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지금? ‘청년 탈모 지원’ 둘러싼 모든 것 [싹·다·정]

이강민 2023. 3. 1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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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DB.

최근 서울 성동구를 시작으로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뛰어들며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정책이 있다. 다름 아닌 청년 탈모 지원사업이다. 한쪽에서는 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인 탈모 치료를, 청년에 한해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한다는 이 정책을 놓고 특혜라거나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코로나19를 겪으며 더 소외되고 불안해진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청년 탈모가 왜 지금 새로운 지원 대상으로 떠오른 건지, 실제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 건지, 과연 정말 필요는 한 건지 등 ‘청년 탈모 지원’을 둘러싼 궁금증과 쟁점을 모두 풀어봤다.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밈(meme)이 된 그 공약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유튜브 채널 ‘재명이네 소극장’ 캡처.

청년 탈모가 정책의 관심 대상이 된 건 왜일까. 이 논의의 시작을 찾자면 지난해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는 탈모 치료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공약을 내놔 큰 관심을 받았다. 공약은 이재명 캠프 ‘다이너마이트’ 청년 선대위가 기획한 ‘리스너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됐다. ‘리스너 프로젝트’는 2030 청년 약 300명과 소통하며 일상과 가까운 공약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프로젝트를 맡았던 최원석 팀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캠프 참여자가 지인으로부터 탈모인의 고충을 듣고 리스너 프로젝트에 알려줬다. 이후 본격적으로 커뮤니티를 돌며 사례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낀 게 그 공약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박주민 의원 등이 각자의 탈모 경험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현장 토크에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공약 지원에 나섰다. 이 후보 본인도 직접 유튜브 영상을 찍어 올리며 홍보에 나섰고, 온라인에는 ‘이재명은 뽑지 않고 심는다’ 등의 ‘밈’(meme·온라인에서 놀이처럼 유행하는 콘텐츠)이 퍼져 나갔다. 최 팀장은 “공약 관심도가 빠르게 높아지니 중앙캠프 차원에서 건강보험 적용 현실성, 수치와 통계, 형평성 등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동구, 청년 800명 탈모 치료 지원…움직이는 지자체들
성동구 탈모치료 지원 팜플렛. 성동구청 제공.

이후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공약은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지자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타자는 서울 성동구다. 성동구는 지난 2일부터 구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 청년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1인당 연간 20만원 한도의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전국 최초로 ‘청년 등 탈모 치료 지원 조례’를 제정한 데 따른 것이다.

탈모증으로 치료받는 이들 중 청년 탈모 환자 비중이 크다는 통계가 정책에 힘을 실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탈모증 진료 인원 23만3000명 중 30대가 5만2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20대까지 더하면 약 10만명으로, 전체 탈모 치료 인구 중 청년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셈이었다.

성동구가 사업을 시작한 첫 지자체가 된 데는 청년인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는 조건도 영향을 미쳤다. 성동구청 담당 주무관은 “성동구의 청년인구 비율이 30% 정도라 더욱 적극적으로 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동구가 올해 지원키로 한 인원은 800명이다. 1인당 20만원씩 약 1억60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왜 800명일까.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인구 10만명당 39세 미만 탈모인은 약 233명으로 집계되는데, 이 비율을 성동구 인구(약 30만명)에 적용해 여유 있게 모집 대상을 잡은 것이다.

정책에 관한 관심은 뜨겁다. 사업 시작 첫날인 지난 2일 하루 동안만 20건이 접수된 데 이어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4일 오전까지 모두 144건이 신청됐다.

관계자는 “신청 기간이 1년 정도로 넉넉한데도 벌써 이 정도라 신청률이 높은 편으로 보고 있다”며 “문의 전화도 계속돼 앞으로도 관심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보령시도 지난해 9월 탈모 치료를 지원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보령시에 1년 이상 거주한 만 49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1인당 최대 20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올해 안에 시작할 계획이다.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대구시가 가장 빠르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 최초로 관련 조례를 제정했고 사업 시행을 위한 세부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서울시도 지난 2일 민주당 소속 이소라 시의원이 ‘청년 탈모 지원 조례안’을 발의해 지난 3일 관련 상임위 논의가 진행됐지만 찬반 의견이 팽팽해 심사가 보류됐다. 국민의힘 소속 시 의원을 중심으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반론이 제기돼서다.

“청년 대상 포퓰리즘?”…“비만은 안돼? 더 심각한 병은? ” 제기되는 질문들

국민의힘 소속 박상혁 서울시의원은 당시 반대 의견으로 “예산 한계를 고려하면 탈모보다 시급한 청년 일자리나 주거 문제에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청년 탈모 지원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과연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혈액암같이 희귀질환 중에도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게 많은데 탈모 치료가 이보다 우선돼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국민일보 DB.

예산이 한정적인데 청년 관련 문제에서 탈모가 우선할 만큼 시급하거나 중요하지 않은데, 지난 대선에서 청년들 관심을 끌었다는 이유로 선심성 예산을 투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면 청년 탈모 지원 예산의 규모를 생각할 때 이 사업 시행 여부가 청년 일자리나 주거 문제 해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 서울시에 따르면 성동구와 비슷한 기준으로 치료비를 지원한다고 가정할 경우 대상자는 약 280만명, 1인당 20만원씩 지원할 때 연간 30억~67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2023년 기준으로 편성된 청년 일자리 예산(약 1860억원)의 3.6% 수준이다.

일각에선 일부 청년의 개인적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예산으로 지원하는 게 적절하느냐는 질문도 나온다. 다른 심각한 비급여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많은데 탈모 치료를 지원하는 건 특혜라는 지적이다.

2년간 탈모 치료를 받아온 채규식(34)씨는 “나도 탈모로 치료받고 있지만 지자체 지원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면서 “현재 탈모약과 우울증약을 함께 먹고 있는데, 금액적으로 우울증약이 탈모약보다 비싸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사업을 시행 중인 성동구에도 ‘왜 청년만 탈모 치료를 지원하나’ ‘비만은 왜 지원 대상이 아닌가’ 등의 민원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특정 연령이나 소수를 위한 지원이라는 이유로 정책 필요성을 무시할 순 없다는 의견도 있다. 리스너 프로젝트를 주도한 최 팀장은 “젠더 이슈를 생각하면 남녀 갈등만 생각하지만 사실 그 안에 LGBT 등 성소수자 문제도 있지 않느냐”면서 “청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년 취업, 일자리 등 거대한 논의가 있지만 그 안에서 청년들이 겪는 탈모 문제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청년 탈모 지원은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 탈모’ 사회적 문제로 봐야…청년 어려움 공감 메시지도”
국민일보 DB.

정책적으로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문제는 결국 청년 탈모를 과연 개인만의 일로 볼 것인지, 사회적 문제로 볼 것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도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청년 탈모 치료 지원은 미용이 아닌 질병 치료 목적에 한한 것”이라면서 “탈모로 인한 외형 변화는 개인의 자존감 하락, 사회적 지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 시기에 발병하면 대인기피증, 우울증 심리적 질병으로 이어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탈모라는 질병이 가진 특성과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거나 이제 시작하는 청년층의 세대적 특성을 고려하면 ‘청년 탈모’를 개인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특히 청년층의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가 탈모의 원인이면서, 탈모가 또 다른 심리적 어려움으로 이어진다는 문제도 있다.

실제 탈모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왜 벌써 (탈모가) 와서 멘털을 힘들게 하는지(모르겠다)’ ‘탈모 때문에 MBTI가 외향형에서 내향형으로 바뀌었다’ ‘22살 여자 대학생인데 결혼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등 청년 탈모인의 다양한 고민이 올라오고 있다.

김은하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탈모를 겪으면 외모 자신감이 떨어지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데, 그러면 일상생활에서 실수나 실패가 잦아지게 되고 더욱 자신감이 떨어지는 등 악순환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짚었다.

이어 “40대 이상 탈모가 더 많고 심각하지만, 20대는 진로와 자존감이 형성되는 매우 중요한 시기로 탈모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면서 “심리장애와 관련해 의료경제적 비용 전반이 증가하기 때문에 탈모로 인한 스트레스는 사회적 문제로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 막 경제활동을 시작했거나 이제 준비 단계인 청년들에겐 탈모 치료가 필요하지만 치료비 부담이 더 큰 게 현실이다.

한 청년 탈모인인 노정우(가명·34)씨는 “24살 때 처음 (탈모) 진단을 받고 1~2년 정도 약을 먹었는데, 한 번 갈 때마다 진료비를 포함해 10만원 넘게 들었다”면서 “한 달에 한 번 혹은 석 달에 한 번씩 가야 해 비용 부담이 커 ‘차라리 벗겨지고 말지’라는 심정으로 약 복용을 중단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1년에 탈모 치료에 쓰는 평균비용은 20대의 경우 14만5200원, 30대는 16만1900원 정도다. 부모님의 지원이나 자신의 수입이 없는 청년에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청년 탈모 지원 정책은 청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문제도 중요한 정책적 고려 대상이 됐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서울시 시민건강국 관계자는 “원래 건강정책은 고령층 등 취약계층이 대상이었는데, 청년 탈모 정책이 논의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최근 청년에 대한 건강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청년의 어려움에 이전보다 귀 기울이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셈이다. 탈모인 노씨는 “(청년 탈모 지원 정책이) 다른 청년 복지 정책과 대립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탈모 지원이 시작되면 다른 새로운 청년 질병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이번 논의가 청년의 어려움에 더 귀 기울이고, 정책을 확대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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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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