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잠든 두 아이들, 서로의 묘에 꽃 놓는 두 아빠 [이태원참사_희생자]
10월 29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왔다. "압사당할 거 같다."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만 했다면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을, 사업가를, 음악가를, 간호사를, 배우를 꿈꿨던 159명의 바람은 이뤄졌을지 모른다. <오마이뉴스>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편집자말>
[소중한, 이희훈 기자]
고 김연희, 고 김재강.
1999년생, 1994년생인 두 사람은 광주 영락공원 묘역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이들 모두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왔고 목숨을 잃기 3개월 전 소망하던 직장에 들어가 이제 막 꿈을 펼치려던 참이었다. 첫 독립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한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나 고향 땅에 잠들었다.
▲ 이태원참사로 잃은 자녀를 광주 영락공원에 안치한 뒤 서로의 관계를 알게 된 고 김연희씨 아버지 김상민(55, 오른쪽)씨와 고 김재강씨 아버지 김영백(61)가 함께 묘역을 찾았다. |
ⓒ 이희훈 |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연희·김재강씨의 아버지 김상민·김영백씨가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광주 영락공원 묘역에 나란히 묻힌 두 희생자의 아버지는 서로의 묘에 꽃을 놓으며 위로를 전하고 있다. |
ⓒ 유족 제공 |
"감사합니다, 재강이 아버님. 또 우리 연희에게 꽃을 주셨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얼마 후 49재를 맞아 다시 묘를 찾은 연희씨 아버지도 똑같이 재강씨 묘에 꽃을 놓았다.
"오늘 우리 연희 49재 지내면서 재강씨에게도 함께 헌화했습니다. 오늘 따라 눈이 많이 오더군요."
"감사합니다. 마음도 아픈데 오늘 날씨도 고르지 못해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 이태원참사로 잃은 자녀를 광주 영락공원에 안치한 뒤 서로의 관계를 알게 된 고 김연희씨 아버지 김상민(55, 오른쪽)씨와 고 김재강씨 아버지 김영백(61)가 함께 묘역을 찾았다. |
ⓒ 이희훈 |
두 아버지를 지난 2월 26일 광주 영락공원 묘역에서 만났다. 나란히 앉아 자식의 묘를 매만지던 두 아버지는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자였으면 어려웠겠지만 함께여서 인터뷰를 할 용기가 생겼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 올 때면 꽃 한 송이를 더 가져옵니다. 양쪽 묘비에 꽃을 갖다놓고 목례라도 하면 연희씨에게도, 연희씨 아버님에게도 위로가 되겠다는 생각에서요. 또 제가 못 올 땐 연희씨 아버님이 똑같이 해주셔서 제가 마음의 위로를 얻습니다. 심리치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다른 유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 재강씨 아버지
"자녀를 잃은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요. 이 슬픔을 직접 겪지 않은 이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대화가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같은 처지의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동질감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 연희씨 아버지
참사 후 두 아버지 모두 "투사 아닌 투사"가 돼버렸다. 이들 모두 30~40년 직장에 다니며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분향소를 지키고 집회, 기자회견 등에 참여하고 있다. 연희씨 아버지는 참사 후 직장생활을 이어가다 결국 사표를 냈고, 재강씨 아버지는 퇴직 후 4년 간 해오던 양봉 일을 그만뒀다.
"저는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는 존재'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참사를 겪으며 정부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대로 된 후속조치마저 냉정하게 거부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도, 재강씨 아버님도 사회에 목소리를 내거나 앞에 나서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럴 재목도 안 되고요.
그러나 자식을 잃은 부모는 다릅니다. 세상을 모두 잃은 것과 다름없기에 끝까지 나서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그게 유가족의 삶입니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은 참사 직후 11월 1일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모든 시민들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행정력을 투입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언론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유가족은 이 말을 온전히 믿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오 시장은 유가족을 만나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유가족을 악성민원인 취급하고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론 플레이를 하며 반인륜적이고 공정과 상식이 매몰된 시정을 펼치고 있습니다." - 연희씨 아버지
"눈물이 없던 제가 2022년 10월 29일 이후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조용히 직장생활을 했던 제 삶에 '분노'라는 게 없었는데 지금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겠어요. 분노가 능사는 아니니 꾹꾹 누르고 있지만 어느 순간 폭발하면 '저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무서울 게 없습니다. 아들의 영혼이라도 있다면 억울함을 벗겨주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습니다." - 재강씨 아버지
▲ 이태원참사로 잃은 자녀를 광주 영락공원에 안치한 뒤 서로의 관계를 알게 된 고 김연희씨 아버지 김상민(55, 완쪽)씨와 고 김재강씨 아버지 김영백(61)가 함께 묘역을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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