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권의 감성골프] 골프장에서 골퍼와 캐디의 동상이몽
골퍼와 캐디는 묘한 관계이다.
캐디는 골퍼에게 조력자이면서 멘토이다. 같은 사안으로 무언의 대화도 오간다. 골퍼와 캐디의 동상이몽이다.
#새벽 5시. 시계 알람이 울린다. 일기예보에 오늘은 날이 좋다니까 한 라운드만 뛰고 오후에 모처럼 친구 만날 생각에 설렌다. 잽싸게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골프장으로 향한다. 팀을 배정받고 카트에 백을 옮겨 싣는다. 오늘은 어떤 손님일까. 매너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제발 거북이(진행이 느린 골퍼)만 피할 수 있기를.(캐디)
#. 오랜만이다. 친한 고교 동창 4명이 함께 잔디를 밟은 것도. 잠도 좀 설쳤다. 라커 룸에서 환복하고 선크림을 바른 후 식당으로 향한다. 녀석들이 먼저 와서 기다린다. 늦지는 않았다. 간단하게 식사 후 스타트 장소로 향한다. 클럽을 정리하는 캐디가 멀리서 보인다. 오늘은 센스 있는 캐디를 만나 버디도 잡고 즐겁게 라운드를 돌고 싶다.(골퍼)
“안녕하세요? 오늘 함께할 캐디 ○○○입니다. 날씨도 좋은데 즐거운라운드 되시기 바랍니다.”(캐디) “반갑습니다. ○○○씨,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골퍼)
출발 전 카트에서 캐디와 골퍼 간 이 정도 인사라면 양호하다. 산뜻한 인사와 함께 첫 홀로 출발한다.
“오늘 이 분들 잘 모셔야 해. 고향은 어딘가? 그 전에는 어느 골프장에 있었나?”(골퍼) “아, 오늘 무겁게 출발하네. 골프 치러 와서 내 고향이 왜 궁금하고 아침부터 신상을 털려고 하지.”(캐디 마음)
쿨하게 답하는 캐디도 있지만 아침부터 초면에 도발적인 주문이다. 골프 외적으로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캐디도 많다.
훤칠한 초보 후배를 데리고 골프장에 갔다. 선글라스와 컬러 팔토시에다 백바지 차림의 멋진 패션으로 등장했다. 고급 거리측정기까지 동원해 멋지게 에이밍을 했다.
“와, 무슨 프로선수인줄 알았네. 복장은 아예 PGA급이고. 끝나고 사인이나 좀 받을까 했는데. 크, 골프 신동~~~.”(캐디 생각)
페어웨이에서 한 동반자가 캐디에게 클럽 번호를 불러주곤 캐디 쪽으로 걸어와 중간 지점에서 클럽을 전달받는다. 보이지 않게 깔끔하게 진행을 리드한다.
“고마운 분이다. 매너가 몸에 뱄다. 분명히 사회생활도 훌륭하게 잘 할 것이다. 동반자 한 분이 저 분 반이라도 닮았으면~.”(캐디 생각)
“거리가 얼마라고? 바람을 감안한 거라고? 오르막 앞 핀이니까 약간 길게 쳐야 한다고?”(골퍼) “아, 미치겠다. 네번째 불러준다. 카트 타고 올 때, 카트에서 내릴 때, 앞 팀 기다릴 때 세번이나 말했는데 입에 침이 마른다.”(캐디 생각)
“기분이야. 이건 공금이 아니라 내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야.”(골퍼) “벌써 두번째인데 받아야 하나. 기분파 만났네. 오늘 발이 닳도록 뛰어야 하나. 뭐 고마울 뿐이지.”(캐디 마음)
버디를 두번째 잡고는 자기 지갑을 열고 팁을 또 준다. 캐디는 서비스에 만전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팁을 너무 남발해도 문제다.
“오늘은 왜 이러지?” “이상하다~” “어!”. 한 동반자가 티샷 OB, 세컨드 샷 뒤땅, 그리고 쓰리 퍼트를 범하고 각각 내뱉은 탄식이다.
“과연 오늘만 이상한가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럴 것 같은데요. 연습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한 점은 샷이 안되면 토하는 탄식이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같을까.”(캐디 생각)
“그 얼굴로 여기 있기에는 아까운데. 내가 좋은 데 소개해 줄까.”(골퍼) “큰 일 날 사람이네. 모르는 사람이 딸에게 이런 얘기하면 좋아할지 묻고 싶다. 세상 바뀐 걸 잘 모르나.”(캐디 생각)
“아, 또 물에 빠졌네. 진짜 거리가 멀어 넘기지를 못하겠네. 돌아버리겠다. 아예 양파는 기본이네~”(골퍼) “그러기에 시니어티나 화이트티를 사용하자고 했는데 끝까지 고집하더니. 우와, 타이틀리스트 새 공 두개를 연속 물에 퐁당~.”(캐디 생각)
“에이, 뭐야? 방향이 틀렸잖아. 라인을 틀리게 불러줘 놓고선.”(골퍼) “와, 돌아버리겠다. 홀을 3m나 지나 공을 보내 놓고는 무슨 라인은 라인이야. 드라이버 치듯 퍼트를 해놓고선.”(캐디 생각)
“오르막 맞지?”(골퍼) “예”(캐디) “오르막 맞지?”(골퍼) “예”(캐디) “오르막맞지?” “예”(캐디). “어~~”(골퍼) “∙∙∙”(캐디). 세번이나 묻고 퍼트했지만 결국 공은 핀에 못 미쳤다. 캐디는 말이 없었다.
“오늘 함께 동행해줘서 감사합니다.” 골프를 마치고 차에 백을 실으며한 동반자가 캐디에게 엔딩 인사를 건넸다. “이런 분은 멋지다. 18홀을 돌고 나면 배우자감을 고를 수 있다. 36홀을 돌면 평생 이혼하지 않을 남편 감을 고르겠다. 54홀을 돌면 인생의 스승을 찾을 수 있다.”(캐디 생각)
룰 준수, 동반자 배려, 진지함, 자기 컨트롤, 오가는 대화 등에서 한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실력자보다 인격자가 더 매력적이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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