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1조 가지 냄새 구분"…인간 후각의 비밀
특정 후각수용체 3D 구조 작성 첫 성공
냄새 물질 분자와 상호 작용 기전도 확인
가장 복잡한 후각 이해 한 걸음 나아가
인간은 콧속에 있는 후각 수용체(olfactory receptors) 덕분에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용체들이 어떻게 분자를 감지해 '냄새'라고 느끼고 정확히 구분해 내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이 최근 인간 후각 수용체의 3D 구조를 정확히 그려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복잡한 후각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평가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이 작성한 이런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OR51E2'라는 후각 수용체의 3D 구조를 세밀히 묘사한 후 치즈 냄새를 맡는 과정에서 냄새 분자와 어떤 상호 작용을 거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인간이 냄새를 어떻게 맡을 수 있는지 밝혀진 것은 고작 30여년 전이다. 1991년 리처드 악셀, 린다 벅이 생쥐의 코에서 후각 수용체를 찾아냈으며 이 공로로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인간의 게놈(genome)에는 400개의 후각 수용체가 코딩돼 있다. 이중 50개의 후각 수용체는 특정 냄새와 연결할 수 있지만 나머지 350개는 어떤 냄새와 대응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2014년에는 인간이 약 1조 가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하나의 수용체가 하나의 냄새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질에 수용체 몇 개가 동시에 반응해 이 조합에 따라 뇌가 인식하는 냄새가 달라진다. 예컨대 비슷한 꽃향기라도 백합 향이 수용체 A, B, C를 자극한다고 할 때 목련 향은 B, C, D를 자극해 미묘한 차이를 알아챌 수 있다. 연구팀은 "마치 피아노의 코드를 치는 것과 같다"면서 "여러 개의 음반을 두드려 하나의 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인간이 특정 냄새를 맡았다고 인식하는 것은 냄새 분자가 후각 수용체들과 상호 작용한 결과의 조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후각 수용체들이 특정 냄새 분자를 인식하고 뇌에 신호를 보내는지에 대해선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밝혀진 바가 거의 없었다. 동물의 후각 수용체 단백질들을 떼어내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은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팀은 오직 'OR51E2'라는 후각 수용체 하나에만 연구를 집중했다. 이 수용체는 식초 냄새의 원인 물질인 아세테이트, 치즈 냄새의 원인 물질인 프로피오네이트 등 2가지 분자와 상호 작용한다. 또 후각을 담당한 신경세포에서뿐만 아니라 장, 신장, 전립선 조직 등에서도 발견돼 다른 기능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OR51E2를 분리해 낸 후 원자 단위까지 촬영할 수 있는 극저온 전자 현미경을 사용해 프로피오네이트와 결합된 상태 및 비결합 상태의 구조를 분석했다. 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원자 규모에서 이 수용체가 어떻게 취기제(odorant·냄새 원인 물질)들과 상호 작용하는지 분석했다. 이 결과 프로피오네이트가 OR51E2 수용체의 '바인딩 포켓(binding pocket)' 영역에서 카르복실산을 아미노산ㆍ아르기닌에 고정시키는 특정 이온ㆍ수소 결합을 통해 OR51E2 수용체에 결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면 돌연변이를 통해 OR51E2 수용체의 아르기닌을 변형시켰더니 프로피오네이트와 결합하지 못했다. 이같은 후각 수용체-취기제간 분자 상호 작용이 냄새라는 감각 작용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다만 OR51E2 수용체는 인간 후각 수용체 유전제 중 비교적 기능이 단순한 10%의 그룹에 속한다. 나머지 후각 수용체들은 좀 더 넓은 범위의 냄새를 맡는 데 관여한다. 바네사 루타 록펠러대 뇌과학 교수는 "후각수용체들은 매우 다양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서 "추가로 다른 수용체들을 연구ㆍ분석해야 후각 인식의 다양한 과정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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