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對中 반도체 포위작전’ 매우 촘촘해진다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김규환 2023. 3. 18.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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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중 견제 위한 외교적 노력에 필요한 예산 1억 달러 배정
美, 和蘭·日과 3자 협력 통해 내달 새 대중 수출규제 방안 발표
반도체 노광장비 강국 和蘭, 대중 수출규제 강화방안 공식 언급
美, 인도와 반도체 보조금 지급 경쟁을 피하기 위해 조율하기로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지난 1월 미국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중국 반도체산업 ‘포위 작전’이 전방위로 강화된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고 중국의 반도체 기술발전을 견제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필요한 예산을 배정한데 이어, 반도체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일본 등과 의견조율을 통해 대중 수출규제를 강화해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패권전쟁이 본격적으로 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국무부는 반도체지원법(반도체법) 관련사업에 올해 1억 달러(약 1312억원)를 배정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고 지난 14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다. 국무부는 “지난해 제정된 반도체법에 따라 2023 회계연도부터 5년간 해마다 1억 달러의 국제기술안보혁신기금(ITSI Fund)을 배정받으며 이 예산은 반도체 공급망 안보와 국제 정보통신기술(ICT) 안보 강화에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지원법은 미국 내 반도체공장 건설, 연구·개발(R&D) 등에 530억 달러(약 70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지난해 7월 미 의회를 통과했으며 8월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통해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보호·육성하는 한편 첨단기술 패권을 노리는 중국을 견제해 나가겠다는 심산이다.


반도체법의 주요 내용은 공장건설 등 반도체 생산관련 인센티브에 390억 달러, R&D 및 인력교육 지원에 132억 달러를 각각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제조·장비 등을 대상으로 25% 투자 세액공제도 지원한다. 다만 이 법안에 세제혜택을 받는 기업은 10년간 중국을 비롯해 미국이 정하는 투자 우려국가에 반도체 생산을 신·증설하는 것을 금지하는 가드레일 조항도 포함돼 있다.


미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관련사업 중에는 최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기술이 유출되거나 남용되는 일을 막을 안전장치 도입이 주목된다. 국무부는 일부 첨단 반도체 사용이 국가안보에 위험이 될 수 있는 만큼 국제 파트너와 수출통제 및 라이선스 정책협력 등을 통해 이를 완화할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급망 동맹과 파트너와 함께 이를 위한 정책과 관행을 개발하고 긴밀히 조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 주요 반도체산업국과 중국의 기술확보를 막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4월 26일 후베이성 우한시 국가메모리기지 안에 있는 칭화유니그룹 산하 창장춘추(YMTC)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앞줄 왼쪽이 시 주석, 오른쪽이 자오웨이궈 칭화유니그룹 회장이다. ⓒ YMTC 홈페이지 캡처

국무부는 올해 ITSI 예산 중 4070만 달러를 전 세계에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시설과 서비스 구축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이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와 중싱(中興)통신(ZTE) 등의 통신제품을 배제하고 동맹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 정부는 이르면 4월 새로운 반도체 수출규제 방안도 발표할 예정이다. 미 정부는 네덜란드·일본과 조율해 한층 강화된 새로운 수출규제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새로운 규제는 수출을 위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반도체장비 규모를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며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등 반도체 장비업체들에 새로운 규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와 일본은 지난 1월 말 미국의 압박 속에 반도체 수출통제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미 정부는 앞서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장비의 중국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18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 또는 가펫 등 비평면 트랜지스터 구조의 16나노 로직반도체 ▲14나노 이하 로직반도체 관련기술 및 장비의 중국수출이 사실상 차단된다. 이 규정을 적용받는 장비가 현재 17개 정도이지만 네덜란드와 일본이 미국의 규제에 동참하면 그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반도체 장비는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가 글로벌 시장을 사실상 쥐락펴락하고 있다. 미국에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KLA, 램 리서치 등 주요 반도체장비 생산기업 3곳이 있다. 이들 3개 기업이 세계 3위 반도체 장비업체 일본의 도쿄 일렉트론, 세계 1위 노광장비 업체 네덜란드의 ASML과 함께 반도체장비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제품이 없으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의 규제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발전을 막는 게 기본 목표이지만 미 기업들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반도체장비 수출통제로 이미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더 강력해진 수출통제 조치가 예고되면서 미 반도체장비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중국시장에 접근할 수 없게 되면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잃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반도체장비 업체 네덜란드 ASML 직원들이 첨단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 ASML 홈페이지 캡처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업체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삼성과 SK의 중국 공장에는 1년 유예를 허용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네덜란드도 대중 반도체장비 수출규제 강화를 공식화했다. 미국의 대중 수출규제에 동참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뿐 아니라 한 세대 전 모델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도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규제하기로 했다. 일본도 조만간 반도체 장비수출과 관련한 새로운 규제방침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리셔 스흐레이너마허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협력 장관은 지난 8일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특정 반도체장비에 대한 기존 수출통제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최첨단 반도체기술에 수출통제 조치를 부과할 것이며 기업들은 해당 기술을 수출하기 전 라이선스를 신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 규제는 올해 여름 안에 도입하고 국가 차원의 통제목록을 만들겠다고 스흐레이너마허 장관은 덧붙였다. 이 서한에 '중국'이나 'ASML'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삼갔지만, 대중국 수출통제 대상에 기존 ASML의 최첨단 EUV 노광장비 외에 DUV 노광장비 일부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 자료: 대만 디지타임스

DUV 노광장비는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 노광장비의 구형 모델이다. EUV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극자외선으로 회로를 그리는 노광 기술이다. 회로를 얇게 그릴수록 반도체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능이 좋아지는 만큼 반도체 미세공정에 꼭 필요하다.


DUV는 최첨단은 아니지만 자동차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쓰인다. 네덜란드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2019년 ASML의 EUV 중국 판매를 금지했으나 DUV 장비 수출은 허용해왔다.


ASML은 대만 타이완지티뎬루(台灣積體電路·TSMC)와 한국 삼성전자, 미국 인텔 등 대형 반도체 기업에 장비를 공급한다. 지난해 ASML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였다. 이에 ASML의 납품업체들은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시아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ASML 관련기업 10여 곳의 관계자들은 공장 용지 물색을 위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방문할 예정이다.


ⓒ 자료: 캐나다 테크인사이츠

미국은 인도와 반도체 산업에 대한 과도한 보조금 지급 경쟁을 피하기 위해 보조금 정책을 서로 조율하기로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를 방문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지난 9일 반도체 분야 보조금 정책 정보공유 등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인도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공급망에서 주요 참여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이를 위해 1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생산시설 등 지원 계획을 바탕으로 대규모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 중이다.


인도는 현재 TSMC나 인텔 등 반도체 대기업의 투자는 아직 끌어내지 못한 상태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계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및 한국 반도체 기업을 포함해 4개의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현지공장 설립을 위한 협의를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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