린 D조 1위 멕시코-C조 2위 푸에르토리코전이 '게임4'가 됐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은 당초 예상됐던 준결승에서 만나지 않고, 결승에서나 붙을 수 있게 됐다.

이런 대진이 만들어진 건 관중 동원 능력이 뛰어난 미국과 일본이 4강에서 맞붙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WBC는 '예정된 대진'이라고 주장했으나,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피해갔을 뿐, 명확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MLB 사무국은 2006년 야구의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해 2006년 WBC 창설을 주도했다.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에는 빅리거 선수들의 출전을 막았지만, WBC에는 문을 열었다. 2006년 1회 대회에서 예상 밖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수익이 발생하자 대회 규모는 더욱 커졌다. 소극적이었던 MLB 선수들의 참가도 늘고 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빅리거는 168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오타니 쇼헤이(일본)를 포함해 MVP 출신만 8명이다.

혈통에 따른 국가대표 발탁 등 WBC만의 제도도 긍정적이다. 이탈리아, 일본, 한국 등 여러 나라가 이 제도를 활용했다. 특히 이민 2, 3세들이 대거 합류한 이탈리아 선수단은 본국을 방문하고, 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회 도중 대진을 바꾼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주최측이 스스로 대회의 공정성을 훼손했다. WBC가 진정한 야구 최강을 가리는 대회가 아닌 '장삿속 이벤트'로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편 미국은 19일 베네수엘라를 9-7로 꺾고 4강에 올랐다. 5-7로 뒤진 8회 말 트레이 터너(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역전 만루홈런을 때렸다. 미국은 20일 오전 8시 쿠바와 준결승전을 치른다. 일본은 21일 멕시코와 결승 진출을 놓고 겨룬다. 결승전은 22일 열린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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