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다 내준 굴욕적 외교... 그보다 더 큰 문제

박성우 입력 2023. 3. 1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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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미래" 외쳤지만 정작 미래조차 어둡게 만들어

[박성우 기자]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한 모습.
ⓒ EPA=연합뉴스
참담할 정도로 다 내주었다.

지난 16일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를 종합하자면 이보다 더 알맞은 말도 드물다. 한국이 먼저 전적으로 일본 입장에 치우친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하고 심지어 "구상권 청구는 없다"고 단언했음에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이에 대통령실은 "일본 사과 한 번 더 받는 게 어떤 의미 있나"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지만 일본 지지통신은 윤 대통령과 가까운 국민의힘 간부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발언을 기시다 총리가 직접 말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보도했다. 부탁이 거절당하니 사과가 의미 없다고 얘길하다니, 여우와 포도의 우화가 떠오른다.

기시다도 놀란 윤석열의 지소미아 종료 카드 포기

윤 대통령이 언급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완전 정상화 역시 한국이 일본을 상대할 무기 하나를 스스로 버린 셈이다. 현재도 한일 양국의 2급 기밀 이하 군사정보는 지소미아를 통해 공유되고 있으나 한일 간 양해에 따라 언제든 한국이 지소미아의 효력 종료를 통보한다면 지소미아는 종료된다.

즉 서욱 전 국방부장관과 가토 가쓰노부 전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2021년 각각 "지소미아는 작동하고 있다", "지소미아를 통해 적절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언급했듯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지소미아는 유지 중이었으나 이를 종료할 수 있는 권한은 한국이 보유하고 있었다.

북한 미사일 등 한국의 군사정보가 필요한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한미일 안보공조가 중요한 시점에서 지소미아 자체는 유지하면서도 그 종료 권한은 보유함으로써 실리적인 이점을 챙기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와중에 윤 대통령이 이를 단번에 정상화하겠다고 선언했다. 16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소미아는 양국이 사전에 논의하지 않은 사안이었으나 윤 대통령이 먼저 "(지소미아 정상화를 위한) 법적 절차를 신속하게 밟겠다"고 발언했고, 책상을 보던 기시다 총리가 놀란 듯 고개를 든 뒤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로서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놀란 게 아닐까.

반도체 수출 규제 정상화, 성과는커녕 외교적 패배에 가까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일본 도쿄 긴자구의 경양식집 렌가테이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만찬을 한 뒤 떠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그나마 일말의 성과라고 불릴 만한 것은 일본의 반도체 3개 품목 수출 규제 정상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윤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제소(WTO)에 일본을 제소한 것을 철회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일방적인 성과라기보단 서로의 약점을 하나씩 맞바꾼 것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일본의 수출 규제는 일본이 외교 문제를 경제 문제로 보복한 것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회고록에서 "징용공 배상 판결이 확정된 뒤 아무런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은 문재인 정권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수출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며 보복성 조치임을 실토한 바 있다. 이렇듯 애초에 일본이 전적으로 잘못한 문제를 WTO 제소 철회와 교환한 만큼 이조차도 성과가 아닌 한국의 외교적 패배에 가깝다.

심지어는 니시무라 야스히 일본 경제산업상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수출관리 조치를 '해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고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산성 관계자는 각 언론사에 "해제가 아니라 운용의 재검토"라며 "이례적으로" '보충 설명'을 실시했다고 한다. 수출 규제가 해제된 것인지도 정확하지 않은 셈이다.

굴욕적 태도로 일관한 대일외교... 앞으로가 더 문제다

더욱 문제적인 건 이번 대일 외교가 단순히 굴욕적인 패배를 넘어서 한국 스스로 앞으로의 외교적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회복이 한국의 밝은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여기는 듯 보인다. 그것이 확정된 사실이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단순히 일본과의 관계가 회복된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진 않는다. 일본과의 관계 회복은 윤 대통령이 여러 번 언급한 대로 한미일 삼국 공조와 연결되어 있다. 삼국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과 각국의 인적·물적 교류를 감안한다면 한미일 공조 자체는 반대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한미일 공조는 기실 미국 주도 하의 대중 견제에 치우쳐져 있다. 이미 일본은 지난 16일, 대만과 두 번째로 가까운 자국 섬에 미사일부대를 배치했고 지난 1월에는 미국과 협상을 통해 오키나와 섬에 주둔한 미 해병대가 대만 유사시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기동부대를 새로 창설하기로 결정했다. 북한 문제와 대중 무역 문제에 얽힌 한국이 지금의 일본만큼 대중 견제에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또한 미일과 공조하면서도 한국이 이점을 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분명히 얻어야 할 사안은 굽히지 않는 당당한 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살펴보면 정반대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미국은 자국 반도체 사업을 살리기 위해 보조금 지원을 실시했고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구실로 전지구적 환경오염을 무릅쓰고 알래스카 유전 개발에 착수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일본에 간도 쓸개도 내준 한국 대통령을 미국이 국빈방문에서 과연 얼마나 높게 대우하겠는가.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두려운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다.

대일외교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미래만을 외치며 과거사 문제를 회피한 윤 대통령이지만 정작 그 미래조차도 어둡기 짝이 없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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